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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떠나다
천안,세 번째. 호두과자도 보기싫다 본문
천흥사터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잡아 천흥저수지를 끼고 돌아가다 어느만큼에서 오른쪽 산길로 가면
만일사(晩日寺)에 이른다
만일사는
고려 태조 4년에 창건되었다 하며 천흥사의 말사였으나 지금은 천흥사터의 천성사를 거느리고 있다
만일사는 구비구비 휘어져 끝도없이 가파르게 이어진 경사진 좁은 길을 따라 한 참이나 들어와야 했다
산문임을 알리는 일주문이나 천왕문도 없는
경사진 돌계단 위 담장 입구에 세운 만일사라는 표지석으로 이곳이 만일사임을 알려준다
만일사터라고 알고 왔었다
그저 오층석탑 하나 자리를 지키고 있을 절터인 줄 알았는데
조촐한 전각이 영산전이란 편액을 달고 있는 자그마한 절집이었다
영산전 오른쪽으로 내가 만나러 온 오층석탑이 있다
언뜻 보아도 고려탑의 매무시를 알 수 있다
만일사 오층석탑(天安晩日寺五層石塔)
얕게 새긴 안상과 연꽃무늬가 아름다운 탑이다
기단이나 지붕돌의 조각양식이나, 전체적인 구성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세운 탑으로 추측된다.
영산전 앞이 본래 있던 자리이나 전각을 새로 보수하면서 법당 오른쪽 낮은 언덕으로 옮겨 졌다
오층석탑 옆에는 탑의 부재로 쓰였음직한 것들이 쌓여 있었다
세월에 쓸려 깨지고 닳았지만 탑의 몸돌이나 지붕돌의 모양새가 아련하게 남아 있다
만일사 마애불(晩日寺磨崖佛)
법당 뒤 자연암벽에 돋을새김한 마애여래좌상이다.
새기다 만 불상인데다 마멸까지 심해 그 형체를 알아보기는 힘들다
마애불이 있는 곳에선 만일사 절마당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탑이 있고 사람들이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만일사 관음전에는 천성사명금동보살입상(天安聖居山千聖寺銘金銅菩薩立像)이 모셔져 있다
천안성거산천성사명금동보살입상(天安聖居山千聖寺銘金銅菩薩立像)은
화려한 관(冠)을 쓰고 있으며 관 머리에는 아미타상이 있다.
불상의 후면 아래쪽에 "통화(統和) 20년 천흥사(天興寺)"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제작 연대는 1002년(고려 목종 5) 경으로 추정되는데
일제강점기 때
사금을 채취하던 사람들이 땅 속에 묻혀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을 일본인들이 사들여 보관하였다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공출되었던 것을 주지 스님이 거두어 지금의 만일사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작고 아담한 절집 만일사에 들어섰을 때
주지스님과 보살님들은 종무소로 쓰이는 듯한 건물에서 무언가 열심히 의논을 하고 계셨다
아마도 불구(佛具)에 관한 것이지 싶었다
숨차서 헐떡거리는 나에게 스님은
"보살님께선 무슨 좋은 일이 있어 그리도 표정이 환하십니까~" 하고 먼저 말을 건네셨다
스님의 표정이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맞이 하는 것 처럼 다정했다
보살님 한 분은 따끈한 녹차를 갖다주시기도 했고...
이곳이 만일사터라고 알고 왔는데 절집이 있어 조금 놀랬다고 말했더니
"아~ 예전의 만일사와 똑 같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만일사 자리에 예전 그대로 지은 절이니까요"
차분하지만 따뜻한 분홍빛을 띤 절집의 오층탑처럼
살갑고 온기느껴지는 절집이었다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가슴에 새겨질 풍경이 많은 절집 만일사
만일사 담장에 내려앉은 깊은 가을빛
만일사 주차장 한 켠엔 쓰임새를 알 수 없는 커다란 둥근 통에 그려진 동자승들
오동통한 빨간 볼의 동자승들 표정이 너무 재미있다
웃음문 내 볼도 무거워진다
만일사를 뒤로하고 천안에서의 마지막 답사처로 향하려는데
문득 자동차 앞 유리에 붙어 있는 것이 있다
처음엔 무엇일까 궁금했었지만 호두라는 것을 알았다
어디에서부터 따라온 것일까
성불사인가,광덕사인가...
