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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궁남지(宮南池).충남 부여 본문

☆~ 풍경소리/충 남

부여 궁남지(宮南池).충남 부여

푸른새벽* 2008. 3. 24. 01:03

 

 

 

 

 

 

 

 

 

궁남지(宮南池)


궁남지는 현존하는 우리 나라 연못 가운데 최초의 인공 조원(造苑)이다


『삼국사기』무왕 35년(634)조에
"3월에 궁 남쪽에 못을 파고 20여리나 먼 곳에서 물을 끌어들이고 못 언덕에는 수양버들을 심고
못 가운데는 섬을 만들었는데 방장선산(方杖仙山)을 모방하였다"는 기사는
바로 이 궁남지를 두고 말함이다


전체적으로 둥근 연못 가운데에 작은 섬이 있고 못가에는 버드나무가 한가롭게 가지를 휘늘이고 있다
연못 동쪽에서 주춧돌이 발견되고 기와 조각이 흩어져 나와
이 궁남지가 궁성의 이궁에 따르는 원지(苑池)였던 것으로 추측되며
주춧돌이 별궁 건물의 흔적이 아닌가 하고 여겨 진다
근처에는 3단으로 짜 올린 팔각형 우물도 있다
『삼국사기』에는 또 무왕 39년(638)조에
"3월에 왕은 비빈과 더불어 큰 연못에 배를 띄우고 놀았다" 고 하였으니
바로 이 궁남지에서 뱃놀이도 즐겼던 듯하다
계획적인 인공 연못인 이 궁남지는 물을 능산리 동쪽의 산골짜기에서부터 끌어온다


궁남지 바로 동쪽에 있는 화지산의 망해정이 푸른 연못에 그림자를 드리워 신선경을 방불케 했다는 기록도
『삼국사기』에 전한다


신라 조원의 미묘한 맛을 보여주는 안압지보다 40년 앞서 만들어져서
안압지의 모형이 되었을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직선과 곡선을 조화시켜 한껏 묘미를 살린 안압지가
그저 둥글게 조성한 궁남지를 본떴으리라고 생각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원래 훨씬 넓었던 것이 많이 메워진 상태라고 하니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그러나 둥근 연못 주위의 면적은 1만3772평에 이른다
1965년에 정비작업을 했고 다리와 누각은 1971년에 세운 것이다
사적 제135호이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궁남지(宮南池)


사적 제135호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17외 


부여 남쪽에 위치한 백제의 별궁 연못이다. 백제 무왕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궁궐의 남쪽에 연못을 팠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근거로 궁남지라 부른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20여 리나 되는 긴 수로를 통해 물을 끌어들였고,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었으며 연못 가운데에 방장선산을 상징하는 섬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수로와 물가·연못 속의 섬이 어떤 모양으로 꾸며져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못의 중앙부에 석축과 버드나무가 남아있어 섬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주변에서 백제 토기와 기와 등이 출토되었다. 연못의 규모 또한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당시에 뱃놀이를 했다는 기록이 있어 그 크기를 짐작할 뿐이다.


고대 중국사람들은 동해바다 한가운데에 일종의 이상향인 신선이 사는 3개의 섬으로 삼신산이 있다고 생각하여, 정원의 연못 안에 삼신산을 꾸미고 불로장수를 희망했다고 한다. 궁남지는 이것을 본떠 만든 것으로 신선정원이라 불린다.


연못 동쪽에 당시의 별궁으로 보이는 궁궐터가 남아 있다. 현재 연못 주변에는 별궁 안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우물과 주춧돌이 남아있고, 연못 안에는 정자와 목조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