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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회암사 지공화상 부도와 석등(楊州 檜巖寺址 指空和尙浮屠.石燈).경기 본문












양주 회암사 지공화상 부도와 석등(楊州 檜巖寺址 指空和尙浮屠.石燈)
회암사터에서 왼쪽으로 800m쯤 올라가면 회암사가 있다.본래 회암사의 부속암자라면 어울릴 그런 아담한 절이다.저 아래 회암사가 번창할 당시에는 이곳에 절이 있지 않았다.지금 있는 이 절은 순조 28년(1828)에 창건한 것이다.이 절의 창건은 이응준에 의해 회암사터에서 훼손된 유물을 보존하기 위해 불가피했던 것으로 보이고,절 이름을 이미 폐사가 된 회암사라 한 데서 회암사 재건의 의미도 있었던 것 같다.192년,당시 봉선사 주지 홍월초스님이 영성각(影聖閣)을 짓고 지공.나옹.무학대사의 진영을 봉안해 오늘에 이른다.
그 회암사 동편 언덕으로 계단길을 오르면 솔바람소리 나긋한 산등성이에 지공.나옹.무학대사의 자취를 찾을 수 있는 부도와 부도비가 남북으로 4~5m 간격을 두고 나란히 열지어 있다.풍수지리상 회암사를 중심으로 좌청룡의 탄탄한 등허리에 해당한다는 이 언덕에 지공화상부도와 석등을 가운데 두고 등고선의 높낮이를 따라가며 계단을 형성,맨 위 북쪽에 나옹선사 부도와 석등,맨 아래 남쪽에 무학대사 부도와 석등이 자리잡고 있다.일단 그 규모가 하도 우람해 압도하면서도 꾸밈새는 단순 소박한 게 여기 석물들의 특징이다.
지공화상 부도와 석등은 고려 공민왕 21년(1372)에 세웠다.그 2년 전인 1370년 원나라에서 제자 달예(達睿)가 지공화상의 사리를 봉안해 고려로 가져오자 제자 나옹선사는 서둘러 회암사에 봉안했다.
석물은 맨 앞단에 부도비를 세우고 한 단 위에 석등과 석상.부도가 한 줄로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부도는 8각 지대석 위에 상중하 기단을 두었으나 우람한 크기에 비해 문양이나 조식이 전혀 없어 단조롭고 수수하며,역시 아무런 조각도 없는 중대석과 몸돌을 둥글게 다듬어 얹었다.전체적인 비율에 비해 지붕돌이 크고,길쭉한 상륜부 정상에는 보주가 조각돼 있다.부도의 높이는 3.65m ,비신의 가로 세로가 각각 2m이다.부도 앞에는 큼직한 공양돌이 높은 받침대 위에 놓여 있어 특이한데,목조에서나 볼 수 있는 낮은 책상다리 같은 받침대의 변화를 눈여겨 볼 만하다.
석등은 얼른 보아 왕릉에서 보는 장명등처럼 생겼다.방형의 상중하대석 위에 2짝으로 된 화사석을 마주 붙여 화창이 앞뒤 두 곳만 나 있고 그 위로 4각 지붕돌을 얹었다.중대석이 잘록한 허리처럼 날렵한 데 비해 화사석을 받친 상대석이 큼직하고,화사석 위의 지붕돌은 석등 전체를 덮을 만큼 크고 두툼한 게 부도의 지붕돌과 거의 맞먹는다.다만 부도의 지붕돌은 낙수면에 곡선을 주었으나,석등 지붕돌은 선이 반듯한 사각형에 낙수면도 곧아 완곡한 느낌을 준다.석등 정상에는 노반 위에 보주가 있다.석등도 부도와 매한가지로 조각이나 장식이 없어 단순 소박하다.
석등 앞에 서 있는 부도비는 부도가 조성된 지 2년이 지난 1374년에 세워졌다.지대석 위로 4각의 높은 굄대를 놓고 237cm 키의 비신을 세운 다음,목조건축 모양의 지붕돌을 얹었는데 크고 우람하다.전체 높이는 365cm.
비문은 이색이 썼다.지공화상 부도와 석등은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이다.
지공화상(指空和尙)은 인도 마가다(Magadha)국 만왕(滿왕)의 셋째 왕자로 태어나 여덟 살에 나란타사 율현을 스승으로 계를 받는다.당시 세계적으로 유서 깊은 사원이자 대학이었던 나란타사는 이슬람교도의 침입으로 폐교가 되고 지공화상은 이 대학의 마지막 졸업생이 된다.
지공화상은 19세 이후 인도 전역의 순례를 마치고 중국 원나라에 들어와 교화를 편다.지공화상은 바로 이 무렵인 1326년(충숙왕 13년) 3월 고려땅에 들어와 1328년 9월까지 2년 반 동안 금강산 법기도량,개경 감로사와 숭수사,인천의 건동선사,양산 통도사 등 전국 사찰을 방문해 법회를 연다.
지공화상은 특히 선 사상과 무생계법의 계율관을 폈던 것으로 전해진다.고려불교는 나말을 기점으로 폭넓은 계층에서 선불교가 중흥되었던 터에 한 이국 스님에 의해 수행자로서 투철한 지계정신을 재충전받으며 크게 고무됐던 것으로 보인다.
