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여행 후기

하루만에 돌아본 강릉 그 세번째

푸른새벽* 2008. 6. 1. 16:45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오랫만에 듣는 노래다

그래,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지 않아도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지 않더라도

열아홉 시절이 황혼속에 슬퍼지지 않더라도

봄날은 간다

아무렴~ 봄날은 아무 이유없이도 간다

한 자락의 봄날을 차장 밖으로 떠나보내며 바다를 보러 경포로 향한다

 

바다를 보겠다고 했어도

강릉에서 바다는 어디로 가야하나 한참을 생각다 결국 찾아가기 쉬운 경포로...

경포해수욕장 입구의 경포대를 먼저 돌아보기로 하고

주차장에 자동차를 세웠다 

그리고 올려다보니 잘 생긴 소나무들 사이로 어째 불안한 조짐이 보인다

그 빌어먹을 철제빔들이...

 

 

 

 

 

경포대주차장에서 50미터 남짓 걸어오르니 바로 경포대가 보였다

역시나...

 

 

 

 

 

공사중이다

너무낡고 헐어서 보수공사 중이란다

공사에 참여하는 분께 물었더니 한 달후에나 끝날거라고

아쉽지만 어쩌랴

어렵사리 찾아간 곳에서 이런 허망했던 기억이 어디 한둘이래야지

물론 보수공사 해야한다

그 모습이 다 낡고 헐어 제모습조차 잃어버릴 지경이 되기전에 해야한다

내가 아쉽다는 것은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실린 고졸한 그 아름다움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이다

기둥.단청.지붕이 모두 날 선 새것들이 아니겠는가...

 

 

 

 

 

건설장비 요란한 경포대에서 고개를 돌리니 바로 경포호가 보인다

경포호는

경호(鏡湖)라고도 하는데 본래 주위가 12 km에 달하는 큰 호수였다고 하나,

현재는 흘러드는 토사의 퇴적으로 주위가 4 km로 축소되고, 수심도 1∼2 m 정도로 얕아졌다고 한다

난 경포호가 바다호수인 줄 알았는데 민물로 채워졌단다

 

 

 

 

 

경포대에서 허청허청 걸어나오는데 주차장 앞 한쪽으로 비닐천막좌판이 여럿 보였다

무얼팔고 있나 보았더니 모두 딸기다

경포에 딸기가 많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한 가게에 들러 딸기 작은바구니 하나를 샀다

운전하며 먹을참으로 아주머니께 부탁해 수돗물에 씻어 비닐봉지에 담아달라 부탁하고...

주인아주머니께 경포에 딸기를 재배하는 곳이 많은가보다고 했더니 오래전부터 경포의 딸기는 유명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비닐천막 뒤편의 밭을 가리켰다

 

 

 

 

 

딸기이파리가 윤기 자르르 한 것이 싱싱하고 튼튼하다

비닐하우스에서 자란 딸기가 아니었다

딸기가 그리 크지는 않았어도 떼글떼글 야무지다

씻어 비닐봉지에 담아 냉장백에 넣어 종일 가지고 다니다 집에 돌아와 풀었는데

희안하게도 짓무른 것이 하나도 없었다

비닐하우스 딸기였다면 반은 짓물렀을터인데...

이것이 오로지 태양볕만 받고 자란 하우스딸기와 비바람 다 이겨내고 맺은 노지딸기의 차이다

 

 

 

 

 

경포대주차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경포대해수욕장이 있다

백사장이 있는 바다를 좋아하지 않는다

동해바다라면

깊고푸른 속내 아득히 들여다보이는 바위절벽이나 방파제가 있는 바다라야 하는데

그런 바다를 좋아하는데

그런 바다를 보러 일부러 찾아가야 하는 것이 어쩐지 피곤했고 또 오늘은 바다가 목적이 아니라

보너스쯤으로 바다를 찾은 것이니 백사장인들 어떠랴  

 

신발속으로 모래가 들어와 발바닥의 감촉이 꺼칠꺼칠하지만 백사장을 따라 바닷바람을 따라 잠시 걷는다

문득

사람이 그립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누군가를 아주 우연하게 이곳에서 만났으면 싶었다

우연히 만나고 싶은 사람이 울컥 그리워지는 그 맘이...

