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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흥궁(龍興宮).인천광역시 강화군 본문

☆~ 바람소리/궁궐(宮闕)

용흥궁(龍興宮).인천광역시 강화군

푸른새벽* 2008. 12. 13. 16:50

 

 

 

 

 

 

 

 

 

 

 

 

 

 

 

 

 

 

 

 

 

 


용흥궁(龍興宮)


강화읍 관청리 441번지는 강화 도령 철종(1831~1863)이 왕위에 오르기 전 19세까지 살던 집이다
원래는 보통 민가였으나 철종이 왕위에 오르자 강화유수 정기세(鄭基世)가 철종 4년(1853)에 건물을 새로 짓고 용흥궁이라 했으며
고종 때(1903) 청안군 이재순이 중수했다


현재 건물은 내전과 외전.별전이 각각 1동씩 남아 있고,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潛邸)이라는 잠저구기비각(暫邸舊基碑閣)이 서 있다


넓지 않은 고샅 안에 대문을 세우고 행랑채를 두어 이중의 건물로 되어 있는데
창덕궁의 연경당과 낙선재처럼 살림집의 유형을 딴 소박하고 질박한 기풍이 있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홑처마에 팔작지붕이고 주심포 양식을 취했다


철종의 운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마다 봄이 되면 흰목련과 붉은 작약이 흐드러지게 피어 지붕을 덮을 지경이고 가을이면 토종밤이 여물어 떨어진다
용흥궁의 옛 주인 철종은 조선의 제25대 왕이다
왕은 왕이되 누대(累代)의 슬픈 운명이 강물처럼 고여 와 그에게서 멈춘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19세가 되도록 땅만 쳐다보고 살아 온 그에게 임금이라는 굴레가 씌워졌을까
유배지로 유명한 강화에서 임금이 탄생은 하였으되 그의 운명은 온전치 못하였다


어릴 적 이름이 원범(元範)인 철종은 영조의 고손자이며 사도세자의 증손자이다
정조대왕의 이복동생 은언군(恩彦君)이 할아버지,전계군(全溪君)이 아버지다
중조할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이고
할아버지 은언군은 아들 상계군(常溪君)이 반역을 꾀했다 해서 강화에 유배되었다가
1801년 신유박해 때 부인 송씨와 며느리 신씨가 천주교인이라 하여 죽음을 당하니 이때 은언군도 목숨을 빼앗긴다
아버지와 형 원경(元慶)은 이원덕과 민진용이 원경을 왕으로 옹립하려는 모반을 꾸미다가 발각되어 사사되었다
이때 원범의 나이 14세였다


원범이 가족과 함께 강화에 유배되어 온 것은 11세 때
시련이 많은 집 아이는 일찍 철드는 법이다
왕족이란 이유 때문에 부모와 형제,친척들이 당하는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였던 원범.
역사는 철종을 단지 농사만 짓던 아이라고 무식하다 치부하지만
철종은 혹여 왕이 될 제목은 못 되었을망정 무지렁이는 아니었을 것이다
제 신분을 노출하고는 목숨조차 옳게 부지하기 어려웠을 터이니 왕가의 신분은 땅속 깊숙이 묻어 두고 자랐을 터이다
푸성귀로 연명하며 땔나무를 하는 초동생활이 이어졌고,지겟작대기를 두드리며 자신의 앞날을 땅에 맡겨왔던 것이다


철종의 나이 19세 때(1849),헌종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6촌 안에 드는 왕족이 하나도 없었다
이에 헌종의 7촌 아저씨뻘 되는 강화도의 나이 어린 농사꾼 철종이 돌연 왕위를 물려받게 된다
안동김씨 세도정치를 이뤄 낸 순원왕후의 순발력 있는 조처였다
철종이 즉위하자 대왕대비 순원왕후가 수렴청정을 한다
이미 순원왕후가 계획했던 바였다
순원왕후는 서둘러 친정 조카뻘인 김문근의 딸을 철종의 비(妃)로 책봉하니
이때부터 철종은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희생물이 되어 갔다


세도정치의 폐단은 전국에서 극심해 급기야 삼정(田政.軍政.還穀)이 문란해졌다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고 원성 소리는 드높았다
1862년 봄 진주민란을 시작으로 삼남지방에서 민란이 일어났다
철종은 삼정이정청을 임시기구로 설치하여 삼정의 악습을 제거하는 정책을 수립하는 등
민란 수습에 전력을 기울이지만 민폐의 도는 이미 극에 달해 민란은 동학운동으로 확산된다


수습할 길이 없어 고뇌하던 철종은
가장 밑바닥 인생에서 왕위에 오른지 14년 6개월 만인 33세의 젊은 나이로 한 많은 세상을 뜨고 만다
진작에 버리고 싶었던 왕위는 아니었을까
철종의 능은 경기도 고양시에 있으며 능호는 예릉(睿陵)이다
철종은 원래 오막살이 초가집에서 살았으나 임금이 나왔다해서 용흥궁(龍興宮)이라 부르고 크게 다시 지었다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용흥궁(龍興宮)


시도유형문화재 제20호(강화군) 
인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441 


조선 제25대 왕인 철종(재위 1849∼1863)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으로 철종이 왕위에 오르자 강화유수 정기세가 건물을 새로 짓고 용흥궁이라 이름을 붙였다.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고, 지붕을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용흥궁은 청덕궁의 연경당, 낙선재와 같이 살림집의 유형을 따라 지어져 소박하고 순수한 느낌이 든다. 경내에는 철종이 살았던 옛 집임을 표시하는 비석과 비각이 있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