지공화상이 이곳 회암사에서 얼마나 머물렀는지는 알 수 없다.지공은 다시 원나라로 들어가 고려인이 지어준 법원사에서 불법을 편다.1348년 부터 11년간 원나라에서 공부한 나옹은 3년 동안 지공화상 문하에서 법을 배우고 3번이나 찾아가 법을 물어 마침내 심인을 전수받는다.또한 이무렵 고려국 유학생이었으며 뒤에 무심선으로 유명했던 백운 경한(白雲景閑.1298~374), 나옹의 제자가 된 무학자초(無學.1327~1403)등이 지공화상 문하에서 불법을 배웠으니 고려 말 조선 초 불교를 주도했던 인물들에게 다시금 영향을 미치는 것이엇다.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고려로 들어와 국경을 넘나들며 법을 폈던 이국의 한 유능한 선사는 1363년(공민왕 12년)연경 천수사에서 입적에 든다.그로부터 10년 뒤인 1372년 제자 달예(達睿)가 영골을 모셔왔고 공민왕은 명을 내려 이곳 회암사에 부도와 부도비를 세우고 사리를 안치하니 나옹이 그 일을 담당했다.지공화상에 관한 이 같은 내력은 목은 이색(李穡)이 지은 지공화상 비문 '서천제납박타존자부도명병서'(西天提納薄陀尊者浮屠銘幷序)에서 밝혀졌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양주 회암사지 지공선사부도및석등(楊州 檜巖寺址 指空禪師浮屠및石燈)
높이 3.5m.
나옹(懶翁)·무학(無學) 화상의 부도에 이어 천보산(天寶山) 회암사 동쪽 능선 맨 뒤쪽에 서 있는 이 부도는 충렬왕 말년에 고려에 들어와 머물렀던 인도 마갈제국(摩竭提國) 고승 지공(指空)의 사리탑으로, 팔각당형(八角堂形)을 기본구조로 하여 기단부(基壇部)·탑신부(塔身部)·상륜부(相輪部)가 모두 완전하게 갖추어져 있다.
약간 두꺼운 지대석(地臺石) 위에 팔각형 상·하대석과 고복형(鼓腹形)의 중대석으로 이루어진 기단부는, 상대석만이 앙련석(仰蓮石) 모양을 하여 약간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을 뿐, 표면에는 아무런 장식도 하지 않아 매우 단순 소박한 형태를 하고 있다.
팔각모양의 옥개석(屋蓋石)에 둥근꼴의 몸체를 하고 있는 이 부도의 탑신부 역시 기단부에서 보는 바와 같이 표면에는 일체의 장식이 없어 단조로움은 한층 더해 주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팔각 옥개석은 낙수면(落水面)의 경사가 급하고 추녀끝 선이 두꺼워 다소 둔중해 보이긴 하지만, 지붕마루에 마련된 여덟 개의 융기선과 낙수면이 만들어 내고 있는 현저한 곡선으로 말미암아 경쾌함 또한 엿보인다.
지붕 위 기둥모양의 상륜부는 앙련으로 대신하고 있는 복발(覆鉢)과 서로 연결되어 조각한 꼭대기의 보륜(寶輪)과 보주(寶珠)로 이루어져 있다.
부도 앞쪽에 떨어져 자리하고 있는 석등은 사각형을 기본구조로 하여 하대석으로부터 굵직한 간석(竿石)·상대석·화사석[火舍石: 석등의 점등하는 부분]과 옥개석에 이르기까지 모두 네모꼴을 이루어 둔중해 보일 뿐만 아니라 딱딱한 느낌을 준다.
이 석등의 특징은 기단부 갑석(甲石) 위아래 부분의 모서리를 모죽임하여 처리한 점과 2매의 판석을 세워 화사석을 만듦으로써 화창(火窓)이 앞뒤쪽으로만 두 개 뚫려 있는 점이라 하겠다.
낙수면이 거의 직선을 이루어 지공선사부도와 대조를 보이고 있는 옥개석은 부도의 옥개석과 마찬가지로 네 곳의 내림마루에만 융기선을 마련했을 뿐이며, 꼭대기에는 연꽃봉오리 모양의 보주를 장식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자료*
양주 회암사지 지공선사부도및석등(楊州 檜巖寺址 指空禪師浮屠및石燈)
경기도유형문화유산
경기 양주시 회암동 산8-1
회암사에 놓여 있는 부도와 석등이다.
부도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여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신다. 회암사에 서 있는 이 부도는 회암사를 창건한 인도인 승려 지공선사의 사리를 모시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이후 많이 사용된 양식으로, 모든 부재가 8각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바닥돌 위에 올려진 기단(基壇)은 3단으로 올렸는데 그 중 가운데받침돌만 배가 볼록하다. 아무런 장식이 없는 탑신(塔身)은 둥근 공모양이다. 지붕돌은 윗면의 여덟 모서리선이 두툼하며 처마의 각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있다. 꼭대기에는 하나의 돌로 이루어진 머리장식들이 온전하게 남아있다.
석등은 모든 부재가 4각으로, 3단을 이루는 받침돌 위에 등불을 켜두는 곳인 화사석(火舍石)과 지붕돌을 올려놓았다. 화사석은 앞뒷면 2곳에만 창을 내었고, 지붕돌은 부도에서와 같이 윗면의 네 모서리선이 두툼하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이 가지런히 올려져 있다.
두 작품 모두 고려 공민왕 21년(1372)에 세운 것이다.
*국가유산포털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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