만일사를 뒤로하고 다시 저 끝도없이 이어진 굽은 길,경사진 길을 내려가야 한다
집으로가는 길
천안 답사의 마지막으로 정한 곳
봉선홍경사터 비갈
이렇게 굳게 잠겨 있으니 정면에서 그 모습을 담기란 불가능하리라
봉선 홍경사터 비갈(奉先 弘慶寺事址 碑碣)은
당대의 대학자 최충(崔沖,984~1068)이 짓고 고려조 해서체의 제일인자인 백현례가 쓴 비문에 새겨 있기를
봉선 홍경사는 고려 초 8대 현종(992~1031) 때에 세운 대찰이다
한데 수도인 개경 근방도 아니고,선종 사찰로서의 심산오지도 아닌,
역원이나 있어야 할 길목에 절집이 있는 것이 이상스럽다
비신에 적혀 있는 바, 그 내력은 이러하다
당시 성환일대는 삼남에서 한양이나 개경에 가려면 반드시 지나가게 되는 길목이었다
그런데 갈대가 무성하여 도적이 들끓었으니 행인들이 이곳을 지나기를 심히 두려워하였다
현종의 아버지는 본래 태조 왕건의 여덟째 아들로 뒤에 안종으로 추대된 사람인데
평소에 불법을 숭앙하고 법화경을 받들며 절을 이루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에 현종이 왕위에 올라 생부의 유지를 받들어 이곳에 절을 지을 뜻으로
현종 7년에 착공하여 5년 만인 12년에 200여칸의 큰 절을 완공하였다
절 이름을 봉선 홍경사라고 하였는데 '봉선'이란 '선친의 유지를 받든다'라는 뜻이다
아울러 절 서쪽에 80칸 짜리 광련통화원(廣緣通化院)이란 큰 객관을 지어 행인들이 두루 편리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봉선 홍경사는 고려 제8대 임금인 현종 12년(1021)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고
천년이 가까운 오늘까지 그 자리를 의연히 지키고 있는 사적비도
그 5년 뒤인 1026년에 세운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비가 특이한 것은 먼저 '비갈'이라는 이름에서이다
'비'란 돌이나 나무 따위에 글을 새겨 역사적 사실을 남기는 것을 통틀어 말한다
그런데 비신이 네모지지 않고 끝이 둥근 것을 '갈'이라 하여 형식적으로 구분하였으나
후대에는 구분 없이 붙였다
이 비는 끝이 둥글지 않은 것으로 보아 '갈'이라는 말이 굳이 붙을 까닭이 없는데도 붙어 있다
봉선 홍경사터비갈은
비신을 받친 거북의 머리가 오른쪽으로 90도 돌아가 있는 점이 특이하다
머리모양도 물고기 같은 지느러미를 달아 용머리 모양으로 한껏 사나운 표정을 짓고 있다
다른 곳에서 보아왔던 거북들과는 달리 한눈에도 매우 활기차 보이며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거북 등 위에 한편으로는 거북을 덮고 한편으로는 비신을 받친 우아한 연꽃이 조각되어 있고
비신의 옆면에도 섬세한 당초문이 조각되어 용두의 우악스러움을 보완한다(이상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비갈이 있는 전각 주변에는 당시 탑이었을 석재들이 깨어져 흩어져 있거나
또 이렇게 층층이 얹혀져 있어 당시 이곳에 절이 있었음을 어림케 한다
"200여 칸의 당우에 여러 공덕상을 그리고 봉선 홍경사라는 사액을 받았다
마치 도솔천과 같이 신비롭고,종과 탑이 있었다
장엄하기가 이를 데 없어 등이 1000개나 이어져 켜져 있었다" 고 고려 때의 학자 이규보가
그의 저서 『동문선』에서 이 봉선 홍경사가 설립될 무렵에 관해 기록한 것을 보면
이 비갈이 있는 곳 주변전체가 홍경사의 사역(寺域)이었을 것이다
늦가을의 한 나절이 매우 짧게 느껴졌던 천안으로의 답사
오후 다섯시가 조금 넘은 시간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천안의 답사기는 그야말로 대충썼다
집에 돌아와 하룻밤을 보내고서야 지갑이,USB메모리와 SD카드를 넣어 둔 주머니가 없어진 것을 알았다
답사처에 닿으면 난 자동차에서 사진기만 들고 내린다
사진기가 무겁기도 하려니와 다른 가방을 들거나 메고 다니기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어서 휴대전화만 주머니에 넣고
다른 소지품들은 자동차에 두지만 그래도 가방에서 지갑은 꺼내서 자동차 조수석 앞 서랍에 넣어두었는데
서랍에 넣어 둔 지갑과 가방에 넣어 둔 주머니가 없어졌다
주머니에는 USB메모리 세 개와 SD카드.휴대전화 충전에 필요한 것들이 들어 있으며
더우기 USB메모리에는 아주 중요한 사진이 저장되어 있는데.
지갑도
작은 딸내미가 올해 설명절에 사준 명품이며 그 속엔 운전면허증과 각종 카드와 현금과 자동차 보조키가 들어 있는데...
삼용동석탑을 보러가서 주차장에서 잠깐,삼태리마애불을 보러가서 절집 주차장에 한참을 세워두었고,
광덕사 주차장에서 주차요금을 내고 한참 동안,성불사 주차장에 자동차를 세워두고 또 한참을
천흥사터 당간지주를 살피며 동네입구에 잠깐 차를 세워두었었고
천흥사터 오층석탑을 보러가서는 자동차를 탑 주변에 세웠으니 그건 아닌 것 같고
만일사에서는 절 마당에서 자동차가 충분히 내려다보였으니 아닌것 같고
봉선 홍경사터비갈을 살피는데는 자동차 주변에서도 충분했었다
그렇다면 삼태리마애불을 보러 갔을 때나 광덕사 주차장,성불사 주차장에서 없어진 것이 맞다
평소에도 우산하나 잃어버린 적이 없으며 6년동안 답사를 다녔어도 작은 물병하나 잃어버린 적이 없었던 내가
낭패감 때문에 며칠은 전전긍긍했었다
지갑 속에 들어 있었던 현금은 생각지도 않았지만 지갑을 새로 장만해야 했고 지갑속에 여분으로 갖고 다녔던 자동차 열쇠도 잃었기에
자동차도 키 박스를 통채로 바꾸어야 했던 금전적인 손실은 그만두고라도 면허증과 각종 카드를 새로 발급받아야 하는 그 번잡함
또 정말 중요한 사진이 저장된 USB메모리는 어떡하고...
한 나절의 답사에 무려 그 비용이 70만원이 넘었던 대단한 고장 천안...
이제 호두과자만 봐도 멀미가 날 것 같아
생각하기도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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