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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굴산사지 석조비로자나불 삼존불상(掘山寺地石造毘盧舍那三尊佛像).강원 강릉 본문

☆~ 풍경소리/강 원

강릉 굴산사지 석조비로자나불 삼존불상(掘山寺地石造毘盧舍那三尊佛像).강원 강릉

푸른새벽* 2018. 7. 7. 16:58



















































































강릉 굴산사지 석조비로자나불 삼존불상(江陵 掘山寺地石造毘盧舍那三尊佛像)


지정사항 없음
강원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굴산사


굴산사지 당간지주에서 서북쪽으로 100여 미터 떨어진 작은 암자(현재 굴산사라 부른다)에 가면 지권인을 한 석조비로자나삼존불상을 볼 수 있다.형체는 완전하지만 마멸이 심해 얼굴 표정을 알 수 없게 된 두 불상과 최근 새로 조성된 불상,합해서 모두 셋 이다.


약 1m가 채 안되는 높이의 본존비로자나불상은 떨어져 나간 불두를 다시 붙여 놓았는데,목은 짧고 상대적으로 넓은 두 어깨는 둥글다.어깨에서 무릎으로 흘러내리는 두꺼운 법의는 팔을 비롯한 신체의 각 부분을 둔중하게 덮고 있다.전체적으로는 불두에서 무릎을 이은 선이 정삼각형에 가까울 정도로 불균형한 비례를 보이고 있다.얼굴은 타원형인 데 비해 목이 짧고,가슴팍이며 두 무릎 사이가 넓어 몸체가 지나치게 짧고 넓은 느낌이다.가부좌한 사앹에서 아래위로 압력을 가해 좀 눌러놓았다는 표현이 어울릴는지.그것은 본존비로자나불상 옆에 있는 협시비로자나불상도 마찬가지이다.법의는 편편하고 손은 작은데 두 무릎 폭만 넓어서  추상화된 느낌이 든다.


본존비로자나불상과 본래 짝을 이루는 협시비로자나불상은 굴산사 대웅전 법당에 모셔져 있다. 이 비로자나불상은 몸체만 남아 있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강릉 굴산사지 석조비로자나불 삼존불상(江陵 掘山寺地石造毘盧舍那三尊佛像)


지정사항 없음
강원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굴산사


강릉 굴산사지에서 수습된 3구의 불좌상으로 모두 지권인(智拳印)을 결한 비로자나불상이다. 불상 중 크기가 작은 2구는 인근 암자에 이운(移運)하였으며, 이동이 어려운 대형의 불좌상은 보호각을 마련해 봉안하였다. 불상의 크기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원래부터 삼불개념으로 함께 봉안하려 했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들 불상 외에도 전혀 다른 양식의 불두 없는 석조비로자나불상 1구가 인근 우물가에서 수습되었는데, 이를 포함하면 현재 굴산사지에는 총 4구의 비로자나불상이 전하고 있는 셈이다. 한 사찰에서 다수의 비로자나불상을 봉안한 사례로는 해인사 법보전에 있는 2구의 목조비로자나불상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원래부터 두 불상을 한 법당에 동시에 봉안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성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굴산사지의 비로자나불상들은 각각의 전각에 별로도 봉안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범일(梵日)국사가 창건한 굴산사에 이렇게 다량의 비로자나불을 모신 것은 사굴산문(闍崛山門)의 성향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불상을 도상적으로 파악하면 3구 중의 가장 큰 좌상과 가장 작은 좌상의 2구는 오른손이 권인, 왼손이 지인이며, 중간 크기의 1구는 반대로 왼손이 권인, 오른손이 지인을 결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오른손이 권인, 왼손이 지인인 경우가 많아서 일반적인 확률이라고 생각되지만, 두 손이 뒤바뀐 지권인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한 사역(寺域)에서 손이 바뀐 두 종류의 지권인이 모두 등장한다는 점은 앞으로 이 연구에 있어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한편, 불상 3구는 크기만 다를 뿐 양식적으로는 서로 같은 특성을 보인다. 우선 머리카락 부분이 강조되어 마치 두건을 쓴 것처럼 보이며, 상체가 매우 크고 어깨도 넓은 것에 반해 목은 상당히 움츠러든 듯한 자세이다. 또한, 결가부좌한 하체는 옆으로는 양쪽 무릎의 폭이 넓지만, 높이가 상대적으로 낮아서 펑퍼짐하게 퍼진 느낌이 든다. 이러한 비례 때문에 상체가 큼에도 불구하고 옆으로만 넓고 높이는 낮아 마치 가슴만 있고 복부는 없는 듯한 짤막한 상체가 되었다. 그런데 야외 현장에 남아있는 불좌상의 경우는 이러한 인체의 불균형이 오히려 불상을 거대한 무게감을 지닌 존재로 느끼게 해준다. 특히 이 불좌상의 머리 위에는 옥개석이 있는데, 이러한 예는 관촉사 석조보살입상이나 강릉 신복사지 석조공양보살좌상처럼 주로 야외 노천에 봉안하는 불상의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다. 만약 현재의 불두 위에 올려진 옥개석이 원래의 부재였다면 이 불좌상이 야외 봉안용으로 조성되었다는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 옥개석이 원래의 부재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불두의 정상에 육계를 대신해 낮은 기둥 받침 형태의 부재가 삽입되어 옥개석을 받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 옥개석을 얹고 있었을 가능성은 크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