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여행 후기

강진 돌아보기. 전라병영성지.병영홍교

푸른새벽* 2009. 3. 23. 11:17

 강진읍내의 작은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였으니

이번 강진여행에서의 마지막 답사처로 정한 전라병영성지가 있는 병영면으로 가야한다

몇날 며칠을 꼬박 돌아보아도 모자랄 곳 강진이지만

시간이 허락하는만큼만 욕심내지 않고 돌아보려했기에 오후 세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지만

느긋하다

이번에 미처 돌아보지 못한 곳은 다음에 또 찾아오면 된다

그때까지 내 그리움은 또 그렇게 절절할 것이고  그 절절함은 또 다른 나의 에너지가 된다

 

 

우선 눈에 들어오는 풍경

멋진 소나무 한그루와 석축

 

강진군 병영면 성동리

전라병영성지는 발굴공사중이었다 

우리나라 굴지의 건설회사의 이름이 씌어진  굳건한 철제가림막이

병영성지 입구를 감히 넘어다보지도 못하게 둘러져 있었지만 관계자들이 드나드는 문은 열려 있었고

또 따로이 제지하는 이도 없었다

 

 




내 자동차를 세워둔 곳이 병영성지 입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병영성지에 들어갈 수 있었던 곳은 이곳이니 여기서부터 돌아보았다

하긴 병영지에 무슨 입구가 따로 있을까만은...

 

 




병영성이 있었던 터를 정비하는 작업은 여간 큰 일이 아닐터이다

무너진 석축을 다시 쌓는 작업부터 병영터 곳곳에 남아 있는 흔적들을 복원해야 하는 일인데

 

병영터보다는 저 소나무에 자꾸 눈길이 간다

참 잘생긴 나무다

 

 




병영(兵營)이란 조선시대 지방군사 조직으로
이 유적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서남부 지역의 군사본부로서 큰 역할을 담당했던 곳이다

 




 

성곽시설로는
석축, 토축 외에 수구문 3개소, 옹성 7개소, 건물지, 조석등 석재와 25기의 비석(면사무소 내)이 잔존하며,
성내에는 병영초등학교(성내 북부)와 학교 관사, 민가 1동이 있고, 나머지 지역은 농경지로 경작중이며,
서측 및 남측 일부구간은 성벽을 개간하여 경작중인 곳도 있다

 

 




7개가 있었다던 옹성중 새로 복원된 옹성

 




 

병영성터 곳곳을 이렇게 비닐로 씌워놓고 붉게 표시해 놓았다

 

 




동 병영성은 조선시대 전라도의 육군훈련 및 지휘부 기능을 담당했던 사령부가 있었던 곳으로
5개의 영과 53주 4성을 통할하던 군사요충지로서
국내 병영성 가운데 남해안 지방의 것으로는 보존상태가 좋은 유일한 것이다.

 

 




무너진 성곽의 바깥쪽에는 이렇게 물이 고여 있었다

외부의 적을 방어하기 위한 해자(垓子)가 있었던 흔적은 아닐까

병영성에 해자가 있었다는 글은 본 적이 없는데...

 

 



 

성벽의 아랫쪽에는 이렇게 물이 드나들 수 있는 수구도 있었다

 

 




전라병영성지는 조선 태종 17년(1417)에 축성된 길이 1,060m 가량의 장방형 평지성으로
조선 효종 7년(1656)부터 현종 4년(1663)까지 표류중이던 네덜란드 선원 하멜 등 33명이
7년간 이 곳 성안에서 체류한 곳이다.
1894년 동학란 때 성내 전체 건물이 소실되었고, 1895년 해체되어 석축과 건물터만 남아 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서남부 군사본부로서 큰 역할을 담당한 곳이다.(문화재청자료)

 

전라병영성터가 제대로 복원되어 제 모습을 갖추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

예전의 작은 고을이 병영면으로 이름지어졌다면

전라병영성이 이 고장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리라

아직도 병영성내에는 초등학교와 민가가 들어서 있으니

병영면 전체가 옛 병영성이 차지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짐작도 해보았다

 

먼지 풀풀대는 성터에서 느끼는 감회는 절터에서 느꼈던 감상과는 또 다른 빛깔이다

 

 

 



전라병영성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병영홍교가 있다

 




 

서둘러 맞았던 봄이 싸아해진다

옷깃을 파고드는 바람때문이다

 





병영횽교는

이제 할 일이 별로 없다

다리는 사람과 우마차를 건내주어야 하는데

건너려는 사람도 지나가는 우마차도 없다

그래서 할 일이 없다

 




 

할일이 없는 홍교는 제모습을 담그어놓은 개천을 흐르지 못하게 붙잡고 있다

절대 가뭄 때문에 수량이 줄어든 개천 탓은 아니다

 

 




할일 없어 제 모습 물에 담그어 놓은 다리라고 해도 홍교다

무지개다리의 안쪽 홍예에는 눈 부릅뜬 형상의 용머리가 매달려 있다

 




 

병영성 홍교의 옆에는 만든지 얼마되지 않은 석상 두 기가 서 있다

이곳에 석상을 세운 까닭은 뭘까

혹 노비와 양반집 딸 사이의 신분을 초월한 사랑이야기를 전해주려고 세운것은 아닌지

 

 




병영홍교가 있는 건너편에는 커다란 저수지

2월 늦은 오후의 바람이 저수지에 커다란 일렁임을 만드는 것도 모자라는지 으스스하게 달겨드니

옷깃을 단단히 여민다

2월의 바람은

 가슴속에도,머릿속에도 소름을 만든다

 

 




남도의 봄빛은 아무리 유명한 화가라해도 그 빛을 표현하지 못하는 초록이라했다

강진의 들판엔 초록을 준비하는 봄이 있었다

 




 


꽃샘바람이 며칠 불고
나는 메말라 목이 마르다
이 며칠은 속절없이 아프다

그래도 이 한 몸
세상의 바람에 실린 것은
행운이었다!
세상은 살만한 것이라는 것을
언제나 뒤늦게야 깨닫는다

봄이 미처 오기 전에
이 며칠은 또 속절없이 앓게 될 것이다

철 이른 황사바람이
코끝에 차고 맵다

눈물어린 풍경을 건너
봄은 산너머 어딘가에 와있을 것이다.
*엄원태詩 '꽃샘바람'

 

내 허기짐을 반도 채우지 못했지만 어쩌랴

병영홍교를 마지막으로 강진을 떠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