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여행 후기

엄미리 장승 세우던 날. 경기 광주

푸른새벽* 2009. 3. 2. 17:52

 2009년 3월 1일

여느 휴일처럼 느긋한 날이 아니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자동차로 십 여분 남짓의 거리에 있는 고장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엄미리

그곳에서 장승을 새로 만들어 세운다는 것을 며칠 전에 우연히 알았고 꼭 참석하리라 맘 먹고 있었던 것은

요즘엔 보기 드문,그것도 서울의 근교에서 행해지고 있는 마을 축제는 흔한 일이 아니며

예전에는 해마다 치러졌던 각 부락단위의 잔치며 축제였겠지만

이제는 거의 자취를 감춘 그야말로 구경하기 힘든 행사였기 때문이었다 

엄미리는  2년 마다 장승을 다시 만들어 세운다는 데 올해가 바로 그 2년 째 되는 해라고 한다

 

 

하남시나 서울 강동쪽의 사람들에게 엄미리보다는 은고개라는 지명으로 더 많이 알려진 곳

하남시에서 광주방면으로 향하다가 오른쪽으로 갈라져 들어가 만나는 곳

각종 음식점들과 계곡이 좋아 많이들 찾아드는 곳

 

오전 10시 10분

보드랍게 다가온줄 알았던 봄빛인데도 바람은 차다

어차피 들판에서 앉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사진을 찍어야 할 것 같아 두툼한 오리털 점퍼를 입었던 것은

돌이켜보아도 정말 잘한 일이었다

 

장승을 새로 만들어 세우는 것도 마을의 큰 행사인데 엄미리 초입을 들어서도 그렇게 번잡하다거나

왁자한 느낌은 없었다

마을초입 개울 오른편에 있는 할아버지 장승과 왼쪽 야트막한 언덕에 있는 할머니 장승을 지나쳐

마을로 드니

비로소 차량들을 안내하는 사람이 보이고 넓지 않은 길 양쪽으로는 주차된 차량이 줄지어 있었으며

넓은 공터에서 왁자하게 장승을 깎는 사람들을 굽어보듯 오른쪽 언덕에는 할아버지 장승 세 기가 더 있고

그 할아버지 장승을 올려다보듯

개울 건너 잡풀 무성한 공터엔 오래된 엄나무를 기대어 할머니 장승 세기가 더 있다

 

내가 이 엄미리 장승을 처음 만났던 때가 2006년 12월 이었다

그 때 느꼈던 이 엄미리 장승의 첫느낌은 바로 단정함 그것이었다

장승을 보고 단정하다 느꼈다면 혹 웃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결단코 그렇게 느꼈다

 

나라안의 여러고장을 답사라는 이름으로 다니며 많은 장승들을 만났더랬다

그런데

나는 이 엄미리 장승을 나무장승가운데 가장 첫 손가락에 꼽는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조금의 주저함도 없다

 

 

오전 열 한시 쯤

마을 어른인듯한 분이 기다란 나무를 다듬고 계셨다

아마도 솟대로 쓰일 나무일게다

 

 




장승의 몸체를 다듬고 있다

좀 놀랬다

장승을 만들때 기계를 사용하는 줄 몰랐었다

순전히 망치와 끌과 대패로만 장승을 만드는 줄 알았다

전기톱과 전기대패가 내는 굉음이 날아오르는 대팻밥 만큼이나 요란하다

 




 

할아버지 장승의 몸체가 다듬어지고 있다

요란한 전기대패의 도움으로...

 

 




아무리 기계가 좋다해도,아무리 기계가 편리해도 사람의 손이 가야 할 부분이 따로있다

도저히 기계로는 못 할 세심한 부분들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손수 연장을 챙겨들고 장승의 머리부분을 다듬고 계신다

 

 




오늘 세울 장승은 모두 네 기

할아버지 장승 두 기와 할머니 장승 두기

엄미리 마을에 사는 청장년들과 어르신들은 모두 참가한 것 같다

장승을 만들어 세운다는 것을 알고 온 외지(外地)의 사람들도 많았다

 




 

장년층이 주를 이루는 행사에서 유독 강한 카리스마를 느끼게 했던 어르신

장승을 만드는 모든 일들을 지휘하고 계신 듯 했다

전기톱을 다루는 솜씨도 여간 능숙한 것이 아니었다

여든이 넘은 연세에 어찌나 정정하신지...

