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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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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여행 후기

춘천 돌아보기.월송리.서상리탑

푸른새벽* 2008. 10. 20. 14:00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 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곳으로 유배당해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恨)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 쌌고 먼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

 

무진도 아니고,바다도 아니건만

나는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의 한 귀절을 떠 올리며

안개가 많은 계절 안개 가득한 날,안개 걷히지 않은 시간에 안개의 도시 춘천을 향해 집을 나섰다

 

 

유명한 북한강변의 안개를 만난 것은 모처럼의 행운이다

 

 

철도 건널목의 차단기도 아스름하다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기적소리나 차단기의 땡땡거림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북한강변을 따라 달리게되면 항시 들리게되는 아주 오래된 찻집

 

 

문이 잠겨있다

종이컵 커피가 마시고 싶어 들렀는데

찻집의 문을 열기엔 아직 이른 시간인가보다

닫힌 문앞에 붙여놓은 안내글귀가 커피향처럼 따뜻하다

 

 

이곳에 오면 항시 차 한잔을 들고 바라보았던 풍경이었는데

안개 때문인가 그 느낌이 전에없이 부드럽다

커피 생각이 간절하다 

 

 

이 찻집의 상호가 모란봉이었던가

길동무였던가

이름없는 찻집인 줄로 알고 있는데...

 

 

양수리 북한강변가의 아담하고 이쁜 테이크 아웃 커피집에서 맑은 커피를 커다란 잔으로  한잔 샀다

그리고 쉬지 않고 달리다 아스라한 풍경이 너무 좋아 차를 세웠던 곳

삼악산 입구를 지나 춘천으로 들어가는 길을 비껴 화천으로 방향을 잡아 달리니

오른쪽으로 곧장 호수가 펼쳐졌다

안개와 호수...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답사길 바빠도 이곳에 차를 세우고 북한강변의 안개를 담아 온 커피를 마셨다

입으로는 북한강 안개를,눈으로는 춘천의 안개를...

 

 

손으로 잡을 수 없는 것과 뚜렷이 존재하는 것

안개에 슬며시 숨은 섬의 숲들이 보드랍다

안개에 숨는 것은 나무뒤에 숨는 것과는 다르다

 

안개와 안개숲과 호수와 붉은 꽃이 그려내는 풍경에 커피에도 아랑곳없이 깔깔하게 목이 마르다

 

 

그렇게 그렇게 춘천 호반의 안개를 뒤로하고 골골이 찾아 든 곳

춘천시 서면 월송리

월송리 삼층석탑을 찾았다

월송리탑은 여염집 담장 안에 있었다

 

 

조그맣고 빼또독한 탑이다

 

 

월송리삼층석탑은

화강암을 깎아 만들었으며,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데 
오래전 이곳에 조면사(造麵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나

그 절터의 흔적조차 없는 이곳을 저렇게 오래토록 지키고 있는데

빼또독해 보이던 처음과는 달리 야무지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모습으로라도 자리를 지켜주니 근처에 절터가 있었다는 짐작이라도 할 수 있는거지

이 탑마져 없었더라면...

기특하고 고마운 탑이다

 

 

월송리탑을 보듬어 안고 있는 여염집의 화장실문이 잠겨있다

처음엔 좀 놀랬다

한적하고 사람 많이 살지 않는 이곳에도 화장실 인심이 이런가 싶어서

그러다 곧 그런생각 한 것이 부끄러워졌다

낯선이의 화장실 사용을 금하려면 문만 잠그면 된다

그런데 열쇠가 함께 달려 있다

바람이라도 불면 가벼운 알미늄 화장실 문은 매우 덜컥 거릴 것이다

덜컥 거리지 못하게 잠그었을 뿐 낯선이를 배려하는 열쇠는 달아 두었던 것

도시의 삭막한 정서로는 그 속내를 쉬이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부끄러웠다

 

 

탑골길...

월송리 643번지는 이쁜 이름 탑골길이다

 

 

월송리를 떠나 다시 바삐 찾았던 곳

춘천시 서면 서상리

자동찻길 바로 아래 넓은 터에 탑이 서 있다

 

 

서상리삼층석탑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각 부의 구성이 간결하여 단아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통일신라 후기의 석탑이다

먼저 돌아 본 월송리탑처럼

이곳에 있었던 양화사라는 절은 흔적도 없지만 이 절터를 지키며 홀로 남아 있는 탑이다.

 

 

탑이 있는 곳 건너편에 실하게 잘 자란 배추밭이 있다

배추 포기포기를 감싸 묶지 않은 것을 보니 아직 속은 덜 찼을게다

검푸른 배추를 보니 김장철이 가까워졌음을 느낀다

내 일상을 하루만이라도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 온 답사길이지만

발길 닿는 곳,만나는 풍경들로 인하여 살림살이 걱정하는 아낙의 마음까지 떨칠 수는 없다  

올해는 김장을 언제 얼마나 해야 하려나...

 

 

자동찻길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작은 도로 한켠에 널어 놓은 알곡들

추수철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낯익은 풍경을 서상리탑의 주변에서 만났다

 

 

 

사진은 변덕이 심하다

서상리탑이 위치한 곳은 자동찻길 바로 아래 마을로 들어가는 초입이다

탑의 정면에 서면 휑한 터 너머로 황토색 벌건 돌축대 요란하게 쌓은 새로지은 집이 있다

정면으로 보이는 탑의 눈맛이 결코 유쾌하지 않은

누구도 외면하지 못할 삭막한 풍경인데

위치를 조금 만 바꾸면 이렇게 고즈넉하고 운치있는 풍경이 된다

이 얼마나 기막힌 사진의 속임수인가

탑의 전체적인 사진을 보지 않고 이 풍경만 본 사람들은

서상리탑은

오가는 사람 하나없는 잡풀 우거진 폐사지에 쓸쓸하게 서 있는 원주 흥법사터 같은

그런 느낌을 받을 것이다

 

서상리탑은 자동찻길에서 작지 않은 마을 서상리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지나야 할 그 길에

그렇게 서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