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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여행 후기

산청 돌아보기. 단속사터

푸른새벽* 2009. 3. 6. 18:10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쯤에

나는 단속사터를 알게되었다

1994년 7월에 구입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제 2권

지리산 동남쪽-함양.산청을 소개하는 글에서 나는 단속사터를 알았다

그리고...

그리고 그 긴세월을 그리워만 했었다가

2009년 2월 비로소 단속사터에 닿았다

 

 

단속사터 초입

 

'...그러나 그 내력깊은 절이 폐허가 되어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부러진 당간지주와

한 쌍의 삼층석탑 뿐이다

단속사의 쌍탑은 아담한 크기에 정연한 비례감각으로 더없이 상큼하고 아담하다

지붕돌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흘러내리다가 귀끝을 가볍게 올린 자태가 여간 맵시 있는 것이 아니다

작아도 야무지게 만들어낸 이 솜씨는 결코 석가탑의 매너리즘이 아니라 그것의 계승이라고 해야 옳다

지리산 이 깊은 산골짝에 와서 이렇게 어여쁜 탑을 본다는 것은 커다란 안복(眼福)이다...'

(유흥준 지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중에서)

 

내가 이 단속사터에 유독 애착을 갖는 것은 당간지주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오래전에 새겨져 여지껏 지워지지 않았던 글 한 줄

'커다란 안복(眼福)'이라는 표현 때문이었다

 

봄이라하기엔 아직은 이른 계절 옷자락 끄는 바람과 함께 찾은 단속사터(斷俗寺址)

급하지 않은 경사길 저 편에 하얀 탑이 빛나고 있다

 

 

아담하고 상쾌하고 맵시 있다는 이 쌍탑을 본 처음의 느낌은

탑의 빛깔이 막 씻어낸 무우만큼 하얗다는 것

폐사지에 있는 그 특유의 색감은 아니었다

너무너무 뽀얀 이 탑의 빛깔 때문에 이곳이 과연 폐사지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탑은...정말 야무졌고,아담했다

 

 




단속사지동삼층석탑(斷俗寺址東三層石塔)

 

 




단속사지서삼층석탑(斷俗寺址西三層石塔)

 

 




정당매(政堂梅)라고 불리는 단속사터의 매화나무

정당매는 고려말 강회백(姜淮伯)이 소년시절에 단속사에서 공부하며 매화를 심었는데

그가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이르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나이가 600살이 넘었다고 한다

 

오래된 외국영화의 장면이 생각난다(영화의 제목도 주인공이 누군지 기억이 전혀 없지만)

태어나서부터 선천적으로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이

오랜 소원끝에 시력을 되찾았는데...그가 볼 수 있었던 세상은 온통 실망 뿐이었다는 것

오히려 전혀 보이지 않았을때 상상했던 그 느낌이 훨씬 행복했노라고...

단편적으로 기억되는 이 영화의 줄거리가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 기억되는 것은 이 정도이다

 

정당매가 있는 지리산 자락의 단속사터는 나라안의 문화유적이 있는 곳은 한 곳도 빠지지 않고 다녔을 만큼

그 분야에선 명성 자자한 분이 '안복(眼福)'이라고 표현했던 곳이다

하지만 초라하게 늙어버린 매화나무 한 그루가 온갖 쓰레기 더미 곁에서 오돌오돌 바람맞고 서 있는 모습은

내 어설픈 정서로는 안복이란 표현에 동의할 수 없다

나뭇가지 아직은 앙상한 계절이어서

집채만큼 커다란 트럭이 탑과 나란히 서 있어서

탑의 빛깔이 너무 창백하도록 흰색이라서... 그럴게다

그렇다

분명 이것이 모두는 아닐터이다

 

 




2월 중순이라해도 음력은 아직 정월이다

한 낮은 봄날씨가 완연하다고 해도 이곳은 산이 높고 골이 깊은 지리산 자락이다

햇빛은 따사해도 옷깃을 스치는 바람은 차갑다

그래서 더 춥다

아직 매화는  봉오리를 굳게 닫고 있다

 

 




나 혼자 단속사터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가벼운 옷차림의 스님 한 분이 일행에게 단속사터에 대해 설명을 하는 듯한데

스님은 참 바쁜신 분인가보다

타고온 자동차를 탑 바로 앞에 덜커덕 붙여 주차를 할 만큼...