 




 

 마을사람들 이야기로는 백년이 넘은 오리나무중에서 가장 곧게 잘 자란 나무를 선택해

장승을 세우기 하루전에 베어두었다가 다음날 장승을 만든다고 했는데

나무하나로 장승 네 기를 만든다고 했다

베어낸 나무의 가운데를 잘라 나무의 굵은 아랫둥치 부분으로는 할아버지 장승 두 기를 만들고

그 나머지 부분으로 할머니 장승 두 기를 만든다고 했다

 

장승 네기를 만드는 마을사람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점심때가 조금 지났을까

검정양복 차림의 뜨르르한 분들이 납시었다

광주시장이 오셨단다

나랏일 바쁘실텐데,어찌 이 휴일에 쉬지도 못하시고 납시었는지...

 




 

엄미리 할아버지 장승은 수염이 일품인데

수염으로 쓰이는 재료는 들풀이다

 




 

그러데 그 들풀이름을 제대로 아는 마을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 풀 이름은 모르지

그런데 그 풀을 뜯어오라면 당장 뜯어올 수 있지~ㅎ"

 

풀의 이름은 몰라도 누군가 할아버지 수염으로 쓸 풀을 잔뜩 뜯어왔다

짐의털?

짐의풀?

아무리 사전을 찾아봐도 모르겠다

밤나무 아래에서도 밤이 열리지 않았으면 그 나무가 밤나무 인 줄 모르는 나로서는

꽃도 잎도 다 마른 이 계절에야 더더욱 알아볼 도리가 없다

 

 




장승을 만드는 한편에선 모여든 사람들을 위하여 불을 피웠다

이런 작은 불로도 그 주위는 한결 따뜻해진다

 




 

마을 아낙네들이 바쁘다

오늘 장승제를 위해 마을부녀회에서 몇몇분들이 수고를 한다

 




 

누구라도 상관없이 그곳에 계신 분들이나,그곳을 지나가는 분들 모두를 위한 상차림

바람불고 먼지날려서 정신없었어도,앉지도 못하고 서서 먹었음에도 맛있었다

먹거리를 만들어 주신 분들께 감사의 맘 전한다

 




 

장승이 만들어지는 마을 초입에서 더 깊숙이 들어가야 엄미리동네가 나온다

 




 

왁자하게 장승을 만드는 사이 한 무리의 장년들은 할아버지 장승이 서 있는 장승백이로 올라간다

새로 만든 장승을 세우려면 자리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오래된 장승은 뒤로 물리고 그 자리에 올해의 장승을 세운다

오래된 장승을 뒤로 물린다는 것은 또 처음 알았다

처음 광주군 일대의 장승을 돌아보았을 때 광주 하번천장승은 새로 만들어 세운 장승 옆에

오래된 장승이 누워(?) 있었었다

오래된 장승은 뽑아서 그 옆에 자연풍화되도록 그대로 놓아 두었던 것을 봤던터라

장승을 뒤로 물리고 그 앞에 새로운 장승을 세우는 엄미리의 풍습이 새삼스러웠다

아~맞다

그러고보니 부여만수리나 원주거돈사터 주변에서도 장승 여럿이 줄지어 선 것을 본 기억이난다

처음엔 그렇게 장승을 여럿 세우진 않았을 것이다

나무의 풍화가 더디니 해마다,아니면 2년 마다 세우는 장승이 그대로 열을 지어 서 있을 수 밖에...

엄미리 장승도 얼마간은 네 기의 장승이 나란할 것이다

 

 




이제 솟대가 다 만들어졌다

 

솟대라고 하면

강원도 강릉 바닷가의 진또배기를 최고로 친다

물론 그것에 이의는 없다

하지만 내 정서는

일부러 새의 모습그대로 세심하게 깎아 세운 솟대는 좋아하지 않는다

나무의 가지를 그저 생긴대로 툭툭 잘라서 새의 형상을 만들되 누구나 알아보지만

그 새의 종류가 무엇인지는 각기 달리 생각이 들만큼의 새의 전체적인 형상만 갖춘 그런 솟대를 좋아한다

 

다된 솟대를 세워잡고 서 있는 분의 소망과  솟대의 길이는 어느것이 더 높을까...

