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돌아보기. 청량산 문수사
온 나라가 전직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무거운 슬픔에 잠겼다
재임시절 그의 모습이 TV화면에 비치면 항시 채널을 돌리곤 했었는데
퇴임하기 얼마전
서해안기름유출사건 현장 순시 중 예의 그 복지부동인 담당공무원을 무섭게 몰아부치는 것을 보고
4년동안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그 맘을 접었더랬다
퇴임후 귀향하여 평범한 촌부로 돌아 간 그의 생활에서 우리도 그런 멋진 퇴임대통령이 있다는 사실에 흐뭇했었고
오래토록 그런 그의 생활이 이어지길 바랬고 또 바랬었다
부패혐의가 짙어 검찰로부터 소환을 받았을 때는
그냥 검찰이 아무도 모르게 살째기 봉화마을로 가서 조사했으면 하는 맘이 굴뚝 같았었고
정말 "이건 너무지나치다" 싶어 안타깝기도 했었다
전직대통령의 자살...
정치적인 대단히 정치적인 사람 노무현
그는 그의 목숨을 스스로 끊음으로써 이 나라를, 이 국민들을, 이 정치판을 뒤집었다
어떻게 그렇게 모질게 또 그렇게 허망하게 갈 수 있는지...
국민장이 치러진다는 전 날
시간으로는 분명 새벽일진대 그리 어둡지 않은 시간 집을 나섰다
전직대통령의 서거소식만은 아닌 그 무엇인가 묵직한 것이 가슴을 짖누른다
* * *
올 해엔 가능하면 전북이나 충남으로 답사처를 정하려 맘 먹고 있으니
이번의 답사여행은 전북 고창과 정읍으로 1박2일의 일정을 잡았다
고창은 다른 곳은 그만두고라도 우선 선운사를 샅샅이 살펴보기로 하였는데
결국 선운사는 찾지 못했다
선운사를 돌아보려면 관내의 암자도 모두 살펴야 하는데
날씨가 만만찮다
무슨 5월의 날씨가 한 여름 뙤약볕보다 더 뜨거우니
선운사를 돌아보려면 서너 시간이 넘게 걸어야 하는데 그럴 자신이 없었다
하여 선운사는 꽃무릇이 다 지고 난 다음에 찾기로 하였다
꽃무릇이 한창일 때가 좋기는 하겠지만 사람들로 버글버글 시끌시끌한 것이 싫으니...
고창에는 선운사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고창군 고수면 은사리 청량산 문수사
문수산 문수사인 줄 알았는데 일주문 현판은 청량산 문수사라 씌여 있다
문수사 일주문 지나 법당으로 가는 길
넓지 않은 오솔길은 단풍나무가 터널을 만들어 청량하고 시원했다
알고보니 문수사 근처의 애기단풍나무 군락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어 있다
문수사 법당으로 오르는 길
막돌계단이 정겨운데 공사를 하려는지 비닐끈으로 막아 놓았다
하는 수 없이 가파른 자동찻길로 빙 돌아 걸어들어갔다
오밀조밀하고 그윽한 길을 따라 올라오니 꿈결인 듯 시야가 훤히 트이며 절집이 한 눈에 들어온다
문수사 입구의 굴뚝이 재미있게 생겼다
근래에 들어서야 왜 이렇게 절집의 굴뚝이 특별한 장소에 각별한 문양으로 만들어졌는지 알게 되었다
절집의 굴뚝은 단순히 구들을 덥히기 위해 공기의 순환을 돕고자 만들어졌다거나
각종 쓰레기들을 소각하는 장소가 아닌
절집에서 각종 제를 지내고 난 후 소지(燒紙)를 하기 위한 공간이었다
그러기에 단순히 공기순환이나 폐기물 소각이 목적이 아닌
경건한 제사의 마무리를 위해서 꼭 필요한 구조물이라는 것을 이십 여일 전에 알게 되었다
측면에 문수사라는 편액을 달고 있는 건물
'문수전(文殊殿)’편액은 추사의 글씨라고 하는데 확실하지는 않다고 한다
그런들 어떠랴
'달빛 아래서 씌여진 역사를 햇살 밝은 곳에선 논하지 말라'던 누군가의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별 기대를 하지 않았던 문수사였다
그런데
너무 놀라고 너무 반갑고 너무 기뻤다
이렇게 이쁜 법당이 있었다니~
오밀조밀 예전의 모습이 그대로인 눈이 즐거운 법당이다
그 옛날 이 좋은 자리에 이렇게 아름다운 법당을 지은 이들에게 새삼 고맙고 또 고맙다
문수사 대웅전 현판
현판옆의 도깨비 문양이 재있다
현판 왼쪽에도 도깨비 문양이 있는데 대웅전을 다 돌아보고 그 모습도 사진기에 담으려 했는데...
대웅전 어칸의 문은 열려 있었고 모기장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렇다면 옆문으로 가서 살펴봐야지
대웅전 지붕과 포작도 아름답다
대웅전 측면의 쪽문에도 모기장이 드리워져 있었지만 살째기 모기장을 젖히고
안에 모셔진 불상을 사진기에 담았는데...
깜짝 놀랬다
천둥치듯한 고함소리에
절집에 계신 스님들은 사진기 든 사람들에겐 알러지가 있는 모양이다
그저 문 밖에서 플레시도 쓰지 않고 살째기 셔터만 눌렀을 뿐인데
어찌나 크고 사납게 고함을 지르던지 아마도 청량산이 찌렁찌렁 울렸을 것이다
아무리 멋진 절집이라해도 정나미 딱 떨어진다
스님의 고함소리에 놀라 다른 곳은 돌아 볼 염도 못내고 그저 대웅전 측면만 살폈다
측면도 참 이쁜 법당이다
허겁지겁 스님을 피해 돌아나오는데 앙징맞은 수조의 물소리가 깔깔대고 웃는 듯하다
고즈넉하고 이쁜 절집에서 심정 사나워져 돌아나오는데 절집으로 오르는 막아놓은 길에 다시 시선이 머문다
비닐끈을 제치고 들어가 잠시 앉을까 하다가
그냥 내려왔다
나누는 기쁨 함께 하는 세상
나누는 기쁨이란 무엇이고 함께 하는 세상이란 무엇인가
문수사 입구에 걸린 현수막의 글귀도 맘에 안든다
고약해진 심성에 문수사의 정취도 아름다움도 모두 잊었으니...
나도 대책없는 사람이다
매번 다짐하고 또 다짐을 하지만 이 고약한 심성을 버릴 수가 없으니
아무리 문화유산을 찾는 답사의 발걸음이라지만
아무리 나의 종교와는 무관한 답사라지만
그래도 절집을 찾는 마음이라면
사물을 순하게 보는 눈을,사람을 대함에 있어 순한 심성을 갖출 때도 되었는데
난
아직 한참 멀었다
모든 것에 함량미달이다
거울은 결코 혼자 웃지 못한다
내가 웃어야 거울도 비로소 웃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