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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향산리삼층석탑(丹陽香山里三層石塔).충북 단양 본문

☆~ 풍경소리/충 북

단양 향산리삼층석탑(丹陽香山里三層石塔).충북 단양

푸른새벽* 2008. 11. 4. 09:41

 

 

 

 

 

 

 

 

 

 

 

 

 

 

 

 

 

 

 

 

단양 향산리삼층석탑(丹陽香山里三層石塔)


영춘에서 단양읍 쪽으로 가노라면 편안하고 느긋한 풍경이 이어진다
오른쪽으로는 남한강 줄기가 따라붙고 멀리로는 푸른 소백산 줄기가 이어진다
강 건너 산기슭에는 군데군데 너덜이 보이고
먹물이 죽죽 흘러내린 듯 짙고 옅은 회색이 보기 좋은 바위들에 따스한 황토색이 비끼기도 한다
그 아래로는 초록색 강물은 여울을 이루며 번져 흐른다


그렇게 나긋나긋 흐르는 남한강가 가곡면 향산리
강을 향해 나지막히 퍼져내린 골 안에서 통일신라시대 석탑 한 기를 만난다
탑 주변의 밭에서 기왓장과 자기조각이 많이 나왔다지만 절이 있었을 터전에는 집들이 들어서 있고
탑 주변은 깨끗이 정리되어 옛 절의 자취는 알아볼 수 없다
신라 눌지왕(417~458) 때 묵호자가 이곳에 절을 지으라는 꿈을 꾼 후 향산사를 세웠고
그가 입적한 후 제자들이 부도를 세워 사리를 모셨다는 말이 전해진다
그러나 기록이나 유물의 뒷받침이 없어 전설에 그친다


탑은 두 단으로 이루어진 기단 위에 삼층 탑신부가 올려진 전형적인 삼층석탑이다
1935년 무렵 도굴꾼이 사리장치 등 보물을 훔치려고 탑을 쓰러뜨린 적이 있는데
5년 후에 마을사람들이 다시 세웠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2층과 3층 지붕돌 모서리가 조금씩 깨져 있지만 나머지는 대체로 온전한 모습이다


여러 개의 장대석으로 지반을 마련하고 장대석 5매로 지대석을 짠 후 기단을 놓았다
하층기단은 면석과 갑석을 각각 4매의 판석으로 조립했고
상층기단은 면석을 각 면 2매씩 모두 8매로,갑석은 2매의 판석으로 짰다
상하 기단 면석에는 면마다 우주와 탱주 1개씩을 모각하였고
갑석 윗면에는 둥근 굄과 각진 굄을 겹쳐 새겨 윗부분을 받게 하였다
상층기단의 갑석 아랫면에는 부연이 표현되어 있다


탑신부의 몸돌과 지붕돌은 모두 한 개씩의 돌로 이루어졌다
몸돌에도 모서리마다 기둥이 모각되었으며 1층 몸돌 남쪽 면에는 문틀과 두 개의 문짝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의 처마는 수평이며 낙수면 모서리가 상쾌하게 들렸다
지붕돌 층급받침은 모두 4단이고 지붕돌 윗면에는 각진 굄 두 단씩을 두어 위층 몸돌을 받게 하였다
상륜부에는 각각 한 돌로 된 노반,복발,앙화,그리고 불꽃 모양 보주가 얹혀 있다


이 탑은 1층 몸돌에 비해 2층 몸돌의 높이가 3분의 1정도로 줄어들어 안정되고 날씬한 느낌을 주며
지붕돌 네 귀퉁이의 반전도 경쾌하다
형태와 비례,석재의 맞춤이 정제되어 단정하고 세련된 9세기 후반 통일신라 말의 석탑이다
또 신라의 석탑으로서 죽령 너머 북쪽에 있다는 점이 두드러지며
상층기단의 면석이 모두 8매로 이루어진 점과 1층 몸돌 한 면에 문틀과 문짝이 새겨진 점이 눈에 띈다
탑의 높이는 4.05m 이고 보물 제405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단양향산리삼층석탑(丹陽香山里三層石塔)


보물 제405호 
충북 단양군 가곡면 향산리 471-1 


단양읍에서 동쪽으로 16㎞ 떨어진 산골짜기의 밭 한가운데에 서 있는 탑이다. 주변에 자기조각들과 기와가 널려 있어서 이 곳이 절터였음을 알려주고 있으나, 절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1935년경 탑 속의 사리를 도둑맞으면서 허물어졌던 탑을 마을 주민들이 다시 세웠다고 한다.


이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형태이다. 기단은 여러 장의 길고 큰 돌로 바닥돌을 놓고 그 위에 쌓은 모습이며, 각 모서리와 각 면의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개의 돌로 되어 있다. 몸돌에도 모서리 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으며, 특히 1층 몸돌에만 문짝 모양의 조각이 있어 눈길을 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수가 층마다 4단이고, 지붕돌 위에는 2단의 괴임돌을 두었다. 추녀 밑은 반듯하고, 지붕돌 윗면의 경사 역시 온화하여 네 귀퉁이의 선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으로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과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 앙화(仰花:솟은 연꽃모양의 장식),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남아있다.


석탑의 형태가 우수하고 비례도 충실하며, 조각수법에서도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양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단정한 탑의 조형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작품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