 




 

이곳 엄미리로 시집을 와서 오십여년을 살았다는 어르신

볕바른 둔덕에 앉아서 장승 만드는 것을 바라보는 눈길이 아련하다

 

"예전에는 지금과 많이 달랐지

장승보다 산에 먼저 제를 지냈어

그 제를 지낼 날이 받아지면 한달동안 외출도 못하고 동네입구에 금줄을 치고

부정한 사람이 이 마을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어

제주(祭主)로 정해진 사람은 부인과 잠자리도 함께 하면 안되고 한달내내 찬물에 목욕재계하면서

제사를 준비했지

그런 정성이 깊어서 그런지 난리통에도 이 마을은 그렇게 많이 피해를 당하지는 않았어

지금은 세상이 변해서 그렇겠지만 산(山)에 지내는 제사는 없어졌고

장승을 세우는 것도 너무 많이 달라졌어"

 

어르신의 눈가에 어린 아련함은 그 시절을 추억하는 회상의 그림자였다

 

 




제일 크고 우람한 할아버지 장승이 그 위용을 갖추었다

 

 




이제 2년 동안 서 있을 자리로 옮겨야 한다

 

 




백년이 넘었다는,아직 물기 마르지 않은 나무둥치를 옮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아니다

그 무게만도 만만치 않은데 혹여 흠집이라도 나면 그야말로 낭패이니

장승을 옮기는 이들의 손길이,발길이  조심스럽다

 

 




일단 장승백이 아래에 내려놓고 다시 둔덕위로 올려야 하니 위치를 가늠해야 한다

 

 




영차영차

이쯤에서 사람들의 언성이 높아진다

 

 




어렵사리 옮겨온 장승을 자리에 맞춰 세운다

 

 




겨우 자리잡아 세운 장승이 뒤로 돌아가 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다시 언성들이 높아진다

 

 




조심조심 장승을 돌려 세웠다

한 숨 돌린다

 




 

엄미리 장승을 세우는데 단연 주역으로 활약(?)하신 공재천 어르신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장승이 서 있어야 할 위치를 정확하게 짚어 주신다

 




 

할아버지 장승을 세우는 사이 다소곳한 할머니 장승을 경운기에 싣는다

할머니 장승은 할아버지 장승이 있는 곳에서 개울하나 건너 있으니 그리로 옮겨가는 것이다

도저히 그냥 들어서는 옮길 수 없으니 경운기를 동원한 것이다

 

 




영차영차

경운기에 할머니 장승을 옮겨 모시는일도 수월한 것은 아니다

 

 




그 사이

할아버지 장승은 제자리를 잡았고 마지막으로 사모에 날개를 끼우는 일만 남았다

 




 

긴 날개의 사모를 쓴 장승인지라 옮길 때 혹여 부러지는 낭패감을 당하지 않으려고

장승이 자리잡아 제대로 섰을 때 비로소 사모의 날개를 끼운다

 

 




마지막으로 솟대를 세우고 장승이 쓰러지지 않도록 장승 아래를 막돌로 단단히 쌓아 마무리를 철저하게 한다

 

 




장승이 서 있는 바로 아랫쪽에 있는 커다란 돌

어르신들은 장승에게 제(祭)를 지낼 젯상으로 쓸 넓적한 돌을 정리하신다

제물을 준비하는 마음으로,제물을 준비했던 정성으로

손바닥으로 쓸고 또 쓸고...

 

 




젯상을 쓸고 또 쓸고

차가운 날,차가운 돌을 손바닥으로 쓸며 이 어르신은 어떤 기원을 했을까

말없이 가만가만 젯상을 정리하는 그 모습에서 감히 근접할 수 없는 어떤 엄숙함을 느낀다

 

 




개울건너에 할머니 장승이 모셔질 자리다

 




 

할머니 장승이 경운기에 실려 도착하였다

 

 




처음엔 왜 머리부터 올리지 않을까 궁금했었는데

아랫쪽부터 올려야 장승을 세우기 쉽다는것을 알고는 내 무식이 잠깐 미안했다

에고~

할머니 멀미 하실라~

 




 

할아버지 장승을 세우고 난 후라서 그런지 할머니 장승은 거뜬하게 모셨다

 

 




야~ 할머니도 역시 여성은 여성이다

날씬한 S 라인의 할머니 장승

먼저 세워졌던 할머니 장승들 보다 한결 그자태가 요염해서

개울건너의 할아버지장승들의 관심을 혼자서만 받을 것 같다

혹 오늘 밤 새내기 할머니 장승은 먼저 세워진 할머니 장승들에게 호된 신고식을 치르진 않을까~ㅎ

 

오래되어 이젠 그 수명이 다한 고목둥치와 그 나이를 알 수 없는 엄나무에게 기대선 할머니 장승

눈맛이 시원하다

 

 




오늘 만든 장승은 모두 네기

이제 이 두 장승은 저 아랫쪽 개울가에 세워질 할아버지 할머니 장승이다

이 역시 경운기로 옮겨야 한다

 




 

경운기에 실린 솟대를 보고 공재천 어르신이 걱정하신다

"기러기와 대를 이렇게 연결하면 안되는 것이여

이건 그냥 구멍에 끼운것 밖에 더돼?

