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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떠나다
춘천 돌아보기.조양루.위봉문.춘천향교 본문
춘천에서 보고싶은 탑은 보았으니
이제 춘천시내의 몇 곳을 돌아봐야 겠다
서면에서 춘천시내로 들어가는 길 어디쯤 인지는 모르지만
넓은 차도엔 경찰과 공무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한창 분주한 것 같았다
무슨 일일까 했던 의문은 하늘높이 펄럭이는 현수막을 보고 이내 알았다
'춘천삼림축제'
마침 내가 춘천을 찾은 날이 축제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거리는 온통 나무냄새였다
달큰하다고 할까,비릿하다고 할까 코가 뻥 뚫리며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은 좋은 냄새...
바쁘지 않다면 그곳에 들러 좋은 나무 냄새를 싫도록 맡아보고 싶었는데
무에그리 �기듯 다녔을까
돌아오며 내내 후회했다
춘천의 얼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조양루룰 찾아 네비가 시키는대로 왔더니
선산 김씨 문중의 소유라는 근사한 안내문이 있는 입구를 지나 반듯하게 포장된 길을 올라
도착한 곳
얕은 산허리에 위치한 공원이었다
공원의 꼭대기에는 빛나는 현충탑이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이곳 춘천에서 나라를 지키다 순국한 분들의 영령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는데
이 현충탑이 자리하고 있는 곳은 우두산이며 우두산은 춘천의 주산(主山)이다
그런데 조양루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물어 볼 사람하나 보이지 않는다
이럴땐 알아보는 방법이 있지
춘천시청 문화관광과에 전화를 했다
조양루의 위치가 어디쯤이냐는 내 물음에
"네 ? 어디를 찾는다구요?
"조양루가 뭐하는 곳이예요 ? 여기는 춘천인데 조양루라는 곳이 춘천에 있는 것이 맞나요?"
전화를 받은 춘천시청 관광과에 근무하는 여성으로부터 들은 기가막힌 말이다
나도 춘천은 잘 모른다
예전 이곳에 계셨던 이외수님과 춘천이 고향이라는 한수산님과 소양호와 청평사와
근화동 당간지주와 춘천칠층석탑
그리고 춘천호반과 안개밖에는 모른다
내 전화를 받은 춘천시청 관광과에 근무하는 여성에게 화가났다
나라에서 녹봉(祿俸)을 받는 시청 관광과에 근무한다면
근무지 홈페이지의 관광자료나 문화재자료에 관한 것은 한 번이라도 살펴봤어야 한다
나도 조양루를 몰라서 찾아왔지만 적어도 조양루가 춘천의 얼굴이라는 것 쯤은 안다
근무태만이다
녹봉(祿俸)이 아깝다
전화를 받은 여성은 주위에 물어보는 듯 했지만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소리로는 그 주위의 사람들도 모르는 것 같다
전화를 다른 곳으로 돌려주겠단다
전화를 다시 받은 사람은 조양루를 알고 있었고 조양루의 위치도 가르쳐 주었다
답사지에서 의문사항이 있으면 그곳을 관리하는 관청에 문의하기 마련이다
거개의 담당자들은 상세히 친절하게 안내를 해 준다
하지만 이렇게 무식한 담당자들이 있어 싸잡아 욕을 듣기도 하니
제발 공무원나리들은 자기가 근무하는 부서가 어떤 곳인지 각자의 맡은 바 할 일이 무엇인지
제대로 살펴 바르게 실천하기 바란다
알고 보니 이렇게 쉬이 찾을 수 있었던 것을...
조양루는 현충탑에서 오른편으로 약간 경사진 아래에 있었다
현충탑에서 내려가며 보는 조양루는 측면이다
현판을 찾아보려 경사진 언덕을 겨우 내려가서 살폈지만 현판이 없다
그렇다면 이곳이 뒷쪽인가
그랬다
현충탑이 있는 곳에서 조양루는 찾기가 어려웠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그 반대쪽 측면이 조양루의 정면이었으니까
누각 앞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묘지
누각의 턱 밑에 이런 묘지를 세울 수 있었던 자손은 그 세도가 하늘 을 찌를 듯 했나보다
비석을 살펴보니 2006년 3월 26일에 세워진 것이다
비석이야 자손이 다시 새운 것이어서 2006년이라 쳐도
이 조양루가 이곳 우두산으로 옮겨 온것이 1908년인데
이 묘지는 그 훨씬 전 부터 있었더란 말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렇게 나라에서 관리하는 문화재 턱 앞에 있을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조양루는
조선 인조 24년(1646) 때의 춘천부사 엄황이 문소각을 세울 때 위봉문과 함께 지은 문루이다.
지금 있는 건물은 순종 융희 2년(1908)에 현 위치인 우두산으로 옮겨 세운 것이다.
현충탑 앞에 세워둔 자동차로 돌아오면서 만났던 어르신
현충탑 관리를 맡아 하신하고 했다
공무원나리들과는 달리 이곳 조양루에 대해서 또 조양루 앞의 묘지에 대해서
비교적 상세하게 알고 있었고 설명도 해주셨다
어느 답사처든
문화재청자료나 지자체의 자료에 견줄 수 없는 대단한 역사를 알고 있는 어르신들이 있다
그 분들께 진정 존경의 맘을 전한다
그 분들이야말로 진정 숨소리 느낄 수 있는, 가슴으로 느낄 역사이니까
아~
가을이 짙어가는구나
위봉문은
춘천시내 한 가운데 있었다
위봉문(威鳳門) 은
조선 인조 24년(1646)에
춘천 부사로 있던 엄황이 관청 옆에 문소각이라는 건물을 지으면서 함께 세운 것이다.
