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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논곡리삼층석탑(求禮論谷里三層石塔).전남 구례 본문

☆~ 풍경소리/전 남

구례논곡리삼층석탑(求禮論谷里三層石塔).전남 구례

푸른새벽* 2011. 4. 26. 20:00

 

 

 

 

 

 

 

 

 

 

 

 

 

 

 

 

 

 

 

 

 

 

 

 

 

 

 

 

 

 

 

 

 

 

구례논곡리삼층석탑(求禮論谷里三層石塔)


보물 제509호 
전남 구례군 구례읍 논곡리 산51


구례구에서 다리를 건너 구례군에 들어서면 섬진강을 따라 달리는 산길이 나 있고,그 길은 강 건너 압록을 훨씬 지나 논곡리에 와서 끝난다.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강변을 따라가다가 강을 등지고 산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있는 탑선마을에 보물 제 509호로 지정된 논곡리 삼층석탑이 있다.


삼층석탑은 높이 2.9m이며,지대석은 완전히 땅속에 묻혀 원형을 할 수 없으며,드러나 있는 상태로 보아 단층기단이다.기단의 각면은 마멸이 심하지만 우주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삼층석탑에 나타난 표현수법 가운데 가장 독특한 것은 기단의 갑석 윗부분을 장식한 복련과 인동무늬이다.이러한 양식은 경기도 여주 신륵사 다층석탑은 단판(單瓣) 복련무늬가 또렷하고 논곡리 삼층석탑의 경우 인동무늬인 점이 다르다.이렇듯 갑석을 화사하게 조성한 기법은 고려시대의 석탑에서 종종 나타나곤 한다.


갑석 중앙에 몰딩을 한 뒤 그 위에 1층 몸돌을 얹고 있는데,1층 몸돌에는 우주를 마련하였을 뿐 아무런 장식도 없다.2층과 3층 몸돌은 1층 몸돌에 비해 급격히 체감되었다.


전체적으로 두툼하여 약간 둔중하게 느껴지는 지붕돌은,4단의 지붕돌받침을 두었으며 끝부분을 반전시켜 경쾌함이 느껴진다.


상륜부에는 노반이 남아 있는데,노반이 3층 지붕돌과 한 돌로 되어 있다.광복 전만 해도 상륜부가 남아 있었다고 한다.건축년대는 조각의 기법이나 일부에서 퇴화된 양식 등으로 보아 고려 초기를 넘지는 않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삼층석탑의 좌우에는 돌사자로 보이는 석상 두 개가 네모난 지대석 위에 납작 엎드려 있다.마멸이 심하고,몸체 중앙에 기둥을 세웠던 듯 구멍이 나 있다.


삼층석탑 주변에는 머리가 파손된 불상이 있다.불상은 파손이 심해 여래상인지 보살상인지 뚜렷하지는 않지만,한쪽 무릎을 세우고 한쪽 팔을 무릎 위에 걸치고 있는 모습이 강원도 평창 월정사나 강릉 신복사터에 있는 석조보살상과 닮아 있다.


역시 근처에 황룡사(黃龍寺)를 비롯한 여러개의 절이 있었다고 구전되고 있으나,어떤 사찰이었는지 언제 폐사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삼층석탑 앞쪽으로는 툭 트인 골짜기 사이 첩첩산중이 장관이며,삼층석탑 아래로 조붓하게 자리잡은 마을이 평화롭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구례논곡리삼층석탑(求禮論谷里三層石塔)


보물 제509호 
전남 구례군 구례읍 논곡리 산51 


논곡리(論谷里) 뒷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으며, 탑의 아랫부분이 파묻혀 있어 땅 위로 보이는 모습은 1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이다.


기단은 네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기고 맨윗돌에는 두툼한 연꽃받침을 두어 탑신을 받도록 하였다. 화려한 12개의 연꽃조각은 끝이 위로 올라갔으며 이러한 받침대는 다른 석탑에서는 볼수 없는 특이한 양식이다. 탑신부는 지붕돌과 몸돌이 각각 한 돌로 구성되었고 몸돌마다 모서리에 기둥조각을 새겨 놓았다. 또한 위로 오를수록 일정한 비율로 크기가 줄어들고 있어 그 모습이 정연하다. 지붕돌은 두꺼운 편이고 밑면의 받침은 각 4단이다. 낙수면의 경사는 급하게 시작되어 끝으로 내려올수록 완만하며, 지붕돌의 네 귀퉁이는 경쾌하게 치켜올라가 있다. 탑의 머리장식부분은 모두 없어지고 네모진 장식받침만 남아 있는데, 아래의 3층 지붕돌과 한 돌로 이루어져 있다.


이 탑은 전체적으로 보아 돌의 짜임새가 정제되어 있어 신라의 석탑양식을 보이고 있으며, 통일신라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