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여행 후기

꿈결이었나...남해바다

푸른새벽* 2009. 3. 29. 14:13

경남 진주...

난 한번도 진주가 그리워 본 적은 없었다

진주에 있는 그 많은 우리의 문화유적이 그리웠던 적도 없었다

진주에 가 보고 싶다는 생각조차 해 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진주에 갈 일이 생겼더랬다

결코 유쾌하지 않은 일로...

 

진주에서 두 어시간 일을 마치고 우연찮게 남해를 찾게 되었다

동행을 한 이가 진주.사천.고성.남해에 많은 지기들이 있었기에

얼떨결에 나도 남해바다를 볼 기회를 가졌었다

답사기는 아니다

그냥 남해의 노을과 남해의 밤과 남해의 아침바다를 보며 좋아하는 詩와 노래를 듣는다

 

 

새들이 날아가다 철탑 위에 멈춰 서면 그리웁지 않은 것도
그리워진다. 그리움보다 멀리 빨리 닥쳐오는 것은 예감밖에
없다. 저녁은 둥글고 노란 감나무 빛깔의 안녕을 전해준다

 

 

 전화보다 예감을 믿는 저녁이다
그래 예감보다 폭력을 믿는 저녁이다
폭력보다 돈을 믿는 저녁이다. 하지만 비는 나무에서 먼저 오고
하늘은 구석기의 얼굴을 장쾌하게 보여준다

 

 

집들 사이의 나무들보다 나무들 사이의 집들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예감은 그 어떠한 매스 커뮤니케이션보다 화려하다
나는 이 예감으로 20세기의 불행을 추억보다 빨리 완성하리라
전화보다 예감을 믿는 저녁이다
아니야 예감보다 주먹을 믿는 저녁이다
주먹보다 쓸쓸하게 나를 나뭇잎 지는 저녁을 믿는 아침이다

*박용하詩 '전화보다 예감을 믿는 저녁이 있다'

 

 

 

여자하고 있어서 행복하다는 것은 정말 잠깐이다
여자하고 떨어져 있어야 그립고 행복한 것인데
자꾸 여자 가까이 있으려 한다
정말 잠깐이다
차 한 잔 마실 만한 시간이다
맥주거품이 다 걷혔을 때
여자에 대한 거품도 걷혀진다
여자들도 남자를 그만한 것으로 여길 거다
여자와 남자는 같은 생각을 하니까
그보다는 바다하고 있는 시간이 길다

 

 

여자하고 지내는 시간이 이렇게 길었다면
머리털은 물론이요 수염도 다 빠졌을 것이다
어떻게 변명해야 이쪽 저쪽 다 좋은 소리가 되나
여자와 노는 시간을 어떻게 변명해야 여자가 알아듣나
그것을 나는 바다에게 묻고 있다
*이생진 詩 '바다와 여인'

 

 

아침 동틀 무렵
어머니는 아버지 잠바를 걸치고
잠든 우리들 머리맡을 지나
돈 벌러 어판장에 나갔다
겨울 내내 어머니는 바다를 상대로
허기진 살림을 꾸려 나갔다

 

 

저녁 해질 무렵
아버지는 술집에 가서 소주를 마시고
나와 동생에게 막국수를 삶아 주었다
겨울 내내 아버지는 바다를 등진 채
낡은 그물만 손질하였다

 

 

 

그러나 그러나 겨울 새벽 포구에는
뱃사람들이 속 쓰리는 배를 움켜쥐고
거칠게 노를 저으며 바다를 향해 떠나갔다
그해 겨울 바다에는
밤마다 눈이 하염없이 내렸고
고깃배가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너무나 배가 고팠다

 

 


건너서서 저편은 딴 나라이라
가고 싶은 그리운 바다는 어디

*강세환 詩 '겨울바다'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 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나짐 히크메트詩 '진정한 여행'

 

 

바다에는 커다란 음반音盤이 하나
밤낮 돌면서
제 가슴을 비워
푸른 물소리를 만들고.


뭍에서 뜻을 잃은 새들은
바다로 가서
바람에 귀를 씻고
그 소리를 듣고 있다는데

 

 

나도 마음 한구석 설레며
바다로 나가볼까
몸 기울여
바다가 될까.
가까이 갈수록 바다는 조금씩 몸을 감추었지만
음질音質이 좋은 푸른 음반은 돌면서
흐린 내 귀를 씻어주는데
바다에 몸 기울인 새들은
날아서 뜻을 짓는구나.

 

 

떠나간 이여
떠나간 이여
바다를 버린 새들만이
진실로 바다로 돌아올 수 있다네

 

 

가슴에 막막한 구름 흐르거든
오늘밤 비 내리기 전에
바다를 향하여
마음 열어도 좋으리

*이상호 詩 '바다로 나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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