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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 법주사 소조삼불좌상(法住寺塑造三佛坐像).충북 본문

☆~ 풍경소리/충 북

보은 법주사 소조삼불좌상(法住寺塑造三佛坐像).충북

沈香* 2026. 1. 25. 14:26

 

 

 

 

 

 

 

 

 

 

 

 

 

 

 

 

 

 

 

 

 

 

 

 

 

 

 

 

 

 

 

 

 

법주사 소조삼불좌상(法住寺塑造三佛坐像)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에 있는 조선후기에 조성된 소조 불상.

200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법주사 대웅보전에 봉안되어 있는 이 삼신불은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왼쪽은 아미타불, 오른쪽은 석가불을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불상 연기문(緣起文)에 의해 1626년(인조 4)에 현진(玄眞), 청헌(淸憲), 연묵( 衍黙), 양묵(懹黙) 등이 조성하였고 1747년(영조 23)에 개금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불상이 조성된 후 1630년(인조 8) 중관(中觀)이 쓴 「속리산대법주사대웅대광명전불상기(俗離山大法住寺大雄大光明殿佛相記)」가 법주사에 전한다.

중앙의 비로자나불은 오른손으로 왼손을 감싸쥔 형태의 지권인(智拳印)을 취하고 있는데, 조선 후기 비로자나불상은 대부분 이러한 변형된 지권인을 취하고 있다. 왼쪽의 불상은 오른손을 무릎 위쪽에서 손바닥을 위로 향하고 있고 왼손은 위로 들어 각기 엄지와 중지를 맞댄 설법인(說法印)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수인은 아미타불의 하품중생인의 좌우가 바뀐 것 같은 모습이기도 하고, 조선 후기 삼세불의 약사불상이 취하는 수인과 같지만 지물(持物)을 들고 있지는 않다. 오른쪽의 불상은 오른손으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짓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한 채 무릎 위에 놓고 있다. 조선 후기의 삼신불 중 노사나불은 대부분 보관을 쓰고 양손을 어깨 좌우로 벌린 보살형비로자나불상으로 표현되는데 여기서는 여래형으로 표현되었다. 얼굴과 신체 모두 사각형적인 장대한 모습이며 대의는 통견(通肩)을 취하고 있다.

17세기 전반기부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전쟁을 거친 후 그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는 많은 불사(佛事)가 전개되어 전국적으로 수많은 사찰이 중창 또는 건립되고 불상을 비롯한 불교 유산이 새로이 조성되기 시작한 시기이다. 이 시기에 제작된 불상은 주로 목조 불상과 소조 불상이 주류를 이루며, 대부분 방형의 장중한 형태를 이루며 신체의 굴곡이 거의 없는 평면적인 조형을 이룬다. 법주사 삼불은 이러한 경향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며 연대가 확실하여 조선 후기 불교조각의 기준이 되는 불상이다.

전체적으로 조형성이 탄탄한 불상으로 임진왜란 후의 새로운 조형을 보여주고 있어 이 시기 불상 연구에 기준작이 되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자료*


법주사 소조삼불좌상(法住寺塑造三佛坐像)
보물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209 법주사  

법주사에 모셔져 있는 이 삼불좌상은 본존불인 비로자나불상을 중심으로 왼쪽에 아미타불상, 오른쪽에 석가여래상을 배치한 삼불상으로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비로자나불상은 네모진 얼굴에 건장하면서 굴곡이 없는 평판적인 몸체와 무릎을 하여 괴체적인 느낌을 준다. 왼손은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지권인의 손모양을 하고 있으며, 양어깨를 모두 덮은 옷은 대의 자락이 팔목에서 대칭되게 흘러내려 장식적이다. 

아미타불상은 본존불과 거의 동일한 유형의 불상으로 왼손은 가슴에 올리고 오른손은 배에 두었으며 엄지와 중지를 맞댄 손모양을 하고 있다. 

석가여래상은 비로자나불상·아미타불상과 거의 같은 체형, 얼굴 모습 등 동일한 양식적 특징을 보여준다. 손모양은 석가모니불이 흔히 취하는 항마촉지인으로, 무릎 위에 올린 오른손의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다. 한편 아미타불상과 석가여래불상은 손모양과 불상의 성격이 서로 다른데도 불구하고 옷 차림법이 마치 판에 박은 듯한 양식 특징을 보이고 있어 흥미롭다. 

전체적으로 장대한 체구에 비하여 동안이며, 옷주름을 두텁게 표현한 이 불상은, 조형성이 탄탄하여 임진왜란 후의 새로운 조형을 보여주는 기념비적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비록 불상 안에 넣어둔 유물들이 대부분 도난당했으나 남아있는 연기문(緣起文)에 의하면, 조선 인조 4년(1626)에 조성되었으며, 그 후로부터 121년이 지난 조선 영조 23년(1747)에 불상에 다시 금칠을 하였음을 알 수 있어 조선후기 초반의 불상연구에 기준작으로 평가된다. 
*국가유산포털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