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새벽* 2007. 10. 18. 20:26

오늘아침 자리에서 일어날 때부터 개운치 않더니

오전 내내 두통이 멈추질 않는다

학원에서 받는 강의도 끝났고

시험때 까지 집에서 혼자 정리하고 준비해야 할 일만 남았다

이제 시험은 열흘 밖에 남지 않았는데,살펴봐야 할 자료들은 산더미 같은데

머리가 무거워 도통 집중이 되질 않았다

어차피 책을 들고 있어도 집중할 수 없을 바에야

어디 가까운 곳을 잠깐 다녀올까도 싶었지만

그도 마음편치 않았다

그래서 두어시간 미사리 강변을 걷는 산책으로 대신했다

 

집에서 버스로 십여분 쯤 가면 검단산 입구

그 부근에 있는 아파트 옆으로 난 길이 이렇듯 근사하다

이 길을 십여분 쯤 걸으면 팔당대교 아래쪽이 나온다

자동차에서 홀가분하게 해방되어 좋다

 

 

 

 

아파트 옆을 흐르는 작은 개울에 앙징맞은 징검 다리가 있다

비록 시멘트로 만든 징검다리지만

이곳을 건너는 사람들은 잠시 알싸한 추억을 떠 올릴 것 같다

 

 

 

 

오늘 밤늦게 부터는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푸른하늘

멀리 보이는 검단산 위로 구름이 유유하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팔당대교

강건너 보이는 예봉산이 반갑다

 

 

 

 

억새가 조금씩 보인다

바람도 조금씩 보인다

 

 

 

 

가을은 먼곳도 가깝게 보이는 계절

저 멀리 보이는 산은 무슨산일까

서울쪽의 산일텐데...

 

 

 

 

일상이 지루한 건 반복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추억이란 이름을 붙여 머리속에서 반복하는 과거가 중요하듯

너저분하게 반복되는 현재도 중요한 것이 아닐까

 

 

 

 

어쩌면 진정으로 소중한 것은 반복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반복할 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반복되는 것인지도 모르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매일매일이 쉽지 않은 나날이다

그러나 에너지가 되는것은 열정이나 불연속적인 경험이겠지만

삶의 근간과 본질을 이루는것은 일상이고

연속적인 경험일 수 밖에 없다

 

 

 

 

삶이 깃들이고,

지친몸을 부려 쉴수있는 곳은

결국 이 지루한 하루하루 들의 어딘가 라는 것이다

 

 

 

 

노란들국화

어머니의 꽃이다

가을들국화를 따다가 말려 곱게 갈무리 해두었다가

이듬해 장마철

잘말려두었던 들국화로 배갯속을 채우시던 어머니

눅눅한 장마철을 잊을 수 있게 해 주었던 그 들국화의 香

가을의 노란 들국화

내 어머니의 꽃이다

 

 

 

 

눈물나는 풍경이다

눈물이 나지만 좋아하는 풍경이다

가슴이 아린 풍경이다

가슴이 아리지만 좋아하는 풍경이다

 

 

 

 

은빛 출렁이는 바람을 만난다

어느새 출렁이며 차오르는 추억도 만난다

 

 

 

 

 

갈대

헝크러져 풀수 없는 원망을 본다

 

 

 

 

 

억새만 은빛으로 빛나는 것은 아니다

갈대도 은빛으로 빛난다

다만 그 순간을 만나지 못했을 뿐

 

 

 

 

 

고즈넉하고 잔잔한 풍경에

두통을 잠시 잊는다

깊디깊은 가을이 호수속에 잠겨 있다

 

 

 

 

산책은 나만 하는 줄 알았더니

물오리가족도 산책을 나왔나보다

한가하고 여유롭다

 

 

 

 

바람에 실린 계절

호수에 잠긴 하늘

그 속에 나...

 

 

 

 

고향만이 아니라

사람도 곁에 없을 때 더욱 그리워지던가

오래 떠나있어도 그냥 그자리에서 변함없이 기다려주는 것은

귀하고 아름답다

사람도 고향도 떠나본 후에야 진정 떠날 수 없음을 안다

 

 

 

 

당신은 게으른 구멍가게 주인같다

당신의 사랑은 언제는 열렸다가 언제는 닫혔다가

스물네시간 언제나 열려있는 내 사랑과는 다름을 느낀다

 

 

 

 

시인처럼 시를 쓰며 살아보리라

시인이란 이름은 평생 가지지말고

그러나 안된다

시는 시인만이 쓰는 것이다

시적인 것은 쓸 수 있어도 시는 결코 쓰지 못하리라

 

 

 

 

순천만이 생각난다

순천만의 갈대가 생각난다

이 가을 쓰라린 이별은 없을지라도

이별보다 더한 쓰라림이 흥건히 업질러져 있을 것만 같은 그 곳

순천만이 그립다

 

 

 

 

산책로가 끝나는 곳에서 만난 달맞이꽃

아마 달맞이꽃이 맞을것이다

 

 

 

 

산책로를 벗어나면서 만났던 돌담

가지가지 돌들이 철망에 갇혀있다

반듯반듯하게 철망에 갇혀있는 돌들

저 철망을 걷어내면 돌들이 와르르 뛰쳐나오려나...

 

 

 

 

조금 더 걷는다

철망에 갇힌 돌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호박넝쿨을 만난다

나름대로 아름다움을 느낄수 있는 풍경이다

철망에 갇힌 돌들이 조금은 덜 갑갑할 것 같다

 

 

 

 

저 길이 끝나는 곳

다시 횡단보도를 건너 한 참을 더 걸어가야한다

 

 

 

 

아직 은행잎은 제 빛이 아니다

연두색이지만 가을의 빛은 봄의 연두와는 확연히 다르다

 

 

 

 

이렇게 계절을 고스란히 받아낸 나무도 있다

나무의 이름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알것도 같은데...

 

 

 

 

두어시간 걸린 오늘의 산책

집에 거의 다 왔을 무렵

문득 눈에 띄는 풍경

어느집 담장안

탐스런 감들이 주렁주렁

도회지에선 보기 드문 풍경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다시 맞닥뜨려야 하는

피해갈 수 없는 과제들

잊고 있었던 두통이 다시 몰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