고종 27년(1890)에 민두호가 왕의 명령으로 문소각을 넓히고 고쳐서
이궁(離宮:임금이 여행하는 중에 머무는 궁전)으로 삼았는데,
위봉문은 이궁의 내삼문이었다.
1916년에 문소각 건물은 불에 타 없어지고 누각인 조양루와 위봉문만 남게 되었다.
문의 높이는 약 6.3m이며, 한단(一段)으로 장대석을 놓고 기단을 만들었다.
기단 위에 두 줄로 네모난 초석을 배치하고 8개의 원형 기둥으로 문을 세웠다.
건물의 크기는 정면 3칸으로
세 개의 문을 만들어 가운데 칸은 양측 칸보다 폭이 넓고 지붕도 한 단을 높게 하였다
위봉문처럼 전체적으로는 하나이나 세 개의 출입문을 가진 문을 삼문(三門) 이라하며
가운데 문의 지붕이 솟아 있는 것은 솟을삼문 또는 소슬삼문이라 부른다
그런데
문소각은 어디에 있을까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하여 여러모로 찾아보았으나
문소각은 화재로 소실되었다는 것만 알 수 있었을 뿐
문소각은 불타버리고 위봉문은 잘 지은 반들반들한 건물 앞에 옹색하게 서 있고
조양루는 또 우두산 자락에 있다
위봉문의 편액
위봉루(威鳳樓)란 명칭은 태평성대에 나타난다는 봉(鳳)을 상징하였다.
봉은 신조(神鳥)인데 이것이 나타나면 천하가 크게 안녕하고 이것이 날면 뭇 새들이 따르며,
위의(威儀)를 띠고 있기 때문에 위봉(威鳳)이라 한다는데
위봉문의 편액위에는 이처럼 상상의 새인 봉황이 그려져 있다
위봉문과 함께 같은 곳에 지어졌던 건축물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옮겨 갔거나 흔적도 없는데
달랑 문 하나 뿐인 위봉문을 잠궈 놓은 그 뜻을 모르겠다
위봉문은 이렇게 문 하나 뿐이다
위봉문의 뒷쪽은 근사하고 반들반들한 건물이 받치고 있다
위봉문과 건물사이의 좁은 터는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었다
위봉문에서 작은 골목길 건너에서 볼 수 있었던 황금동상
단군할아버지다
초등학교에 세워진 단군의 동상은 여러모로 수난을 당하고 있다는데
이렇게 울타리 안 좁은 터에 단군동상을 모셔 놓은 이 건물은 어떤 용도로 쓰이는 곳인지
노인회 건물이다
고개가 끄덕이며 다음의 답사처인 춘천향교로 향했다
춘천향교는
잘 자란 나무들의 호위를 받고 서 있는 홍살문 너머에 위치한 다른 고장의 향교와는 달리
철제대문이 달린 높은 담으로 둘러 쳐저 있었다
번잡한 시내에 위치한 탓일까...
다행히 그 철제 대문은 열려 있었다
열린 문을 통해 향교로 들어서니 커다란 현수막이 먼저 눈에 들어 온다
기로연(耆老宴)
'기로연'이란 노인을 위한 잔치다.
일흔 살이 넘는 노인을 ‘기(耆)’, 여든 살이 되는 것을 ‘노(老)’라고 하였는데,
조선시대에 특별히 '기로소'에 입적한 원로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잔치를 벌이고
그것을 ‘기로연’이라고 했다고 하는데
지금의 기로연은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을 위해 각 고장의 향교에서 한 해에 두 번씩 벌이는 일종의 잔치이다
마침 내가 춘천향교를 찾은 날이 기로연이 베풀어지는 날이었다
10월 16일...
향교의 문이 열려 향교 안으로 들어 갈 수는 있었지만
찬찬히 살펴보는 것은 무리였다
향교의 공간 곳곳에 천막이 드리워져 있었고
아낙들은 행사와 음식을 준비하느라 부산했기에 딱히 누구에게 물어 볼 수가 없었다
기로연이 참석한 여자 어르신들은 때깔고운 옷차림이었고
남자 어르신들은 약주를 드셨는지 기분이 좋아 박장대소하는 모습도 보았다
일년에 두어번 밖에 베풀어지지 않는 기로연이지만 참 좋은 우리의 풍습이라는 생각을 했다
명륜당은 학생들이 모여서 공부하는 강당으로 교화의 원천이 되기도 한 곳인데
문이 열려 있었지만 명륜당은 편액밖에 담지 못했다
어르신들 앞에 뒷태를 보인다는 것이 어쩐지 민망해서 얼른 편액만 사진기에 담았다
춘천향교 대성전
대성전은 사당으로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데
차마 어르신들께 문을 열고 들어가 보겠노라는 말을 못했다
춘천향교는
조선시대에는 나라로부터 토지와 책·노비 등을 지급 받아 운영하였고
갑오개혁(1894) 이후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지금은 제사의 기능만 남아있다.
처음 지은 연대는 전하지 않고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선조 27년(1594)에 다시 지었으며
그 후 여러 차례의 수리가 있었지만 한국전쟁으로 소실된 것을 1960년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명륜당 앞쪽의 건물 뒤로 돌아가 보았더니
제사를 모실 때 입는 제례복이 정갈하게 걸려 있었다
단정하게 걸린 의복을 보며 춘천향교의 전통과 내력을 어림하며
춘천 답사의 마무리를 하려 죽림동으로
춘천 죽림동엔 역사 유구한 죽림동 성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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