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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등명사지(江陵 燈明寺址).강원 강릉 본문

☆~ 절집.절터/강 원

강릉 등명사지(江陵 燈明寺址).강원 강릉

푸른새벽* 2018. 7. 15. 20:43


























































강릉 등명사지(江陵 燈明寺址)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 산 7-3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의 괘방산 중턱에 있는 등명사의 옛터.


등명사라는 명칭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풍수지리에서 입각하여 볼 때 사찰이 강릉대도호부 중 암실(暗室)의 등화(燈火)와 같은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며, 일설에는 이곳에서 공부하는 선비들이 삼경(三更)에 산에 올라 붉을 밝히고 기도하면 급제가 빠르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등명사의 창건 연대와 역사를 정확히 알려 주는 기록은 없다. 하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44, 강릉대도호부 불우조에 “부(府) 동쪽 30리에 있다.”는 기록과 이곡의 『동유기』에 “등명사에 와서 해돋이를 보았다”라는 기록이 있으므로, 이미 고려시대에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여지도서(輿地圖書)』, 『범우고(梵宇攷)』, 『대동지지(大東地志)』에도 그 존재가 확인되므로 조선시대에도 법통이 계속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사찰조에는 “등명사는 강릉부의 등화와 같은 존재이며, 양양의 낙산사의 경치와 버금간다.”라고 언급하였다.


조선 중기에 폐찰 되었다가 1956년 경덕(景德)에 의해 등명낙가사(燈明洛伽寺)란 명칭으로 중창되었다. 이 사찰의 폐사와 관련된 기록은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覽)』에 조선 중기에 어떤 왕이 안질이 심해서 점술가에게 물으니, 등명사에서 쌀 씻는 물이 동해로 흘러들어 용왕을 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하여, 왕이 폐찰시켰다는 전설이 있다.


사찰의 경내에는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7호로 지정되어 있는 5층석탑[높이 3.5m]이 있고, 바로 뒤쪽의 평탄면에는 원형 주초석들이 있어 옛 건물지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신라시대의 양식을 충실히 따른 폐탑재도 있는데, 양식학적으로 5층석탑보다 시대가 앞서고, 규모가 작은 것으로 보아 신라 말~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 절터의 초창 시기 역시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로 볼 수 있다.
*디지털강릉문화대전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