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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保寧 聖住寺址 五層石塔).충남 본문

☆~ 풍경소리/충 남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保寧 聖住寺址 五層石塔).충남

沈香* 2026. 3. 14. 19:19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保寧 聖住寺址 五層石塔)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 성주사터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5층 석조 불탑. 보물.

높이 6.6m. 석탑은 법당 터로 추정되는 곳에 석등과 함께 나란히 서 있다. 전형적인 신라 석탑에 비해 많이 변형된 모습을 보이지만, 성주사 터에 있는 다른 석조물과 비교할 때 통일신라시대 말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석탑은 2층 받침돌 위에 5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리고 머리장식인 상륜부(相輪部)를 놓은 모습이다. 바닥돌인 지대석(地臺石) 위에는 여러 장의 돌로 구성된 하대석(下臺石)을 놓고서, 그 위에 아래층 받침돌의 면석(面石)과 함께 모서리 기둥과 가운데 기둥을 새긴 돌을 올렸다. 아래층 받침돌의 덮개돌은 4장의 널돌로 이루어졌으며, 윗면의 경사는 눈에 띄게 뚜렷한 편이다. 윗면의 가운데 부분에는 3단의 받침이 갖추어져 있는데, 위아래 단은 각진 받침으로 되어 있고, 가운데 단에는 둥근 테두리 장식이 새겨져 있다. 윗층 받침돌은 아래층 받침돌보다 훨씬 높으며, 4장의 널돌로 구성된 면석에는 각 면마다 모서리 기둥과 가운데 기둥이 조각되었다. 윗층 받침돌의 덮개돌은 아래층 받침돌의 덮개돌보다 좁은데, 밑면에는 쇠시리인 부연(副椽)이 있고, 뚜렷한 경사를 이룬 윗면의 가운데 부분에는 3단의 굄이 새겨져 있다.

윗층 받침돌과 1층 몸돌 사이에는 다른 돌로 만든 굄대가 있다. 이 굄대는 이 석탑의 특징으로,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을 비롯하여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국보, 1962년 지정), 담양 개선사지 석등(보물, 1963년 지정)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굄대는 밑면이 소로[小累]와 같이 안으로 휘어진 굽 모양을 하고 있고, 윗면에는 테두리를 장식한 굄이 새겨져 있다.

각 층의 몸돌은 윗층으로 올라갈수록 우아한 체감률을 보이며, 모서리 기둥이 돋을새김으로 표현되었다. 각 층의 지붕돌은 비교적 너비가 좁은 편인데, 밑면 받침은 4단이고, 추녀 밑은 거의 수평을 이루다가 모퉁이에서만 가볍게 위로 휘어진 반곡(反曲)을 보이고 있다. 지붕돌의 윗면인 낙수면은 완만하고, 전각(轉角)의 반전(反轉) 역시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는데, 꼭대기에는 1단의 굄이 있다. 상륜부에는 노반이 놓여 있지만, 보륜(寶輪)·보개(寶蓋) 등 다른 머리장식은 없어졌다.

이 석탑은 9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전형적인 신라 석탑이 각 부분에서 변형을 보이면서 고려 석탑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자료*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保寧 聖住寺址 五層石塔)

성주사지 한가운데에 오층석탑이 서 있다.남향한 금당과 일직선을 이루며 절터의 중심을 잡아 주고 있다.2층 기단 위에 5층 몸돌을 올린 점은 별다를 것이 없는데 1층 몸돌 아래에 굄대처럼 돌받침을 한 받쳐 놓았다.이런 형식은 고려 시대 석탑에서 많이 보이는 방식이어서,신라 하대에 세워졌다고 생각되는 이 탑은 그런 점에서 선구적인형식을 보인다.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않은 채로 높이가 6.6m에 이르는데 1층 몸돌이 시원하게 뻗은 위로 나머지 네 층이 고른 체감률을 보이며 올라갔고 키에 비해 지붕돌 너비가 넓지 않아 전체적으로는 홀쭉한 인상으로 경쾌한 상승감이 있다.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保寧 聖住寺址 五層石塔)
보물 
충남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73  

성주사는『삼국사기』에 나오는 백제 법왕 때 창건한 오합사(烏合寺)가 이 절이었다고 하며, 통일신라 문성왕대에 당나라에서 돌아온 낭혜화상이 이 절의 주지가 되어 번창시키니 왕이 ‘성주사’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 한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현재는 절터만 남아 있다. 

이 절의 금당터로 보이는 곳의 앞에 서 있으며, 뒤로 3층 석탑 3기가 나란히 서 있는데, 서로 층수만 다를 뿐 만든 솜씨는 비슷하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각 면마다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겨두었으며, 기단의 위로는 탑신을 괴기 위한 편평한 돌을 따로 끼워 두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고, 각 면의 귀퉁이에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추녀밑은 수평을 이루다가 위로 살짝 치켜 올라갔다. 

전체적으로는 통일신라시대 탑의 전형적인 모습이나, 1층 몸돌 아래에 괴임돌을 따로 끼워둔 것은 고려석탑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형식이며, 통일신라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짐작된다. 각 층의 구성이 짜임새가 있으며 우아한 모습이다.  
*국가유산포털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