그 맘이 신발속 모래처럼 서걱거린다

 

 

 

 

 

멀리 보이는 섬이 오리바위,십리바위라는 이야기를 아주 오래전에 들은 기억이 났다

정말 저 곳까지의 거리가 2킬로 4킬로가 될까

저곳에 지금 모여 있는 사람들은 분명 배를 타고 건너갔겠지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눈을 감으면 생각이 난다
헤어지던 아픔보다 처음 만난 순간들이
잔잔하게 물결이 된다
눈이 내린 그 겨울 날 첫사랑을 묻어 버리고
젖어드는 외로움에 나는 이제 돌아다 본다
넘치는 눈물 너머로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생각없이 지나온 날들을 후회하고 있는거야시간이 흘러 모든걸 잊을 수 있을거란 생각에 자신했었지
새로운 사람 만나길 기대하면서 즐겁기도 했어
세월이 지나 변한 내 모습이 자유롭고 멋질거라 상상했었지
화려한 세상이 나를 기다리듯이 떠나고 싶었어
하지만 힘들 때 그대 얼굴 떠오르면 숨길 수가 없는 그리움
한번 더 그대와 마주칠 수 있다면 어떻게 하나 돌이킬 수 없겠지

 

한번 더 그대와 마주칠 수 있다면...있다면...

더 무얼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흘러지나간 강물 거꾸로 되흐르게 할 수는 없는 것을...

 

 

 

 

 

경포에서 바다를 눈에 담기만 하고 서둘러 돌아갈 길을 정해야 했다

돌아가는 길에 들러보기로 한 보현사로...

 

그럴것이다 예상했던대로 보현사는 옛 대관령길로 접어들어야 했다

구비구비 대관령 고갯길이 시작될 즈음 비껴들어 한적한 길로 깊숙이 들어간 그곳

이렇게 오래된 절집내력을 알려주는 석종형 부도군이 먼저 반긴다

모양가지가지인 잿빛의 부도군은 이상하리만치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착각이었을까...

 

 

 

 

 

부도밭에서 조금더 올라가니 사각의 지대석 위에 용머리 형상의 거북이를 얹고

그 위에 용 네마리가 실감나게 조각된 이수를 얹은 낭원대사 부도비가 있다

부도비 옆의 커다란 저 돌은 무엇일까

절집을 살펴보고 나오는 길에 다시 살펴봐야 겠다

 

 

 

 

 

일주문이 없는 보현사는 양쪽에 금강역사상이 그려진 금강문이 있다

금강문 너머로 보이는 저 계단을 오르면 주불전이 있으렸다

 

 

 

 

 

금강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니 금방 단청을 막 끝낸 듯한 자그맣고 날렵한 대웅전이 있다

 

 

 

 

 

보현사 대웅전 앞의 돌조각상인데...

앞에서 보니 몽실몽실한 곰인형 같은데 어찌 이상타 싶어 옆에서 보니

아하 강아지구나

우리집 땡이가 날 쳐다보는 옆모습과 흡사하네~

그런데 왜 절집에 이런 강아지 모양이 있는지 아리송~하다

애초의 모양은 강아지가 아니었는데 하 많은 세월동안 깎이고 닳아 강아지 형상이 된 것이 아닐까

아무려나 흐뭇하고 귀여운 모습인 것만은 확실하다

 

 

 

 

 

강아지 모양의 돌짐승 옆에는 이렇게 석탑의 부재 몇개를 차곡차곡 쌓아놓은 것이 있다

탑의 모양새가 완전하진 않아도 눈길을 잡을만한 매력은 충분하다

 

 

 

 

 

넓지 않은 보현사 경내를 한바퀴 휘돌아보고 낭원대사부도를 찾아보려는데

안내에는 삼성각 뒷편에 있다고 했는데

삼성각 뒷쪽에는 아무것도 없고 돌담장에 자그마한 문이 있다

그 문을 열고 나가보면 있으려나...

 

 

 

 

 

빗장 걸린 문을 조심스레 열고 나왔다

 

 

 

 

 

가파른 산비탈을 조금만 올라가면 있다고 했지만

자잘한 댓잎소리 사각거리는 산길을 숨차게 한 참을 걸어 올라야 했다

 

 

 

 

 

숨차게 숨차게 걸어 올라와 보니

낭원대사부도는

중대석과 상륜부의 일부를 잃은 채 산죽이 무성한 산비탈 한쪽에 고즈넉하게 서 있었다

탑신(塔身)을 받치는 기단(基壇)은 세 개의 받침돌로 이루어져 있었다는데

지금은 가운데받침돌이 없어져 아래받침돌 위에 바로 윗받침돌이 얹혀있다.

지붕돌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이 놓여 있다

 

바쁘게 올라와 헉헉대는 내 숨소리가 부도앞에서 죄송하다

 

 

 

 

 

낭원대사부도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엔 이렇게 취나물인 듯한 것이 지천이었다

참취가 맞나? 아닌가?

