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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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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여행 후기

화순을 돌아보다

푸른새벽* 2008. 4. 22. 23:41

 그간의 사정이야 각기 다르겠지만

어쨌건 바빠서 (내 경우엔 지난해 8개월 동안 시험준비에 매달리느라) 못 만났던 친구들

날 풀렸다는 핑계 하나로 바쁜 시간 짬내어 떠나기로 한 여행 

오래전부터 찾아 보고 싶었던 강릉으로 계획을 잡고 1박2일의 여정을 준비했는데

영동지방의 대단한 봄눈 소식에 지레 겁먹고 급히 여행계획을 수정해 정한 곳

전남 화순

화순이야 두어번 다녀왔지만 그런들 어떠랴

어차피 쌍봉사나 운주사엔 한 번더 가리라 맘먹고 있었으니...

화순이라면 하루동안의 나들이로 그리 힘들것도 없다고 느낀 것은

운전 번갈아가며 해 줄 친구가 함께했기 때문

화순에서는 쌍봉사와 운주사 그리고 벽나리민불과 한산사터 석탑을 보기로 하고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화순적벽과 조광조 유허지를 찾아보려는 계획으로 출발~

 

 

날씨는 화창했지만 겨울의 꼬리가 남아 있는지라 옷속을 파고드는 바람이 매웠다

평소 혼자만의 여행이라면 휴게소도 거의 건너 뛰는데

이번 여행은 아낙네 넷이 함께 하기에 휴게소도 자주 들리게 되었다

이렇게 한산한 휴게소에 들러 마시는 커피한잔과 주전부리는 여행의 또 다른 작은 즐거움이다

호남고속도로 벌곡 휴게소지 싶다

 

 

 

 

  

아침 8시에 출발하여 쌍봉사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 가까워져 있었다

눈에 익은 쌍봉사 해탈문과 막돌로 가지런히 쌓은 담장이 반갑다

 

 

 

 

 

'春來不似春'

봄은 봄이건만 봄 같지 않은 봄...

불타버려 다시 만들어 세운 쌍봉사 대웅전

아쉽고 안타까운 맘 아는지 모르는지 대웅전 처마끝 풍경이 아련하다 

 

 

 

 

 

 쌍봉사 철감국사부도를 만나러 가는 길

오솔길 양옆의 대나무길은 맵싸한 바람이 머물지만 

대나무 이파리 사이엔 아릿아릿한 봄이 벌써 다가와 있다

 

 

 

 

 

철감국사부도와 부도비

철책 울타리 살째기 넘어들어 가까이 다가가 낱낱 샅샅이 살펴 보고 싶지만

삐삐대는 경고음에 화들짝 놀란 가슴  그저 주위만 빙빙 돌다가...

 

 

 

 

 

쌍봉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운주사

일주문을 들어서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돌아와 다시 미진함 남기지 않으려면

 

 

 

 

 

운주사 와불

운주사를 구석구석 다 돌아봤다하더라도 이 와불을 만나지 못하면 그야말로 단팥없는 단팥빵이 된다

예전엔 없었던 튼튼한 밧줄로 된 울타리

모른척하고 넘어들어가도 말릴 사람 없는데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렇게 빙 둘러 울타리를 만들어 놓았다는 것은

지키는 이 있거나 없거나 "하지말라"는 것이며,하지말라는 것은 또 그만한 이유가 있을테니까

 

 

 

 

 

와불을 만나고 다시 언덕을 내려와 대웅전을 살폈다

천불천탑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하 많은 탑들을 살피고 나니 대웅전 앞에서는 매번 허탈하다

그러나 그 허탈함 달래주려는 듯 피어올린 연꽃

운주사 대웅전 궁창에는 이렇듯 사그라들지 않은 蓮香이 있다

 

 

 

 

 

운주사 대웅전 뒷편 야트막한 언덕에서 바라보면 운주사 진입로가 보인다

이곳에서면 항시 정호승님의 詩 한 귀절이 생각난다

"그대 가슴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풍경을 달아줄 그대가슴을 잃어버린 탓에 스산한 맘으로 운주사를 돌아나오려는데

절집에서 운영하는 찻집 유리창너머 보였던 앙징맞은 솟대

일부러 찻집으로 들어가 그 이쁜 모양새를 담았다

솟대와 茶器...

