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여행 후기

정읍 돌아보기. 보화리석불.남복석불.남복리오층탑

푸른새벽* 2009. 6. 25. 15:38

고창에서 하루동안의 짧은 답사를 마치고

고창읍내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 곳에 숙소를 정해 여장을 풀었다

낯선 곳에서  맞이하는 밤은 언제나 그렇듯 피곤함보다는 알 수 없는 허망함으로  뒤척이게 된다

낯선 잠자리가 이제는 익숙해 질  때도 되었건만

 

 

음력 5월5일 단오의 밤

달은 만월滿月이 아니지만 꽃은 만개한 계절이다

 

꽃나무에 꽃이 피면
여러 가지 지키지 못했던 약속이 따라 핀다
아름다운 것 앞에서 느끼는 슬픔은
그 슬픔의 근원이 그만큼 아름다웠기 때문일 것이다

꽃은 회상의 출입구인데

꽃나무 앞에서 길을 잃은 나는 이 밤을 헤맨다

 

 



밝고 맑은 아침

고창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일찍 찾아온 곳

전북 정읍시 소성면 보화리

얕은 언덕위 보화리석불입상이 있다

 




아침햇살이 반짝이는 언덕 붉은 정자각 안에는 생김새 비슷한 석불 두 기가 나란히 서 계신다

 

 



비슷하다고는 하지만 키는 같지 않아서

원래는 불상 한 기가 더 있었던 삼존불(三尊佛)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한다

 

 



오른쪽 키가 큰 불상은

머리에 아무 장식이 없는 민머리에 상투 모양으로 솟아 있는데

이런 모양새가 눈에 익다싶었더니  
중앙박물관에서 보았던 백제시대의 불상인 군수리 석조여래좌상과 많이 닮았다

그런데 두 눈이...

 



 

늘어뜨린 오른손보다 약간 크게 표현된 왼손과 풍성하게 팔을 감싼 소맷자락은

백제불상에서 익히 보아왔던 양식이다

 

 



치마를 입은 듯 흘러내린 옷자락과 발 부분

반원형의 돌에 오두마니 올라서 있는 모양이 깜찍하기도 하고 불안해 보이기도 한다

 



 

키가 작은 불상의 얼굴부분

이 불상 역시 두 눈이 파여 있는데...

두 눈이 파여있는 불상이라면 영주 가흥동마애삼존불이 떠오른다

아~

그러고보니 이 불상의 표정이 가흥동불상과도 많이 닮았다

 

 



오른쪽 팔이 떨어져나간 이 불상 역시 왼팔과 소맷자락이 풍성하게 표현되어 있다

 

 



신체의 비례가 마치 아기같은 이 불상도 작은 돌 위에 올라서 있는 모습이다



 

 

정읍보화리석불입상은

최근에서야  백제시대의 불상으로 확인되었는데,
백제 불상의 예를 이곳 정읍까지 확대시켰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가 되기에 충분하다

 

 



보화리석불입상이 있는 곳 주변은 복분자밭이다

복분자는 고창의 특산물이지만 고창에서 가까운 이곳 정읍도 복분자를 많이 재배한다

 



 

아직 여물지 않은 복분자가 송알송알 많이도 달렸다

올해엔 복분자의 수확량이 대단하다지만 복분자를 재배하는 농민들의 시름은 오히려 더 깊다고 한다

복분자술을 만드는 양조회사가 복분자수매량을 반으로 줄였다니

예년에 비해 복분자판매가 훨씬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수확량이 많으면 많은대로 또 수확량이 부족하면 또 부족해서 시름이 깊으니

우리 농촌은 언제쯤이나 되어야 이 모든 시름없이 즐거이 농사에 매달릴 수 있을지...

 

 



보화리석불입상이 있는 언덕에 앉아서 아침을 본다

염치없는 여름이 벌써 고개를 들이밀고 있는 계절이지만 아침은 언제나  청량하다

 



 

언덕아래 길 옆 논에는 가지런히 줄맞춘 여릿한 녹색의 모판이 모내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 꽃의 이름이 무엇이지?

나는 이렇게 생긴 꽃들은 무조건 마아가렛이라 부른다

마아가렛이 맞나?

