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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낙산사(洛山寺).강원 양양 본문

☆~ 절집.절터/강 원

양양 낙산사(洛山寺).강원 양양

푸른새벽* 2009. 5. 8. 22:02

 

 

 

 

 

 

 

 

 

 

 

 

 

 

 

 

 

 

 

 

 

 

 

 

 

 

 

 

 

 

 

 

 

 

 

 

 

 

 

 

 

 

 

 

 

 

 

 

 

 

 

 

 

 

 

 

 

 

 

 

 

 

 

 

 

 

 

 

 

 

 

 

 

 

 

 

 

 

 

 

 

 

 

 

 

 

 

 

 

 

 

 

 

 

 

 

 

 

 

 

 

 

 

 

 

 

 

 

 

 

 

 

 

 

 

 

 

 

 

 

 

 

 

 

 

 

 

 

 

 

 

 

 

 

 

 

 

 

 

 

 

 

 

 

 

 

 

 

 

 

 

 

 

 

 

 

 

 

 

 

 

 

 

 

 

 

 

 

 

 

 

 

 

 

 

 

 

 

 

양양 오봉산  낙산사(洛山寺)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전진리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전진리 55번지 낙산에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의 말사이다.

 

신라 문무왕 11년(671) 의상(義湘)이 창건하여 낙산사라고 했다. 낙산은 범어 보타락가(補陀洛伽; Potalaka)의 준말로서 관세음보살이 항상 머무르는 곳을 말한다.


헌안왕 2년(859) 사굴산파의 개조 통효 범일(通曉 梵日)이 이 곳에서 정취보살(正趣菩薩)을 친견한 뒤 낙산 위에 건물을 지어 불상을 봉안했다.
고려 초기에 산불로 소실되었으나, 관음보살과 정취보살을 모신 불전만은 화재를 면했다고 한다. 태조(재위 918-943)는 고려를 세운 직후,
봄 가을로 이 절에 사자를 보내어 재를 올렸을 뿐 아니라, 이것을 갑령(甲令)으로 삼았다.


그리고 속인들은 이 낙산의 굴 앞에서 예배하면 푸른 새(靑鳥)가 나타난다고 믿었는데, 명종 15년(1185) 병마사 유자량(庾資諒)이 예배하자 푸른 새가 날아와 갓 위에 꽃을 떨어뜨린 일이 있었다고 한다. 고종 때 몽고의 침략으로 관음과 정취 두 성상(聖像)을 모신 건물을 비롯하여 모두 불에 탔다. 여의주와 수정염주는 이 절의 노비 걸승(乞升)이 땅에 묻고 도망쳤다가 난이 평정된 뒤 명주 감창사(監倉使) 이녹수(李祿綏)에게 바쳤는데, 다시 고종 45년(1258)) 기림사(祇林寺) 주지 각유(覺猷)가 고종에게 청하여 어부(御府)에 모시도록 했다.
 

그러나 관음상은 이 때 화를 당하여 복장(腹藏) 속의 보물이 몽고병에게 약탈 당했다. 이규보(李奎報) 등이 다시 심원경(心圓鏡) 2개 등을 관음상의 복중에 넣고 겉모습도 복구했다. 조선 세조 14년(1468) 세조는 학열(學悅)을 시켜 중창하게 했다. 성종 2년(1471) 선학(仙鶴)이 용선전(龍船殿)과 영산전 등을 보수하고 단청했다. 4년 뒤 불 탔으나 다시 선학이 복구했으며,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관음전과 관음상, 정취전, 금불상이 모두 소실되었다. 인조 9년(1631) 종밀(宗密)이,인조 21년(1643) 도원(道源)이 중건했으며, 1905년 경은(敬隱)이 선당(禪堂)과 후각(後閣) 등을 복구했다. 그러나 1950년 6.25전쟁 때 전소된 것을 1953년 4월 당시 제1군단장 이형근(李亨根)이 원통보전과 범종각 등을 복구했다.
1976년 원철(圓徹)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부다피아자료*

 

2005년 4월 낙산사는 다시 화마에 휩싸였다

다음은 2005년 낙산사화재당시 현장을 보도한 연합뉴스의 기사를 옮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