언젠가 취나물을 뜯으러 함께 간 친구가 매번 가르쳐주는데도 도통 감을 못잡아 핀잔을 들었었는데

이것도...모르겠다

 

 

 

 

 

빗장 지른 문을 열고 나갔으니 다시 들어와 빗장을 곱게 걸어 놓았다

왜 그리 삐걱대는 소리는 크던지

 

이제 돌아가야지...

 

 

 

 

 

빠른 길을 알려주는 네비게이션은

새로생긴 고속도로가 아닌 대관령 옛길로 방향을 잡으라한다

새것은 역시 좋은 것이다

거의 모든 자동차는 새길로 방향을 잡아 갔으니...

얼마전 까지만해도 교통량많기로 다섯 손가락안에 꼽히던 대관령 옛길은

이젠 그 영광(?)을 새길에 넘겨주고 한적한 여유를 즐기고 있는 듯 했다

가다가다 지치면 쉬어서 가면되지

대관령 옛길의 표지석이 있는 곳 건너편 길가에 잠시 자동차를 세웠다

왕복 4차선 도로를 눈치봐가며 무단횡단~

 

 

 

 

 

저 멀리 내가 지나온 길이 보이고 바로 아래엔 다시 걸어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산 첩첩 싸인 내 고향 천리이지만 / 꿈과 생시 오직 돌아가고픈 마음
한송정가에 외로이 뜬 달 / 경포대 앞 스치는 한 가닥 바람
갈매기 떼는 모래밭에 모이고 흩어지고 / 바닷가에 고깃배 동서로 오락가락
어느 때나 고향길 다시 돌아가 / 색동옷 갈아입고 바느질할까

이곳에서 문득

신사임당을 생각했다

신사임당도 아마 이곳에서 저~기 멀리 아득하게 보이는 고향을 보며 눈물지었으리라

 

 

 

 

 

대관령옛길 표지석에서 다시 위험천만하게 고속도로였던 길을 건너 자동차로 돌아오는데 

눈 앞이 환~하다

선자령들머리인 나무계단위에 보이는 저 나무는

산목련이었다

함박꽃...

 

 

 

 

 

나는 목련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산목련에겐 혼이 나간다

내 하루 강릉여행의 대미(大尾)를 장식하기엔 너무도 황공한...

 

이제 더 미련 갖지 말고 돌아가야한다

그나마 쥐꼬리만큼 남은 체력은 오로지 집으로 향하는 길에 써야하니까

 

돌아오는 길은 한적하고 여유로웠다

서둘러야 할 필요도 없고 뒤에서 서두르게 채촉하는 이도 없으니...

허전하게 사위어가는 하루의 끝머리가 고속도로 위에 떠있다

 

하늘은 매서웁고 흰눈이 가득한 날사랑하는 님 찾으러 천상에 올라갈제신 벗어 손에 쥐고 버선 벗어 품에 품고곰비님비 님비곰비 천방지방 지방천방한번도 쉬지않고 허위허위 올라가니버선 벗은 발일랑은 쓰리지 아니한데님그리는 온가슴만 산득산득 하더라님그리는 온가슴만 산득산득 하더라...

 

버선 벗은 발일랑은 쓰리지 아니한데

님그리는 온가슴만 산득산득 하더라...

산득산득 하다는 그 표현에 문득 목이 깔깔하고 눈시울이 젖는다

산득산득...

그래,그런 산득산득함도 나이들면 마음이 몸을 이기지 못하게 된다더라

산득산득보다 버선 벗은 발이 더 많이 아프게 된다더라...

좋아하는 송골매의 노래를 다시 한번 더 돌려 듣는다

아직도 나는 산득산득하다

아직도 나는 산득산득하다

아직도 나는...

 

아침 일곱시에 떠난 강릉으로의 여행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훤히 보일즈음 시간은  밤 여덟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강릉은 그리 멀지 않았는데 왜 그동안 그리도 아득하게 그리워만 했었는지

 

검은 밤의 가운데 서 있어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아
어디로 가야 하나 어디에 있을까 둘러 봐도 소용없었지
인생이란 강물위를 뜻 없이 부초처럼 떠다니다가
어느 고요한 호숫가를 닿으면 물과 함께 썩어가겠지

 

끝이 없는 말들 속에 나와 너는 지쳐가고
또 다른 행동으로 또 다른 말들로 스스로를 안심시키지
인정함이 많을수록 새로움은 점점 더 멀어지고
그저 왔다갔다 시계추와 같이 매일 매일 흔들리겠지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 처럼

 

김광석의 <일어나>를 끝으로 네비게이션을 껐다집에 도착했으니까...

 

(두 번째 후기를 쓰고 나서 4일동안을 죽지는 않을 만큼 앓았다

 

세 번째 후기는 몸살감기로 부터 조금 자유로워진 오늘 꼬박 다섯시간을 앉아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