 

보화리석불입상을 돌아보고 정읍의 두번 째 답사처로 점찍은 남복리오층탑을 찾아왔는데

탑은 보이지 않고 작은 절집 미륵암에는 이렇게 이쁘고 함초롬한 꽃들이 마당을 가득채우고 있었다

 



 

미륵암 마당 한켠에는 남복리탑이 아닌 남복리미륵암석불에 대한 안내판이 친절을 베푼다

 

 



아담하고 정갈한 작은 절집 미륵암의 법당

법당 문이 열려 있으니 들여다 볼 수 있겠다

 



 

법당 중앙에 모셔져 있는 남복리미륵암석불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불상이다

오늘 처음 만나고 온 보화리석불입상과 머리모양이 닮았다

 

이 불상은 원래 이곳 미륵암 법당이 아닌 법당 뒤편의 산자락 어딘가에 반쯤 묻혀있었던 것을

미륵암에서 잘 수습하여 모셔놓고 있으니

온전한 불상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작은 암자 미륵암

그곳에 계신 맑은 얼굴의 비구니스님께 감사의 맘 전해야 겠다

행여 낯선이가 사진이라도 찍을까봐서 눈 치켜뜨고 매몰차게 법당 문을 닫는 절집과는 달리

먼 곳에서 일부러 오셨는데 사진이라도 찍어가셔야 할 것 아니냐며 흔쾌히 허락해주셨고

남복리탑이 있는 위치까지 세세히 알려주셨으니...

 



 

그윽한 香으로 아름답게 절집마당을 채우고 있는 이 꽃도

스님의 고운 맘씨와 맑은 얼굴을 닮았다

 



 

미륵암석불이 있는 미륵사에 남복리탑이 있는 줄 알고 갔다가 생각지도 않게 석불을 만나고

남복리탑을 찾아 미륵암이 있는 곳에서 작은 동산하나 건너편에 있는 곳으로 왔다

미륵암이 그렇듯 남복리탑을 품고 있는 여래사도 아주 잘 다듬어진 절집이었다

 

 



절집견공으로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종자같다

절집에서 키우는 개는 삽사리같은 우리의 토종견이라야 한다는 내 선입견.

여래사 초입에서 내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굵직하고 느른하게 짖던 여래사 견공

 

 



작지만 깔끔하고 부지런한 손길로 다듬어진 절집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여래사

저 법당 뒤편으로 탑이 있으렸다

 

 



여래사 법당으로 오르는 계단 왼쪽편에 세워놓은 삼존불상

이 삼존불도 범상치는 않은데...

 

삼존불이 있는 계단을 오르는데 멀리 남복리탑의 지붕돌이 보이니 맘이 급했다

오로지 탑만 보고 걸음을 재촉하다 그만 발을 헛디뎌 우당탕 계단아래로 굴렀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몸은 계단 옆쪽 배수로에 쳐박히고 말았는데

오른쪽 귀가 심하게 아팠다

아픈귀는 제쳐두고 사진기와 머리에 걸친 선글래스부터 살폈다

사진기도 선글래스도 다행이 아무탈이 없다

그런데 귀 뒤쪽이 단단히 탈이 났나보다

손거울을 들고 살펴보려해도 거울이 비춰지는 각도가 아니라서 얼마나 다쳤는지 모르겠다  

손바닥으로 쓱쓱 문질러 보았더니 출혈은 없다

그런데 몹시 아프다

 

 



귀가 아프지만 탑은 살펴야 한다

여래사 법당 뒤편 야트막한 언덕에 있는 남복리오층석탑

 



 

남복리오층석탑은

1층 기단에 5층의 탑신을 올린 고려시대 석탑이지만

백제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어

탑을 만든이의 독특한 정서와 고집을 엿볼 수 있다

 

 



노반과 복발로 장식된 탑의 상륜부

 



 

1층 몸돌이 사각형으로 파여있어 감실이 아닌가 싶다

 

 



경사진 언덕에 세워진 탑이라 아래층 기단부는 경사를 따라 모양새를 맞췄다

 

 



탑이 있는 언덕 뒤쪽에서 바라 본

탑이 있는 풍경

작은 법당을 호위하듯 서 있는 단정한 탑과

아침햇살을 받은 나무들이 만들어낸 그림자가 어룽어룽한 법당의 지붕과 어울려

편안한 정경을 연출한다

답사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이 언덕 소나무아래서 퍼질러 누웠으면 싶다

 

 



남복리오층탑이 있는 여래사는 잘 가꾸어진 절집이다

절집마당 곳곳에 자연스런 손길로 가꾼 꽃나무와 화초들이 지천이다

 

 



처음 여래사에 들어설 때 어디서 오셨냐고 묻던 보살의 미소가 곱던 여래사

정읍 남복리의 두 절집 여래사와 미륵암은 정읍이란 고장을 떠올릴 때면 가장 먼저 생각날 것 같다

오월이 다해가던 어느날 아침의 햇살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