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경소리/전 남

담양 식영정(息影亭).전남 담양

푸른새벽* 2008. 8. 1. 16:23

 

 

 

 

 

 

 

 

 

 

 
식영정(息影亭)


식영정은 성산의 한끝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뒤로는 곰실곰실 한 소나무가 가득한 성산 봉우리가 섰고 앞으로는 광주호가 내려다보이며
그 건너로는 무등산이 언제나 듬직하게 바라다보인다
정면 2칸 측면 2칸 정자에는 한 칸 반짜리 방이 있고 또한 당연히 너른 마루가 있다


명종 15년(1560),지금 식영정이 있는 곳 아래쪽에 서하당을 세우고 지내던 김성원(1525~1597)은
새로 이 정자를 지어 스승이자 장인인 석천 임억령(1496~1568)에게 드렸다
임억령은 해남 출신으로 1525년에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지냈다
을사사화가 나던 1545년에 동생 임백령이 소윤 일파에게 가담하여 대윤의 선비들을 추방하자
그는 자책을 느끼고 금산 군수직에서 물러나 해남에 은거했다
나중에 다시 등용된 후 1557년에는 담양부사가 되었다
임억령은 천성적으로 도량이 넓고 청렴했으며 시와 문장에 탁월했지만 관리로 일하기에는 부적당하다고 당대 사람들은 말하였다


그런 임억령인지라 정자 이름을 짓는 데도 역시 시인다운 남다름이 있었다
식영정이란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라는 뜻이다
아무 맥락을 모르고 그 이름만 듣더라도 가슴이 흥건해지는데 그가 쓴 「식영정기」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장자』에 나온,자기 그림자를 두려워하여 도망치는 사람 이야기를 말하고 나서)
그림자는 언제나 본형을 따라다니게 마련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자연법칙의 인과응보의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는 처지에 기뻐할 것이 무엇이 있으며 슬퍼하고 성내고 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내가 이 외진 두메로 들어온 것은 꼭 한갓 그림자를 없애려고만 한 것이 아니다
시원하게 바람을 타고,조화옹과 함께 어울리어 끝없는 거친 들에서 노니는 것이다...
그러니 식영이라고 이름짓는 것이 좋지 아니하냐."


'그림자는 내버려두고 그 이전의 경지에서 조화옹(造化翁)과 더불어 노닌다'는 이 유래를 알고  보면
식영정이라는 이름은 그저 서정적일 뿐만 아니라 엄청나게 호방하고 무애(無碍)한 경지를 가리키는 이름임을 알 수 있다


아름다운 경치와 좋은 주인을 찾아, 이곳에는 수많은 문인과 학자들이 드나들었다
송순,김윤제,김인후,기대승,양산보,백광훈,송익필,김덕령...
그중에서도 임억령,김성원,정철,고경명은 식영정 사선(四仙)이라 불릴 정도였다
그들은 식영정에서 보이고 들리는 풍경들을 시제로 하여 수많은 시를 남겼다
그러나 이곳을 가장 유명하게 한 것은 송강의 「성산별곡」이다
「성산별곡」은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성산 주변의 풍경과 그 속에서 노니는 서하당 식영정 주인 김성원의 풍류를 그리고 있다


식영정 뒤편에는 배롱나무 서너 그루가 있어서 이제는 사라진 자미탄의 모습을 그려 보게 한다
임억령은 "누가 가장 아끼던 것을 산 아래 시내에다 심었나 보다 "라고 자미탄을 노래했다
뒤편 공간에는 누가 썼는지 무덤이 하나 있는데
그 뒤로 멀찍이 물러서서 식영정의 뒷모습 너머 붕 떠오르는 듯한 무등산 정상을 바라보노라면 따로 말이 필요없다


식영정에서 내려와 왼편 안쪽으로 보이는 부용당은 1972년에 지어진 것이고 그 뒤에는 김성원이 거처하던 서하당 자리가 있다


식영정은 환벽당,송강정과 함께 정송강 유적으로 불리며 전라남도 기념물 제1호이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담양 식영정 일원(潭陽 息影亭 一圓)


명승 제57호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 산75-1 등 


조선 명종때 서하당(棲霞堂) 김성원이 그의 장인 석천(石川) 임억령을 위해 지은 정자로, 이곳에서 송강(松江) 정철이 성산별곡, 식영정 20영 등 한시와 가사 및 단가 등을 남겨 송강 문학의 산실이 되었고, 우리나라 고전문학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곳으로 역사·문화적 가치가 있는 곳이다.


식영정(息影亭)은 주변 무등산과 광주호 등이 있어 자연환경과 조화미가 뛰어나고 주변의 소나무 고목과 송림, 배롱나무 등이 있어 아름다운 경승지이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