기러기를 끼울 때 구멍에 쐐기를 만들어 끼워야 나중에도 빠지지 않는 것이여~"

어르신의 걱정을 들을 만 하다

 




 

할아버지 장승앞에서 이제 제를 올릴 차례다

 




 

오십여년을 이 마을에서 살아오면서 수도 없이 많는 장승제를 보았다는 어르신

할말이 많으신게다

 

"예전에는 장승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어

산에서 지내는 제사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지

저 산위에 독을 묻어놓고 거기서 제사에 쓸 술을 익혔어

날씨가 이리 차가워도 술이 얼지도 않고  얼마나 잘 익었는데..."

 

 




지금은 제주를 특별하게 뽑은 것은 아니고

엄미리에 살고 있는 신체.용모 단정한 사람이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예전에는 제주를 뽑는 것도 매우 엄격했다고 한다

장승제의 제주는 그 부락에서 가장 깨끗하고 부정이 없는 남자를 선정하게 되는데

구체적으로 상중(喪中)이라던지 가족 중 출산을 한 사람이 있다든지

가족 중 환자가 있어도 안되고 흉물을 보았거나 만진 사람도 제주를 맡을 수가 없었다고 하며
제주로 선출된 사람은 제삿날까지 부인과 별거하며

매일 골짜기 깨끗한 물에서 목욕을 하여 몸을 깨끗이 하고

부정한 사람과 만나지도 못하며, 한 달간 도를 닦듯 생활해야 했다고 전한다

 

 




제를 지내는 동안 마을 어르신들은 예전과 지금의 달라도 너무 달라진 장승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저 편한대로,그저 단촐하게 변한 것이 어찌 이 장승제 뿐이랴

세월이 그렇게 변한 것을...

 




 

엄미리장승제는

그 역사가 3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병자란 당시 호군들이 남한산을 포위하고 있으면서 점령지 주민을 괴롭혔고

전란이 끝난 직후부터 전염병이 창궐하여 부락의 안녕과 전염병 침투를 막기 위한 방편으로

부락민이 산신에게 치성을 드리고 부락 어구에 장승을 세워 수호토록 한데서 유래된다고 한다

 




  

축문을 읽지 않은 제사에 상차림 왼쪽으로 둘둘 감아 놓은 흰 종이가 보였다

축문을 쓰지 않았으니 소지(燒紙)는 아닐터이고

물어보았더니

젯상에 놓인 북어를 감아서 솟대에 매달 때 쓴다고 했다

 

 




제사가 끝나고 젯상에 올려졌던 북어를 종이에 감아 솟대에 매달고 있다

 

 




개울건너 할머니 장승에게도 똑 같이 제를 지낼 것이다

 

 




오전 열 한시에 장승제를 보러 갔던 엄미리

나는

할아버지 장승에게 제를 지내고 난 후 흰떡을 얻어 먹는 걸로 엄미리 장승제를 마감했다

그때가 오후 세 시가 조금 넘은 시간

바람도 차갑고 무엇보다 다섯 여 시간을 서서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느라 허리가 몹시 아팠다

 




 

자동차로 엄미리 장승제가 치러진 곳을 돌아나오며 다시 마을 아랫쪽의 장승이 세워질 곳을 보았다

엄미리 장승은 모두 네 곳에 모셔져 있는데

네 곳 모두 엄미리 장승으로 통일해서 불러야 한단다

나도 처음엔 그저 책에서 본 대로 엄미1리.엄미2리가 따로 장승을 만들어 세우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그날 다시 알았다

엄미리에 있는 장승 네곳  모두 그냥 엄미리 장승이라 불러야 한다는 사실을.

 




 

아랫쪽 마을 개울건너에 있는 할머니 장승

조금 있다가 이곳에도 다시 날씬한 S라인의 할머니 장승이 신고식을 할 것이다~ㅎ

 

 

*다섯 시간동안 살펴본 엄미리장승제를 이렇게 간단한 글로는 다 설명할 수도, 소개할 수도 없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시각에서,지극히 개인적인 내 정서를 담아 써 보았다

혹여 엄미리에서 살고계신 분들이나 엄미리 장승제에 관해 연구하시는 분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게 되었다면 양해를 구하고 오류의 지적을 부탁드린다

아울러

장승의 제작과정은 다음에 다시 소개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