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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불갑사대웅전(佛甲寺大雄殿).전남 영광 본문

☆~ 풍경소리/전 남

영광 불갑사대웅전(佛甲寺大雄殿).전남 영광

푸른새벽* 2009. 8. 5. 20:52

 

 

 

 

 

 

 

 

 

 

 

 

 

 

 

 

 

 

 

 

 

 

 

 

 불갑사대웅전(佛甲寺大雄殿)


보물 제830호로 지정된 이 법당 건물은 정면 3칸,측면 3칸의 팔작지붕 다포계 집으로
분위기가 매우 화창하다
그 분위기에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문살의 꽃문양이다
정면과 측면 모두 가운데 칸의 세짝 문을 연화문과 국화문으로 장식했고
좌우 칸에는 소슬빗살무늬로 처리했다
그러나 정면의 것들은 예전부터 있던 것들인데 반해 옆문의 문짝들은 근래의 것이다
이 건물 암막새에 건륭 29년 갑신(영조 40년,1764)이라는 명문이 있는데
당시 기와를 갈아 얹은 것으로 볼 때 지금의 건물은 18세기 이전작으로 볼 수 있다


보통 다른 절에서는 법당 옆 벽에 조그만 문이 한 개쯤 달려 있는데 비해
이 건물에는 옆면도 마치 앞면과 마찬가지로 벽 전체가 문이다
이는 이 법당의 부처님이 건물 정면인 남쪽을 향하지 않고 서쪽을 향해 앉아 있기 때문이다
이곳의 부처님들도 몇 해 전까지는 건물 정면을 보고 있었으나
번와불사 때 해체해보았더니 네 개의 내고주와 대들보에 파인 홈이
정면일 때보다 좌측면으로 될 때 더 잘 들어맞도록 되어 있었으므로
옛 모습으로 바꿨다고 한다
밖에서 볼 때 측면인 쪽이 내용으로 보아서는 정면인데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불단 위에 안치된 세 부처는 중앙이 석가모니불,왼쪽이 약사여래불,오른쪽이 아미타불로
잦은 전란을 겪는 가운데 무병장수를 갈망했던 조선 시대 후기의 보편화된 형식을 보인다


천장 반자 귀통이의 연꽃 봉우리 조각과 닫집가에 세워진 기둥 위를 기어오르는 작은 동물상,
특히 부처님 좌대 아래 수미단의 모란 문양 등
법당 내부의 조각들 가운데는 눈여겨볼 것이 꽤 있다
또 들보 위의 용 얼굴도 보통은 입체조각인데
이곳의 것은 상여에 붙이는 방상씨처럼 목판에 조각하여 붙였다


내부와 문살의 조각이 특이해서인지 한 자락의 전설이 전해진다
이 법당을 지을 때 한 조각가가 찾아와 자기가 일을 하겠다고 자청하면서
일이 끝날 때까지 여자가 들여다보지 말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러한 전설에서 언제나 그렇듯이,이번에도 궁금함을 못 이긴 밥 짓는 공양주가 들여다 보았다
조각가는 곧 피를 토하며 죽었고 그 피는 까치가 되어 날아갔다
대웅전 꽃살무늬가 미완성인 것은 그 때문이고
또 그 조각가를 기념하기 위해 불상 뒷벽에 까치를 그렸다고 한다


대웅전 용마루에는 독특한 모양의 기와가 올려져 있어,
서쪽을 향해 앉은 대웅전 부처님들과 더불어 이 절의 또 다른 수수께끼가 되고 있다
대웅전 뒤편 축대 위에 올라가 용마루 가운데를 보면 도깨비 얼굴 위에 우진각 지붕집이 올라가 있고
또 그 위에 보주가 얹힌 모습의 특이한 기와가 잘 보인다
모두들 특이하다고만 할 뿐 그 유래와 용도에 대해서는 아직 설명되지 않고 있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영광 불갑사 대웅전(靈光 佛甲寺 大雄殿)


보물 제830호
전남 영광군 불갑면 모악리 8 불갑사 


불갑사는 백제 침류왕 원년(384)에 인도승 마라난타가 세웠다는 설과 무왕 때 행은 스님이 세웠다는 설이 있으나 세운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석가모니 불상을 모셔 놓은 법당인 대웅전은 18세기 이전에 세운 것으로 보이는데, 기와 가운데 ‘건륭 29년(乾隆二十九年)’이라고 쓴 것이 발견되어 조선 영조 40년(1764)에 고친 것으로 짐작한다. 그 뒤 융희 3년(1909)에 수리하였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지붕 위부분에서 작은 석탑과 보리수를 조각한 장식을 볼 수 있으며, 가운데 칸 좌우의 기둥 위에는 용머리를 조각해 놓았다. 또한 가운데 칸에 달린 문은 연꽃과 국화 모양으로 꾸며 뛰어난 창살 조각 솜씨를 엿보게 한다. 건물 안쪽의 모서리 공포 부분에도 용머리를 장식하고 있고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꾸몄다.


화려한 무늬와 조각을 새긴 조선 후기 목조 불전 건축으로 시대적 특징을 잘 보존하고 있어 중요한 연구자료가 되고 있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