평안함과 여유에 다름아니다 

 

 

 

 

 

쌍봉사와 운주사를 돌아보고 나니

점심식사 시간이 많이 늦었다

화순으로 여행지를 정하고나니 작은 걱정거리 한가지가 바로 점심식사였다

혼자만의 여행이라면 그런 걱정은 접어두는데

여럿이 함께 하는 여행에서는 먹거리도 여행의 중요한 부분이 된다

고심끝에 생각해냈던 것은 화순군청 홈페이지를 뒤져보는 것

뒤져보길 잘했다

화순에서 괜찮겠다 싶은 음식점 100여 곳의 정보가 있었다

하나도 놓치지 않고 훑어보다가 친구들의 식성과 가격과 거리를 참고하여 열 곳 쯤의 정보를 수첩에 담아왔었다

그 중 한곳을 정하고

네비게이션에 음식점 전화번호를 입력해 수월하게 찾을 수 있었던 곳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내려 해도 그 음식점 상호가 생각나지 않는다

사진은 음식점을 들어서면 이런 홀이 있다

홀의 가장자리를 빙 둘러 방들이 여럿 있다

우리는 피곤한 다리 뻗고 앉으려 방으로 들어갔다

 

 

 

 

 

일인분의 가격이 1만원이 조금 넘는 점심식사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아니어도 충분히,기쁘게 마주할 수 있었던 차림

호사스럽고 대단한 상차림이 아니라도 간이 맞고 정갈한 음식 앞에선 언제나 즐겁다

언젠가 남도출신의 지인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남도에선 길에 떨어진 음식 주워 먹어도 맛나다"

 

 

 

 

 

함께 한 일행들이 늦은 점심식사에 포만감까지 더해 느른하게 졸고 있는 사이

그들은 자동차에 두고 혼자 뛰어가 만나 본 벽나리 민불

아직은 말라 있는 논두렁 사이를 지나 수로를 건너 뛰어 가까이 다가가 본 벽나리민불은

먼거리 이곳 화순까지 찾아 온 보람을 느끼게 해주었다

다정하고 순 한 표정으로...

 

 

 

 

 

 벽나리 민불이 있는 곳 아주 가까이 이렇게 철길이 있다

마침 지나가는 기차를 만날 수 있었다

아직은 쓸쓸한 벌판 한 가운데를 지나가는 기차와 철길

표현 못할 그리움이 왈칵~

이 기차는 도착지가 어디일까

 

 

 

 

 

사는 동안 만났던

나빴던 운과 좋았던 운을 저울에 올려 놓아본다

저울의 추는 어느 한곳으로 심하게 기울어지진 않는다

그러고 보면 내가 살아 온 세월이 그리 억울하지만은 않은가보다  

 

기차가 지나 갈 동안 차단기 앞에서 기다리는

그 잠깐의 시간동안에 많은 생각이 오간다

 

삼월 늦은 오후의 그림자가 짙다

이제 이 길을 돌아 한산사터를 찾아야 한다

 

 

 

 

 

자동차가 다니는 큰길을 비껴 작은 농로를 따라 들어오니

산그림자 짙은 마을이 나타난다

 

 

 

 

 

 희안한 모양새의 산과 그 산에 기대어 있는 한산사터

절집의 흔적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고 빽빽하게 늘어선 사과나무만 절터를 지키고 있었다

 

 

 

 

 

이런 정경이 좋다

문득 법수사터 삼층석탑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립다

 

 

 

 

 

시골동네라고 다 이렇지는 않을게다

한산사터가 있는 자그마한 마을 골목길엔 이렇게 정겨운 돌담장이...

저 골목길 돌담을 돌아가면

물 묻은 손 앞치마에 닦으시며 저녁먹으라 부르는 어머니가 계실 것 같다

 

 

 

 

 

산 그늘이 짙어서 일까

마을은 어느새 어둑신해지려 한다

집에 빨리 가고싶다

이 시간이면 어김없이 어머니가 보고 싶다

눈물나게...

 

 

 

 

 

한산사터를 뒤로하고 돌아가는 길엔

아직은 까무룩하게 늦은 저녁햇살이 남아 있었다

 

바쁜 것도 아닌데,저녁을 준비해야 할 것도 아닌데,기다리는 젖먹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항시 조급하다

돌아가면 금방 다시 또 떠나오려 작정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