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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봉황리마애불상군(鳳凰里磨崖佛像群).충북 충주 본문

☆~ 풍경소리/충 북

충주 봉황리마애불상군(鳳凰里磨崖佛像群).충북 충주

푸른새벽* 2006. 12. 16. 00:13

 

 

 

 

 

 

 

 

 

 

 

 

 

봉황리마애불상군(鳳凰里磨崖佛像群)


봉황리마애불상군은 충주시 가금면 봉황리 내동마을 북쪽 산기슭에 있다
불상들이 있는 산은 서쪽으로부터 뻗어온 보련산 줄기의 한 자락으로
내동마을사람들은 '해뜨는 고을의 산'이라 하여 햇골산이라 부른다


불상들은 상당히 가파른 비탈 위 바위에 새겨져 있다


이곳의 불상군(佛像群)은 두 군데에 나뉘어 있다
올라가면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앉은 자세의 본존과 공양자상,반가사유상과 보살상 등
모두 여덟분으로 이루어진 불상군이다
이들은 기울기 45도가 넘는 계단길이 끝나고 비교적 평탄한 벼랑길이 시작되는 곳
바위벽에 새겨져 있다
맨 왼쪽부터 공양자상과 본존상이 있고 그다음 반가사유상이 한분,마지막으로 보살상이 있다
바위가 놓인 방향을 따라 모두 동남쪽을 바라보고 있으며 크기는 대략 1m안팎이다
불상들이 있는 암벽 위쪽에는 다른 암반이 튀어나와 있어서 천연의 지붕 구실을 한다


본존상은 좌상이지만 무릎 부분이 떨어져나갔으며
오른손을 들고 왼손을 내려서 시무외여원인(施無畏與願印)을 지었다
소발(素髮)의 머리에는 육계가 큼직하고 목에는 삼도가 없으며
양쪽 귀는 머리에서 어깨 위쪽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얼굴은 볼이 조금 둥그스름할 뿐 거의 네모졌으며,눈,코,입이 길고 가늘게 표현되었다
어깨 역시 사각형에 가까운 탄탄하고 건장한 모습이며
두꺼운 불의가 두 어깨를 감싸고 굵은 주름을 지으며 가슴으로 흘러내려 손목에까지 드리워졌다
손과 소매 부분은 특히 사실적이다


본존상 옆의 공양자상은 몸 전체가 가늘고 길며 왼쪽 무릎을 세우고 오른쪽 무릎은 꿇은 채
오른손을 코 앞에까지 올려 보주 같은 것을 받들었다
화관을 쓴 머리는 가볍게 숙였고 몸에는 천의(天衣) 주름이 보이며
허리띠에 달린 커다란 고리장식으로부터 길다랗게 띠자락이 드리워졌다
자세히 살펴보면 두 발 모두 뒤꿈치를 들어 발가락으로 몸을 지탱하고 있는데
오른쪽 발가락의 표현이 흥미롭다
한편,본존상과 공양자상 사이 아래쪽에는
머리를 본존상 쪽으로 돌리고 웅크려 앉은 사자 한마리가 어렴풋이 보인다


반가사유상은 왼쪽 다리를 늘어뜨리고 오른쪽 발을 왼쪽 무릎에 올려 놓았으며
오늘손을 들어 둘째.셋째 손가락을 가볍게 볼에 대고 나머지 손가락을 구부린 전형적인 모습이다
왼손은 왼쪽 무릎에 올린 오른발 발목을 잡고 있다
공양자상과 마찬가지로 이 반가사유상에서도 오른발의 발가락 표현이 눈길을 끈다
머리와 얼굴 부분은 다 떨어져나갔지만
관대(冠帶)로 보이는 것이 머리 쪽에서 두 어깨 위로 늘어져 있다
발 아래에는 팽이 모양의 꽃잎이 달린 연화대좌가 있고
거기에서 뻗어나간 연줄기에 보살상들의 대좌가 달려 있다


반가사유상을 시위하고 선 다섯 분의 보살상은 손을 앞으로 모으거나 두 팔을 내려
옷자락을 가볍게 쥐거나 팔을 반가사유상 쪽으로 구부려 보주를 받쳐들고 있다
그중 한 분은 뒷줄에 선 듯 얼굴과 가슴 부분만 보이고 다른 두 분은 얼굴이 떨어져나갔지만
모두 갸름한 얼굴에 단정한 이목구비,가늘고 긴 체구이다
머리에는 보관들을 썼고
그 관대가 어깨까지 드리워졌으며 몸에는 천의자락과 X자로 교차된 영락이 드리워져 있다


이 여덟 분의 상은 미륵과 여래,그 협시보살들을 표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여래상의 당당한 어깨와 가슴,손 모양,두꺼운 법의 주름 그리고 공양자상의 고리장식과 허리띠 처리등은
삼국시대 불상과 보살상에서 볼 수 있는 양식이다
반가사유상의 형태와 협시보살들의 얼굴 및 몸매,천의와 영락의 표현,대좌의 형태 등도
역시 삼국시대 보살상의 특징을 보이며
특히 팽이 모양의 대좌나 보살들의 갸름한 얼굴은 고구려 불상과 매우 닮았다
그러나 삼국 가운데 어느나라의 것인지에 대해서는 좀더 세밀하고 종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이곳에서 벼랑길을 따라 조금 더 가면 막다른 골목처럼 되면서 큰 바위 하나가 앞을 막는다
이 바위에는 훨씬 규모가 큰 여래상 한 분이 새겨져 있다
동쪽을 향한 이 여래좌상은 광배를 뺀 높이가 1.7m 가량이다
결가부좌한 무릎이 유난히 넓어서 너비가 2m 정도나 된다
나발의 머리에 얕은 육계가 있고 얼굴은 거의 네모에 가까우며 눈,코는 길고 가늘며 입이 큰 편이다
어깨도 사각을 이루었고 손은 시무외여원인을 취하였으나
들어올린 오른쪽 팔은 대부분 떨어져나가고 손가락 끝만 남았다
이밖에도 갈라지거나 닳은 부분이 많아서 법의의 모양 등은 알아보기 어렵다
대좌는 없는 듯하고 어깨 위로부터 머리를 둘러 화불(化佛) 다섯 구가 새겨졌는데
모두 무릎을 조금씩 들고 연화좌에 앉은 모습이다


봉황리마애불상들은 남아 있는 한국 불상조각 가운데 매우 빠른 시기인 600년 무렵
삼구기에 조성된 것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131호이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충주 봉황리마애불상군(忠州 鳳凰里磨崖佛像群)


보물 제1401호 
충북 충주시 가금면 봉황리 산27 


산비탈 두 곳의 커다란 암벽에 시기를 약간 달리하여 부조(浮彫)로 조각되어 있는 9구의 불·보살상(佛·菩薩像)이다.


상부에는 높이 3.5m, 폭 8m의 바위면에 불좌상 1구가 양각되어 있고, 하부에는 불좌상 1구와 공양상(供養像)·반가상(半跏像)을 중심

으로 5구의 보살상 등 모두 8구가 새겨져 있다.


비바람에 의한 마멸로 부분에 걸쳐 윤곽이 뚜렷하지 않지만, 마애불상(磨崖佛像) 중 비교적 초기의 예로 한강유역과 낙동강유역을 연

결하는 중간지역이라는 특수한 역사적·지정학적 배경을 바탕으로 조성되었다. 이 마애불상군은 신라시대 불상조각의 흐름은 물론 고

구려 불상의 경향까지도 함께 보여주는 매우 귀한 자료로 그 학술적 가치가 높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