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사 돌아보기. 전남 강진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가고 또 가는 곳이 어디 부석사 뿐이랴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찾았었고 또 찾게 된 곳은 전라남도의 강진이라는 고장
그 중에서도 월출산 자락의 무위사이다
처음 무위사를 찾았을 때나 일곱번째 찾은 지금이나 변함없는 풍경
자동차로 어느순간 닿게되는 무위사 입구
월출산 무위사라는 편액이 걸린 금강문도 저 만치 보이는 극락보전도 낯익다
반들반들한 가지 그대로 드러낸 배롱나무 사이 계단을 지나면 고아한 자태의 극락보전이 있다
아~!
계단끝 오른쪽 큰 키로 반기는 느티나무도~
엄숙하지만 단정한 부드러움과 고아한 기품이 서린 무위사 극락보전
오늘따라 무위사 극락보전 솟을살문이 유난스레 씻은 듯 말갛다
문틀안에 동일한 격자와 교차된 빗살만이 연속적으로 전개된
하나하나의 블록에 빗장을 친 것이기 때문에 더욱 견고한 느낌을 준다
문은 원래 벽이고,그 일부분에 낸 구멍일 뿐이다
시각적으로는 모순이기 때문에 문의 존재를 확실하게 해놓지 않으면 혼란을 가중시키게 된다
부처님을 모신 법당 건물은 최고의 신성한 장소로서 외부와 잘 차단되어야 한다
그러나 완벽하게 차단된 벽에 뚫어진 문의 존재는 시각적으로 불안정하게 느껴진다
따라서 솟을살문의 견고하고 확실한 이미지는 그것을 보완하는데 적절한 디자인이 된다
(관조스님 지음 '사찰 꽃살문'중에서)
법당엔 아무도 없다
아니 아무도 살지 않는 절집처럼 오늘 무위사는 텅비어 있다
아무도 없는 법당에 조심조심 들어간다
조선초의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고려불화의 화려함이 그대로 드러난 무위사 극락보전의 후불벽화와
아미타불상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관음보살상이 오른쪽에는 지장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목조아미타삼존불좌사은 보물 제1312호이며 극락전아미타후불벽화는 보물 제1313호로 지정되어 있다
무위사 극락보전의 천장의 장식
맞배지붕을 이루는 부재가 그대로 드러난 극락보전의 내부천장
만약 무위사에 스님이 계셨다면 사진기 들이대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을거라고
누군가 귀띔을 해 주었다
"무위사 스님이 얼마나 무서운데 그걸 사진으로 찍겠어요~"
다행히 내가 무위사 극락보전에 들어갔을 때는 텅 비었다 할 만큼 무위사엔
스님은 고사하고 보살들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행운이 나에게도 있구나~
그런데 그런데...
백의관음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기는 그 공간이 너무도 좁았다
크고 큰 그림을 50cm정도의 거리에서 사진을 찍으려니 내 솜씨로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어떠랴
이런 기회가 나에게 앞으로 언제 더 주어질지 모르니 기필코~
무위사 극락보전 뒷벽에 모셔진 백의관음도
하얀옷을 입고 있는 백의관음보살은
당당한 체구에 흰 옷자락을 휘날리며 오른쪽으로 몸을 약간 돌린 채 두손을 앞에 모아 서로 교차하여
오른손으로는 버들가지를 들고 왼손으로는 정병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 어찌나 당당한지
범접하기 힘든 기운과 힘이 느껴지는 벽화이다
법당안을 아무도 없을 때 살펴봐야 한다는 조바심과 위기감(?)에 지나쳤던 극락전 앞 두 쌍의 괘불대 사이
이쁜 배례석이 이제사 눈에 들어온다
은근한 멋이 풍기는 극락보전의 측면
조선초기의 대표적인 목조건축물인 무위사 극락보전은
기둥과 들보가 이루어내는 조화로운 면분할과 차분한색감이 이루어내는 은근한 자태가
국보로 대접함이 당연하고 당연하다
극락보전 왼편 마당에 자리하고 있는 무위사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 삼층석탑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무위사 선각대사편광탑비
무위사 선각대사부도비는 천 년이 넘도록 상처하나 입지 않고 잘 보존 되었다니 고마운 일이다
몇 번이나 이 부도비를 살펴보았지반 언제나 새로운 느낌이다
선각대사부도비의 이수부분의 화려한 조각장식
보고 또 봤는데도 놓쳤던것 같다
비석머리 네 귀퉁이에서 불쑥 고개를 내민 거북의 머리조각
왜 그동안은 눈에 띄질 않았었을까...
비석을 업고 있는 거북의 꼬리모양새
또르르 말린 거북의 꼬리가 "나 지금 심심해~" 하는 것 같아
간질간질 간질여 보면 금방이라도 탈탈 꼬리를 칠것 같다
거북의 발가락 뒤에는 날개모양으로 달린 것이 있는데 물갈퀴 인가...
무위사도 예전의 조촐한 절집이 아니다
극락전 뒷편과 절 마당 앞쪽 으로는 크고큰 건물들이 새로생겼고
극락전 뒷편으로도 돌담장을 척척 쌓아 경계를 만들었는데
그 때문인가 휑한 느낌은 조금 덜했다
괘불대와 배례석과 삼층석탑 그 뒤편으로 무위사 벽화를 보관해 놓은 성보박물관이 보인다
처음 무위사에 왔을 땐 많은 벽화들이 금강문을 지나면 왼편으로 있었던 허름한 전각에 모셔져 있었는데
이젠 저렇게 근사한 건물에 모셔놓았단다
무위사 성보박물관에 전시된 벽화들
무위無爲...
이 순간 사람도 하나없고 할 일도 없다.
그야말로 무위.
예전 한 여름 배롱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을 때 그 빨강을 가슴에담고
이 문을 나선 적이 있었다
이제 배롱나무 새순틔울 준비하는 무위사의 이 계절도 가슴에 담고 문을 나선다
무위사 초입에 있는 찻집이 오늘은 문을 닫았다
쉬는 날인가
닫힌 찻집을 한마리 까치가 지키고 있다
무위사의 흰둥이도
無爲...
무위사에도 이제 일주문이 생긴다
아직 현판도 없고 단청도 하지는 않았지만 조만간 크고 웅장한 일주문이 위용을 자랑 할 것이다
불교의 절집에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절집 無僞寺
그러나 천년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무위사는 '무위의 절집'으로
우리나라 남부지방의 불심을 대변하고 있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리라
무위사는
번잡한 도시 살림살이와 헝클어진 사람살이를 가만히 들여다보게 하는
그런 무심無心의 절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