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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태화산 광덕사(泰華山 廣德寺).충남 천안 본문

☆~ 절집.절터/충 남

천안 태화산 광덕사(泰華山 廣德寺).충남 천안

푸른새벽* 2008. 10. 23. 18:43

 




 




 

 







 




 

 




 




 







 

 




 







 




 

 







 




 




 




 




 




 

 







 


태화산 광덕사(泰華山 廣德寺)

 

충남 천안시 광덕면 광덕리


금북정맥의 줄기를 이루는 광덕산에 자리잡은 광덕사는 신라 흥덕왕 7년(832)에 진산화상이 창건했다는 절이다.조선 숙종 6년(1679)에 안명로가 지은 「광덕사 사적」에 따르면 개창 당시에는 금당이 아홉에 종루가 여덟,이층 범각과 삼층 법전이 있는 충청.경기 지방에서 가장 큰 절이었다고 한다.절의 땅이 광덕면을 다 덮었고 부속 암자가 즐비하여 28방 89암자에 이르러 광덕산에는 골짜기마다 독경소리가 끊이지 않을 정도였다.조선 초기에도 나병을 치유하려던 세조가 다녀갈 만큼 사세를 이루고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거의 불타 버려 옛 영화는 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임란 직후인 선조 때와 그 뒤 효종 때에 중건했다고 하는데 지금 사세는 한적하다.


전각들의 단청이 모두 말끔하여 오래 된 절의 맛을 살려 주지 못한다.대웅전,명부전,천불전으로 가는 길가에는 정림사탑을 그대로 본뜬 석탑을 모셔 놓아 어딘지 어색하다.오히려 대웅전 앞에 있는 돌사자가 앙증하면서도 재미있다.그런 가운데에도 대웅전 안의 후불탱화만은 건륭 6년이라는 화기(畵記)가 적혀 있어 조성년대가 영조 17년(1741)임을 알 수 있는데 임란 이후 대대적인 불교중흥기였던 당대 불화를 보여 주는 좋은 보기이다.그러나 보수를 한다고 덧칠을 해놓아 그 또한 원상을 볼 수는 없어 아쉽다.천불전 안에 있는 삼천불 탱화만큼은 옛맛을 간직하고 있다.
천불전 앞에는 자그마한 석불이 하나 놓였는데 민불이라 할 만큼 푸근한 얼굴이어서 친근감이 간다.


그리 믿을 만하지는 못하지만 신라 진덕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도 하며 그때에 당나라에서 가져왔다는 석가모니의 진신치아를 절에서는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그러나 일반에는 공개하지 않으니 그 은덕을 누구에게 입히려는지 궁금하다.고려 말기의 것으로 여겨지는 금자로 쓴 묘법연화경이 있어 보물 제390호로 지정되었는데 지금은 동국대박물관에 가 있다.


절집의 조용함과는 달리 광덕사 입구에는 1987년에 세웠다는 키 큰'호두 전래 사적비'가 시끄럽게 우뚝 서 있어 절대로 눈을 놓아 주지 않는다.
그리고 둘러보면 둘레가 호두나무 천지임을 깨달을 수 있다.


대보름이면 부럼으로 한 해의 액을 쫓아 주는 데 단단히 한몫을 하는 호두는 고려 말에야 우리 나라에 전래되었고,처음 전래되어 심은 곳이 바로 이 광덕면이다.원나라의 부마국이어서 문물교류가 빈번했던 고려 충렬왕 때 류청신(柳淸臣.?~1329)이란 사람이 충렬왕 16년(1290)에 호두의 묘목과 종자를 가져와서 묘목은 광덕사에 심고 씨는 광덕면 매당리의 자기 집에 심어 퍼뜨린 것이다.


보화루 앞에 꽤 둥치가 굵은 호두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처음 심었던 묘목이 자란 것인지는 알 길이 없어도 적어도 몇 백 년은 쉬이 되어 보인다.


호두나무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몰라도 광덕산에는 모기가 없다는 것이 이곳 사람들의 자랑이다.그런데 그 까닭이 고려 때 거란군을 물리쳐 유명한 강감찬 장군 때문이라는 전설이 있다.강감찬 장군이 군사를 훈련시키느라고 야영을 하는데 모기가 너무 극성을 부려 병사들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생했다.보다 못한 장군이 "모기야 물러가라"고 호령을 하자 모기들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