 




 

단속사는

일연의 『삼국유사』 「신충괘관(信忠掛冠)」에 나오는 두 가지 창건설이다
하나는 어진 선비 신충이 경덕왕 22년(763) 두 벗과 지리산에 들어가 중이되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경덕왕 7년(748) 이준(또는 이순)이라는 사람이 작은 절을 고쳐 큰 절로 삼고
단속사라 하였다는 이야기다

 

신라의 이름난 고찰로서 고승들이 속출했던 내력 깊은 단속사는
선조 즉위년(1567)에 지방의 유생들에 의해 불상.경판 등이 파괴되었으며
정유재란 뒤 한때 재건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폐허가 되어 부러진 당간지주와 동서로 우뚝 선 동서 삼층석탑뿐이니
폐찰의 까닭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더해진다
게다가 단속사터는 가람의 중심이 되는 금당터에 들어선 민가 때문에 절터의 제 모습이 크게 훼손되어 있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지금 단속사터의 쌍탑이 자리한 곳 주변에는 이런 집들이 꽤 여러채 있다

낡은 담장 안에서 밖으로 가지를 굳게 뻗어올린 저 나무도 분명 매화나무일 것 이라고 애써 단정지으며

낡은 담장을 끼고 돌며 당간지주가 어드메 쯤 있는지 둘러본다

 

 




단속사터 쌍탑이 있는 곳에서 여염집 담장을 끼고 밭둑길을 따라 다시 돌아나오면 당간지주가 보인다

저기 당간지주가 있는 곳에서부터 이 뒷쪽으로는 단속사 절집으로 드는 길이었을 것이며

쌍탑이 있는 곳까지 단속사의 마당이었을 것이다

 

 




책에서 보았던,그리고 그 싱그러움을 내내 그리워했고,꼭 그렇게 해 보고 싶었던

단속사터의 대나무숲은 보이지 않고

당간지주 곁으로 오래되어 보이는 솔숲이 있다

 

 




단속사터 당간지주(斷俗寺址 幢竿支柱)는

단속사로 들어가는 진입 공간에 동서로 배치되어 있다

 

 




두 지주는 간공 부위가 부러져 다시 이어 붙인 상태이다

 

당간지주 사이로 아련하게 탑의 지붕돌이 보인다

 

 



 

단속사터 당간지주는

전체적으로 각 면을 고르게 다듬었으며,세련된 인상을 주는 우수하고 화려한 당간지주이다
지주부를 만든 수법은 삼랑사지나 불국사 당간지주와 같이
외곽에 윤곽대와 정상부에 1단 굴곡을 두어 장식을 하였고

간공은 경주에 건립된 사천왕사지나 경주 구황동 당간지주와 같이 여러 개를 관통하여 만들었다
이것은 단속사지 당간지주가 이들보다 늦게 건립되면서
경주 지역에 건립된 지주부를 만든 기법을 수용한 결과로 보인다
특히 단속사는 경덕왕대에 창건되었으며,
신행선사가 머물면서 경덕왕과 혜공왕 등 왕실로부터 적극적인 후원을 받았으므로
당간지주는 초창 이후 단속사가 가람의 면모를 갖추면서 건립된 것으로 보이는
삼층석탑과 비슷한 시기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것으로 보아
단속사지 당간지주는 8세기 중후반경에 경주 지역의 당간지주로부터 영향을 받아 건립되었으며
국가에 소속되었거나
경주 지역에 건립된 당간지주 양식에 대하여 잘 알았던 장인들이 건립하였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엄기표 지음 '한국의 당간과 당간지주'중에서)

 

 




단속사의 절마당이었음직한 곳에 지금은 민가들이 옹기종기 어깨를 맞대고 있다

일주문을 지나 당간지주가 있는 곳을 지나서 사천왕문이나 해탈문이 있었던 곳은 아닐까

저 집들의 뒤에 단정한 쌍탑이 있다

 

 




2월의 오후

햇살은 간질간질하게 따스했지만 바람은 차갑다

쨍~한 겨울추위와는 많이 다르다

귓볼을 스치고 옷소매 속으로 기어드는 바람에 한기가 오소소하다

어쩌면 한 겨울보다 더 시린 2월의 바람이다

 

바람의 경고에,바람을 품고 찾아 온 단속사터지만 해저물녘까지 머물수는 없다

이제 곧 해거름의 시간이며 또 다시 찾아가야 할 곳이 있으므로 발걸음을 돌린다

자동차를 세워둔 장소로 돌아오니 먼 산자락을 배경으로 보이는 당간지주가 축대위에서 빼꼼하다

 

한순간

문득 가슴이 쾅 하고 내려 앉는다

아~

맞다

이런 것이구나

잘생기고 상쾌한 쌍탑도,오래묵은 매화나무도,굳센 당간지주도 아닌

지리산 자락을 휘돌아 내려온 바람과 오후의 햇살 그리고 하늘이었다

나에게 단속사터는 안복(眼福)이라는 표현으로는 못 미치는 다른 무엇이었다

그리고 산청이라는 고장이 가슴에 큰 원을 그리며 새겨졌다

 

 




바람과 지리산 자락의 사위어가는 햇살과 그리고 거기에 서 있는 나

울렁울렁 사람이 그리워 코끝이 알싸하게 매웠던 단속사터

 

 여지껏의 오랜  답사여행 중 처음으로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낯설은 감정을 가지게 했던 절터

행여  단속(斷俗)할 마음이라도 생길 까봐 마음 단속 단단히 했던 지리산 자락의 단속사터 당간지주에

다시오리라는 맹새를  촘촘하게 수 놓은 길고긴 번(幡)을 내 그리움처럼 달아두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