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돌아보기. 송제리탑.철천리석불입상.칠불석상
어젯밤의 이슬자욱이 채 가시기도 전에 돌아보았던 나주향교와 당간지주를 뒤로하고
나주시 세지면의 송제리탑을 만나러 가는 길
자동차 시트 열선의 따신 온기가 스멀스멀 온 몸에 퍼지듯 아침햇살이 퍼진다
나주시 세지면 송제리
초입에 키 큰 탑이 있는 마을의 아침이 말갛다
1층 몸돌이 유난히 길쭉해서 그런가 차분한 안정감은 느껴지지 않는 송제리오층탑이지만
햇살 퍼지는 아침나절에 보는 송제리탑은 그 매무시가 간결하고 깔끔하다
지붕돌 처마의 네 귀퉁이에서 고려탑의 특징이 살째기 보인다
송제리탑이 서 있는 주변엔 뾰족뾰족 봄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남도의 초록이다
제법 많이 자란 갓이 다부룩하다
톡 쏘는 그 맛은 생각만으로도 콧속이 맵지만 이른봄에 만나는 이 검푸른 갓은
어느 화초보다 이쁘다
남도의 멋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송제리탑이 있는 자리에서 고개를 약간 돌리면 이렇게 담장에 멋진 그림이 그려진 여염집이 있다
지난가을에 미처 거두지 못한 채소들이 널부러져 있어도 그리 황량해뵈지 않았던것은
푸근하고 정감있는 남도의 성정이 그대로 드러난 한 폭(?)의 그림 덕이리라
송제리탑이 있는 곳에서 들판건너 언덕에 조로로 모여있는 묘지들
어느 문중 묘지인가...
묘지가 늘어서 있는 모습이 올록볼록 앰보싱처리가 된 것 같다
탑이 있고 마을이 있고 남도의 초록이 있는 풍경
여러가닥 전선과 전봇대 아랑곳 없이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그림이다
내가 아침식사를 했던가?
뜨거운 국에 밥말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벗어난다는 건
조그만 흔적 하나 남기지 않는 것
남겨진 흔적 또한 상처가 되지 않는 것
예리한 추억이 흉기 같은 시간 속을
고요하고 담담하게 걸어가는 것
때로는 용서할 수 없는 일들
가슴에 베어올 때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위를 스쳐가는 滿月같이
모든 것 내려놓고 길 떠나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_김재진詩 '그물에 걸리지 않은 바람같이'중에서-
아침의 그림자는 언제나 신선하다
나뭇가지에 달려있는 아침이 만개한 꽃으로 다가온다
이 눈부신 설렘은 저 길 끝 어디쯤에서 환상으로 끝날 지라도
잠깐동안 누려보는 이런 착각이 즐겁다
길은 언제나 없던 문을 만든다
그리움이나 부끄러움은 아무 데서나 정거장의 푯말을 세우고
떠나가고 나면 언제나 암호로 남아버리던 사랑을
이름 부르면 입 안 가득 굵은 모래가 씹혔다
다시 펴보는 지도, 지도에는 사람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이문재의 詩가 머릿속을 맴돈다
다 외우지도 못한 詩가 순서도 없이 뒤죽박죽 엉켜 맴돌고
나는 막상 그 詩의 제목도 모른다
네비가 가르쳐주는 방향이 틀렸다
이 부근에서 많이 헤맸다
나주시 봉황면 철천리 미륵사
미륵사는 근래에 웅대한 불사가 있었던 듯 석축위 전각들이 새롭다
얼핏 강진의 백련사가 떠오른다
내가 찾으려는 칠불입상과 석불입상은 아마도 저 전각뒤 언덕위에 있지 않을까 싶다
처음 웅대해보이던 절집의 전체적인 규모와는 달리 대웅전은 소박하다
미륵사 대웅전 뒤편으로 난 계단을 오르면 왼쪽으로 칠불입상과 석불입상이 보인다
와~ 참 크다
몹시 크다는 느낌이 든다
높다랗고 넓은 터에 자리잡고 있어서 그런것은 아닐터이고
나주 철천리 석불입상이 유달리 크다는 느낌이 드는것은
광배와 불상과 대좌가 모두 한 한돌로 이루어졌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얼굴빛이 그리 친절해뵈지는 않는 불상이다
살이 많은 얼굴과 당당하지만 볼륨감이 없는 몸매와 규칙적인 옷주름 등에서
고려 초기의 불상으로 추정되며 보물 제462호이다
인근 사람들 말로는 불상 주변의 산세가 연꽃이 벌어진 모양이고,
불상이 있는 곳은 연꽃의 화심花心에 해당하는 곳이라 한다
석불입상의 아래쪽에 있는 칠불석상(七佛石像)
부드럽게 마모된 삼각뿔 모양의 바위에 빙 둘러가며 불상을 새겨 놓았다
바위 꼭대기는 오목하게 패여 있는데
이곳에 동자상이 올려져 있었는데 언제인지 없어졌다고 하며
동네 사람들이 이곳에 둥근 돌을 올려놓고 굴리며 소원을 빌기도 했다고 한다
불상들의 자세나 표현으로 보아 고려 시대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조각 수법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고깔 모양의 바위 표면에 불상을 새긴 것은
우리 나라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희귀한 형식이며
보물 제461호로 지정되어 있다
아침햇살이 불상의 어깨너머에 있다
석불입상과 칠불석상이 있는 곳에서 내려다 본다
웅장한 전각 그 너머로 아침이 있고 봄이 있고 남도의 들판이 있다
칠불석상과 석불입상이 있는 곳 앞쪽으로는 간이 참배공간이 있다
하얀천막으로 만든 이 참배공간은 아마도 날 추울때나 일기불순할 때를 대비해서 만든 것이지 싶다
석불입상 뒤편에 있는 묘지
이묘지가 먼저 였을까 아니면 석불입상이 먼저 자리했을까
석불입상을 세운시기는 고려 초기라고 보면 이 묘지는 아마도 그 후에 생겼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석불입상이 서 있는 터는 소유자가 개인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나라에서 정한 보물이 있는 그 자리에 음택을 마련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이런 경우를 많이 보긴했다
높은 언덕에 자리한 미륵사를 내려와 이제 장승을 보러 간다
돌장승 유명세를 떨치는 나주의 대표적인 사찰 불회사.운흥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