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여행 후기

담양 돌아보기.봉산면.고서면

푸른새벽* 2008. 8. 4. 14:51

 

 더워도 너무 덥다

이 여름의 한 낮을 덥다라는 표현으로는 어림없다

 

담양읍내에서 기대에 절 반도 못 미치는 점심식사를 마치고

장작불로 달구어진 가마솥처럼 뜨거운 오후 두시에 다음의 답사처로 향하며

그나마 자동차 안에서 더위를 식힌다

 


 

담양군  봉산면 제월리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가사 문학의 대가인 송순(1493~1582)이
고향 마을인 담양군 봉산면 제월봉 언덕 위에 지은 정자인 면앙정

면앙정 입구엔 이렇게 가파른 언덕을 따라 올려다 보는 것 만으로도 숨이 찬 긴 돌계단이 있다

줄줄 흐르는 땀을 주체하기 힘들어도 긴 돌계단을 올라야 한다  

 

 


 

땀으로 범벅이 되어 올라온 돌계단 끝에는 생각했던 것 보다는 꽤 너른 평지가 마련되어 있고

그 한쪽 끝에 정자가 있다

면앙정은

특별한 장식 없이 수수하지만 아담하고 기품이 있었다

 

 



면앙정 편액

정자의 이름이면서 송순의 호이기도 한 면앙정
면앙이란 땅을 내려다보고 하늘을 쳐다본다는 뜻으로
아무런 사심이나 꾸밈이 없는 너르고 당당한 경지를 바라는 송순의 마음을 담은 것이라 한다

 

 


 

면앙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가운데 한 칸짜리 방이 있고 빙 둘러 사방에 마루가 깔려 있어

주변의 자연을 안아 들이기에 알맞춤하게 지어졌다




 

사방이 훤히 트인 높직한 언덕 나무그늘에 에워싸여 있는 정자라서 그런지

한여름 불볕의 더위를 피해 낮잠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방안에,마루에 낯선 객이 돌아보기 무색하게 그들은 옷 매무새 흐트러진 것 개의치 않고

단잠을 자고 있었다

잠시나마 마루에 앉아 보려 했던 맘까지 무색했다

 

 



정자 안에는

퇴계 이황과 하서 김인후의 시,고봉 기대승의 「면앙정기」,백호 임제의 「면앙정부」
석천 임억령이 면앙정에서 바라보는 30가지 좋은 경치를 노래한 「면앙정 삼십영」,
그리고 송순 자신의 「면앙정 삼언가」등이 판각되어 걸려 있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고 싶었는데

온통 맨살을 드러내고 잠이 든 사람들 때문에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송순이 처음 이 정자를 지은 것은 나이 41세 되던 조선 중종 28년(1533) 이었다고 한다
젊어서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갔던 그는

몇 차례의 부침을 겪으면서도 77세 까지 관직에 있다가 은퇴한 후

91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면앙정에서 머물렀다고 하는데
김인후,임억령,고경명,정철,임제,양산보,김성원,기대승,박순 등이 이곳을 드나들며

노학자인 송순에게 시짓기를 배우며 좋은 경치를 즐겼으니
면앙정은 호남 제일의 가단(歌壇)을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나무그늘 드리운 정자에 앉아 걸려 있는 편액들 하나하나 살펴보고

정자 뒷쪽으로 시야를 넓혀 아련하게 이어지는 산줄기들과 언덕 아래의 넓은 들과 
그 위로 시원하게 트인 하늘을 보며 뜨거워진 머리를 잠시나마 식히고 싶었던 면앙정

일상의 고단함을 잠시 단 잠으로 달래는 사람들 탓 할수 없어

그냥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어 아쉬움이 컸던 곳...

 



 

찻길에 있는 주차장 입구에 세워진 면앙정 비

 



 

면앙정 주차장 옆엔 숭얼숭얼  붉은 목백일홍꽃이 한창이었다

 

 



면앙정이 있는 담양읍 봉산면을 떠나 영은사석조여래좌상을 만나뵈러 온

담양군 고서면 금현리

갈색의 표지판이 안내하는대로 마을 안 좁은 논길을 잠시 따라 들어오니

화려한 포작의 일주문은 아니어도 격을 갖춘 살문 너머 대숲 사이로 구불구불한 시멘트계단이 보인다

 



 

영은사는 아주 작은 절집이었다

대웅전이라는 편액을 달고 있는 이 작은 건물에 영은사석조여래좌상이 계신가...

 



 

하심(下心)...

하심은 스스로 낮춤이다 

하심은 남 앞에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이는 상대를 높이는 것이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마음

그것이 佛子들의 아름다운 마음가짐 하심이다

 

자그마한 절집 법당 계단앞에서 만난 하심이란 글귀가

분홍색 연꽃처럼 이쁘다

 

 



영은사석조여래좌상(靈隱寺石造如來坐像)

몸 뒤쪽에 있는 배(舟)모양의 커다란 광배(光背)는
머리광배를 한 줄의 선으로 두르고 바깥부분에 불꽃무늬를 새겨 넣었는데

불상과 광배가 한개의 돌로 만들어진 이 석조여래좌상은

나말여초에 유행하던 양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석조여래좌상 곁에 있던 작은 석불 두 기

이곳 영은사스님의 말에 의하면 석조여래좌상과 함께 예전부터 이곳에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작은 절집 영은사에서 만나 뵌 스님

여름 한낮의 더위 무릅쓰고 영은사를 찾아줘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시원한 수박과 포도를 내어주시며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으셨다

한적한 곳 작은절집 영은사의 스님은 사람이 그리우셨던가...

비닐로 얼기설기 지은 스님의 거처에서 잠시 땀을 식혔다

 



 

도시의 더위와는 어림없지만 그래도 덥다

덥다 더워...

 

그래도 어쩌랴

기왕지사 더위무릅쓰고 이렇게 멀리까지 왔는데

작정했던 곳은 빠짐없이 돌아보고 가야지

 

더위로 따끔거리는 얼굴을 연신 두드리며 영은사를 나와 다음의 답사처인 식영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