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돌아보기. 보문사.용운사지
원주시립박물관을 떠나 다음의 답사처인 보문사를 찾아가는 길은
수월하지 않았다
보문사가 위치한 행정구역상의 주소는 원주시 행구동이다
원주시 행구동이라는 주소만 믿고 그저 편안하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인 줄 알았었다
그런데...
보문사는
치악산의 서쪽자락 높지막한 곳에 붙어 있는 절집이었다
자동차 한 대 겨우 지나갈 만큼 좁은 길로 가야하는 것은 그렇다치더라도
그 좁은 길의 굴곡과 경사가 만만치 않았다
가히 '岳'자 붙은 산의 이름값을 느낄 수 있었다
치악산(雉岳山)
치악산 서쪽 자락에 바짝 붙어 앉은 보문사
절집주차장에서 고개를 한껏 젖혀 올려다보면 높다란 축대와 범종각이 보인다
절집으로 오르려면 경사진 높은 축대를 돌아 올라야 하는데
그 경사진 축대 좁은 터에 채소가 심어져 있다
산이 높아 골짜기가 깊은 곳에 볕바른 땅 한뙈기라도 곰살맞게 이용하는 절집사람들의 정서가 기특(?)하다
높직한 축대를 돌아올라오면 절집수조가 먼저 맞는다
허위허위 올라오느라 숨찼을 것 알고 있다는 듯...
아담한 절집이다
보문사는 치악산 자락에 얌전하게 붙어(?) 까무잡잡한 탑 하나 안고 있는 절집이다
작고 아담한 이 탑을 보러 온 것이다
보문사청석탑(原州 普門寺靑石塔)은
보문사터로 알려진 곳에 지금의 절을 새로 지을 때 중 땅속에서 발견된 탑으로,
점판암(벼루를 만들던 돌)으로 이루어진 청석탑이다.
땅속에 오랫동안 묻혀있었던 탓인지 심하게 닳고 부서진 부분이 많으나,
고려시대의 청석탑 양식을 알려주는 귀중한 탑이다.
탑이 있는 풍경은 언제나 그윽하다
그리고 고맙다
이 작은 탑하나 있어 외지고 작은 절집 보문사를 찾는 이유를 말 할 수 있으니...
범종각 누각에 기대 바라 본 절집마당이 더없이 아득하다
보문사 절집 마당으로 오르는 축대 한켠에는 치악산 향로봉을 오르는 길과 거리를 안내하는 표지판이 있다
이 표지판을 지나면 낡고 좁은 숭숭다리(?)가 있다
철제 숭숭다리와 작은 전각
숭숭다리를 건너 작은 전각 마당에 서면 보문사 절집 전체가 보인다
대웅전.범종각과 요사채 그리고 그 위로 또 작은 전각이 있는데
산신각이 아닐까 싶은데 그 곳 까지는 올라가보질 못했다
멀리 둥그스런 봉우리가 보인다
치악산의 서쪽 봉우리 관음봉이란다
보문사를 돌아보고 이제 느긋하게 돌아보는 원주의 마지막 답사처인 용운사지로 향한다
용운사지는 지난번 횡성의 답사때 돌아보리라 작정했었더랬는데
용운사지는
횡성에서 돌아보는 것 보다는 원주쪽에서 접근하는 것이 더 수월하다는 횡성군청 관계자의 권유로
원주답사때 살펴보리라 미루어 두었던 곳이었다
각종 답사자료를 검색해보면
용운사지의 행정구역이 횡성군 서원면과 원주시 호저면으로 각각 다르게 표기되어 있다
폐사지라는 곳에 대한 나의 기대는 남다르다
그 허황한 여유와 쓸쓸한 아늑함
용운사지는 나의 그 기대를 웃게 했다
하지만 그 웃음이라는 것은 탑과 불상을 가두어놓은 녹색 철제울타리만큼의 좁은 내 시야 때문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그자리에 그렇게 있어 준 것만으로도 눈물겹게 고맙고 고마운 탑과 불상
모진세월 견뎌내고 이렇게나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에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곳에 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며
그 역사와 내력을 어림이라도 해 볼 수 있는 것이니까
용운사지삼층석탑(龍雲寺址三層石塔)
기단부 맨윗돌이 손상을 입긴 하였으나, 전체적으로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통일신라 석탑 양식을 계승하면서도 기단 윗부분에 아름다운 연꽃을 장식한 굄돌을 두고,
