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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홍전(德弘殿).서울 덕수궁 본문

☆~ 바람소리/궁궐(宮闕)

덕홍전(德弘殿).서울 덕수궁

푸른새벽* 2006. 12. 26. 23:31

 

 

 

 

 

 

 

덕홍전(德弘殿)


덕수궁의 편전 역할을 하던 덕홍전은 중화전의 동쪽,함녕전의 서쪽에 남향으로 위치해있다.고종이 함녕전을 침전으로 사용하면서 주로 내외 귀빈을 접견하는 처소로 사용되었다.1094년의 화재로 소실되었는지의 여부는 기록에 나타나지 않지만 현존 건물은 1911년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렇다면,덕수궁 안에서 가장 늦게 건립된 전각이다


건물 앞 기단은 2층으로 형성하였는데,양쪽에 소맷돌을 설치한 돌계단으로 오르는 아래 기단은 화강석 장대석을 두벌대로 쌓았으며 좌우 측면에도 돌계단을 놓아 소규모 월대처럼 구성하였다.안쪽 기단은 장대석 세벌대로 쌓았으며 그 위에 네모 뿔대로 다듬은 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웠다.공포는 이익공 양식이다


덕홍전은 정면이 3칸인데 비해여 측면이 4칸이다.즉,정면은 기둥 사이의 폭이 일정한데,측면의 좌우 2칸을 툇간으로 형성함으로써 전체적으로 건물이 정방형에 가깝다.좀처럼 보기 드문 구조로서 이는 개화 물결을 타고 인식이 변하면서 비롯된 변형인 것으로 짐작된다.덕홍전의 출입문 또한 궁궐 전각에서는 드물게 서구식으로 짠 당판문을 달았다.건물 동쪽 측면에도 출입문을 달아 남쪽의 정면과 같이 격을 높였다.창호는 머름 위에 주로 띠살 창호를 달았으며,그 위에 빗살 교창을 설치하였다


덕홍전은 건물의 측면이 넓은 만큼 지붕의 합각 역시 매우 넓어졌다.합각면은 매우 세밀하고 아기자기한 문양으로 구성하였다.지붕 각 마루는 양성을 하고 취두와 용두,잡상을 배열하여 장식하였다.건물 내부 바닥은 마루를 깔고 한 공간으로 트여 있다.벽과 천장이 만나는 부꾹 부분에는 네 면에 모두 나무로 조각된 봉황 사이에 금빛 이화(李花)문양을 새겨 놓았는데
다섯 꽃잎에 각각 꽃술 셋이 표현되어 있다.원래는 덕홍전도 전후좌우에 행각을 거느리고 있었으나 현재는 남행각만이 변형된 채 함녕전 남행각에 이어져 있다


한편 덕홍전과 함녕전 뒤로는 비교적 넓은 마당이 펼쳐지다가 화계(花階)가 구성되어 있다.그 화계 위 언덕에 정관헌이 자리를 잡았다.덕홍전 뒤 화계의 서쪽 끝으로 아름다운 샛담이 서 있다.석어당 동쪽의 경사진 길을 따라 층단을 이루며 축조된 샛담에는 정관헌으로 드나드는 일각문과 유현문 그리고 덕홍전으로 드나드는 석류문,용덕문이 나 있다


좌우로 꽃담이 이어진 유현문은 벽돌로 쌓아 아치형으로 문을 내고 그 위에 기와를 얹은 구조이다.즉,장대석으로 문지방을 놓고 양쪽에 두 개의 돌기둥을 세운 다음 전돌로 홍예를 틀고 무시무종(無始無終)무늬를 둘렀다.홍예 안에 골판문 두 짝을 달아 여닫을 수 있도록 하였으며 무늬 양 모서리 부분에는 영지를 입에 문 학(鶴)한 쌍을 조각한 전돌을 장식하였다.그리고 그 상부에는 목조 건축의 처마 모양으로 전돌을 쌓고 기와를 얹었다
*이덕수 지음 '新궁궐기행'중에서*

 

 

 

 *덕홍전 안으로 드는 문은 궁궐 전각에서는 드물게 서구식 당판문으로 짰다.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건물 동쪽 측면에도 출입문을 달아 건물 정면과 같이 격을 높였다

 

 

 

 

 *덕홍전 내부 모습

마루에는 붉은 카핏을 깔았고 용상과 일월오악병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카핏도 걷어내고 수리를 위해서 인지 용상도 치워지고 없었다.천장은 우물마루로 마감하여 단청을 하였고 벽과 천장이 만나는 부분에는 나무로 조각된 금빛 봉황 사이에 역시 금빛 이화(李花) 문양을 새겼다.천장에는 근대식 전등이 매달려 있다

 

 

 

 

 *유현문

양쪽에 돌기둥을 세우고 전돌로 홍예를 틀어 골판문 두짝을 달았다

 

 

 

 *유현문 좌우 꽃담의 기와

수막새에는 봉황을,암막새에는 여의주를 희롱하는 용을 돋을새김하였다.다른 궁궐에 비해 덕수궁에서는 용을 상대적으로 흔하게 볼 수 있다.덕수궁이 황제국인 대한제국의 법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유현문의 학과 용 문양

문 바깥 쪽에는 영지를 입에 문 학을 그렸고, 안쪽에는 용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