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여행 후기

고창 돌아보기. 흥덕당간지주.흥덕향교

푸른새벽* 2009. 6. 8. 15:41

이번 고창.정읍의 답사여행은 고창에서는 선운사와 흥덕당간지주를

정읍은 여지껏 미답처였기에 두 고장을 연계해서 살펴보기로 계획을 세웠다

 

선운사를 돌아보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문수사를 먼저 돌아보고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그 다음의 답사처는 흥덕당간지주였다

문수사가 있는 고창군 고수면에서 흥덕당간지주가 있는 고창군 흥덕면까지의 거리는 꽤 멀었다

 

 

흥덕당간지주가 있는 흥덕면 교운리 마을 초입에는

선정비나 공덕비로 보이는 비석들이 도열하듯 늘어서 있었다

당간지주를 찾으러 가는 길인데 왠 비석들이 이리도 많이 있는지 궁금했다

 

 




흥덕당간지주를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교운리 마을에 들어서면 마을 길 오른편으로 빤히 당간지주가 보이는데

두 지주 모두 훼손된 것 같지는 않아 일단 안심이다

 

 




멀리서 보았던 대로 훼손된 곳 없는 고아하고 귀티가 흐르는 당간지주다

 

 




당간지주에 새겨진 세 개의 연화문 중 가장 윗쪽에 새겨진 연화문

 

지주부에 연화문이 새겨진 당간지주는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경주 보문동 당간지주와
고려시대에 건립된 미륵리절터 당간지주를 포함하여 모두 세 기가 확인되었을 뿐이라니

얼마나 귀하고 귀한 당간지주인가

 

 




동서로 마주선 흥덕당간지주의 두 지주는

기단이 남아있지 않아 원래부터 마련하지 않았는지 유실되었는지는 확인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한다
다만 지주 하단부의 치석 수법으로 보아 최초 건립 시부터 기단을 마련하지 않았던 것으로
즉,두 지주 하단부를 깊게 땅에 묻고 간대석을 마련하여 당간을 세웠던 것으로 추정 하는것은  
흥덕당간지주에서 볼 수 있듯이 고려시대에는 기단부를 마련하지 않고
두 지주를 땅속에 깊이 묻어 건립한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흥덕당간지주는

그  위치와 주변 지형으로 보아 교운리 마을 일대에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다만 당간지주는 고려시대에 이 일대에 있었다고 하는 갈공사(葛空寺)의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갈공사와 관련된 기록이나 유적이 없어 구체적인 연혁은 알 수 없는 실정이다

 

 




오롯이 서서 예전 절터가 이곳에 있었음을 알려주는 기특하고 귀한 당간지주가 있는 근처 밭에는

양파가 수확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개 뽑아 쓱쓱 문질러 한 입 베어물어도 매울 것 같지 않다

 

 




흥덕당간지주를 돌아보고 나오는데 뭔가 잡아 당기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들어 멀리 휘돌아보니 당간지주의 뒷편으로  잘 지어진 古家가 보였다

모내기를 기다리며 논물 찰랑이는 이 논둑길을 돌아들어 가 보았다

 




 

당간지주가 서 있는 곳에서 반듯하게 닦인 길을 따라 잠시 들어오니 넓은 공터가 있고

그 공터 한 가운데 붉은 홍살문이 반긴다

향교가 아니면 서원이렸다

아~

아까 당간지주를 찾아 들어올 때 길 한 켠에 나란히 서 있던 비석들~!!

 




 

흥덕향교

비바람 견딘 오랜 세월을 말해주듯 빛바랜 나뭇결이 그대로 드러난 향교의 대문

 

 




까치발을 들어 향교의 담너머를 살펴보니 한적한 마당 저 위쪽으로

대성전으로 들어가는 삼문이 보인다

 

 




답사를 위해 찾았던 각 고장의 향교는 거의가 문이 잠겨 있어 그저 담너머로 만 살펴보았기에

흥덕향교도 의례히 그럴 줄 알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향교담장을 돌아가 보았더니

흥덕향교는 열려 있었다

애초에 방문객을 위해서 그렇게 해 놓았는지는 아니면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잠시 외출을 하며

열어놓았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고맙고 고마운 일이었다

그악스럽게 짖어대는 우람한 개들까지 고마운 것은 아니었지만~

 

 



 

향교의 뒷편으로 들어가면 왼편으로 자리한 작고 아담하고 이쁜 건물

 

 




그 작고 이쁜 건물에 붙어 있는 편액

헌관실

무슨 뜻일까

향교에 제사를 지낼 때 제사를 주관하는 분들이 사용하는 곳일거라는 막연한 추측을 해본다

 

 




넓지 않은 네모진 마당 향교의 정문 뒤에 자리한 명륜당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건물에서 흥덕향교의 엄정함을 읽는다

 




 

명륜당 편액

 

 




명륜당 누마루 천정에 걸린 오래된 편액들

내가 서예에 일가견이 있다면 참 좋았을텐데...

 

 




대성전을 바라보는 방향에서 오른편에 있는 건물

동재

 




 

파란 바탕에 동재라고 쓴 편액 아래에 전교실이라는 팻말이 하나 더 붙어 있는 것을 보니

요즘도 이 건물은 향교의 관리나 향교에 제를 지낼 때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흥덕향교 대성전으로 드는 내삼문

 

 




대성전으로 드는 내삼문의 열린 쪽문 사이로 대성전의 가지런한 녹색살문이 보인다

 

 



 

흥덕향교 대성전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된 맞배지붕이며,

이곳에는 공자(孔子)를 중심으로 하여 중국의 4성과 중국 송대(宋代) 4현(四賢) 그리고

그리고 동.서 양벽에는 우리 나라의 18현을 배향하고 있다

 




 

대성전 편액

 

 




어느고장이나 향교의 마당은 농사에 쓰는 각종 기구들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흥덕향교도 예외는 아니다

임자없는 경운기가 햇볕 뜨거운 향교 마당을 지키고 있다

 




 

흥덕향교 마당 한 켠에 줄줄이 늘어선 비석들

근래에 세운 번쩍번쩍 광택나는 이 비석들은 흥덕향교를 새로 단장할 때

기부금을 낸 사람들과 지역 기관장들의 이름이 씌여 있다

 

흥덕향교는 조선 광해군(光海君) 13년(1621년)에 창건되었으며,
그후

당시 흥덕현(興德縣) 유림들의 숙원으로 숙종(肅宗) 원년(1675년)에 어명에 의해 중창되었다는 것 뿐

다른 기록들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3대 향교 중 하나라 일컬어지는 나주향교 못지 않게

엄숙하고 정연한 곳이었으며 무엇보다 대성전에 배향된 인물들의 면면이 대단한 곳이다

 




 

멀리 보이는 산자락이 뽀얗게 흐려보이는 것이 무척이나 더운 날씨임이 분명하지만

나는 물색없이 흥덕향교의 마당에 서서 그림을 그려본다

당간지주가 서 있는 저 뒤쪽 어느만큼에 있었다는 갈공사라는 절집과

그 절집으로 드는 신심 갸륵한 사람들과 또 절집초입을 지나 향교에 드는 갓 쓴 선비들을...

 

화들짝 배가고프고 정수리가 몹시 뜨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