지붕돌 밑면받침이 4단으로 줄어드는 등 고려 석탑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이 탑 주변에서 ‘용운사’라 새긴 기와가 발견되어 절 이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용운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龍雲寺址 石造毘盧舍那佛坐像)은
불상과 대좌가 비교적 온전하다
결가부좌한 통통한 하체, 통견의 불의에 표현된 빚은 듯한 계단식 옷주름이나
구불구불한 주름선 등 신라 말기 불상의 특징을 계승해서 조성한
고려 초기의 불상특징이 보인다
불상 뒷편의 광배는 깨어진 것을 이어붙이긴 했어도 그 조각이 섬세하고 아름답다
용운사지 탑과 석불이 있는 곳에서 조금 위로 올라오면 세월의 무게가 그대로 느껴지는
우람한 나무가 있다
500년이란 세월을 꿋꿋이 버티고 서 있는 느티나무
울퉁불퉁한 나무의 밑둥치가 근육질의 잘 생긴 남정네를 떠올리게 한다
이제 가을도 그 끝자락에 와 있다
폐사지는 유독 계절의 그림자가 짙다
탑하나 불상하나 지키고 있는 자리에서 멀찍이 떨어져
예전 용운사가 한창 번창했을 당시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용운사지에 도착했을 때부터 들렸던 탁탁거리는 소리
탑과 불상을 돌아보느라 멀찍했던 그 탁탁거리는 소리가 갑자기 귓가로 몰려들었다
콩타작하는 소리였다
콩타작은 가을걷이의 끝을 알리는 것이라고 누군가 이야기 해 준 기억이 난다
계절이 바뀌고 있다
용운사지를 돌아나오다 만난 길
마치 사진틀 속의 그림같다
로버트 푸르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詩를 떠올리게 하는 풍경이다
...하지만 길은 길로 이어지는 법이라
되돌아올 수 없음 알고 있었다...
용운사지를 돌아나와 한 참을 오다보면 칠봉교라는 작은 다리를 지나게 된다
내가 이 작은 다리 앞에 자동차를 세웠던 이유는...
다른 고장에서는 쉬이 볼 수 없는 낯선 도로표지판 때문이었다
노란 바탕에 검정띠를 두른 둥근 표지판에 그려진 장갑차와 30t 이라는 글씨
군 작전 지역이 많은 철원에서도 이런 표지판은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재미있다고 해야하나 낯설다고 해야하나...
칠봉교 바로 옆에는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었다
한적하고 조용한 길을 달리다 문득 만나는 이런 대단한 풍경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분명 고유지명이 있을터이지만 내겐 사전 지식이 없으니
그저 입 벌리고 놀라며 이 대단한 풍경을 사진기에 다 담아내지 못함만 아쉬워 한다
한 여름엔 이 고장사람들의 쉼터로 톡톡히 한 몫 할 것 같다
원주는 두 어번 더 돌아봐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돌아오는 길
다른 때의 답사와는 달리 돌아오는 길이 아직도 밝다
이번의 답사는 느긋하고 편안하게 다니리라 다짐을 했지만 역시 느긋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귀가길이 밝으니 휴게소에 들러볼 여유는 가졌다
항시 귀가길이 어두워 휴게소엔 가능하면 들리지 않았었는데
이번만큼은 다르다
맑은 커피 한잔 생각나서 들렀던 영동고속도로 문막휴게소
말갛고 밝고 깨끗한 휴게소의 간판
돌아가는 시간이 밝고 여유가 있으니 휴게소의 간판까지 올려다 볼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원주
귀래면의 주포리삼층석탑.흥업면의 매지리석조보살입상.소초면의 수암리마애보살좌상과
신림면의 용소막 성당...
아직 원주는 돌아 볼 곳이 많다
다음에 원주를 돌아볼 때는 시간 뿐 아니라 마음까지 느긋하게 돌아볼 수 있길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