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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낙산사칠층석탑(洛山寺七層石塔).강원 양양 본문

☆~ 풍경소리/강 원

양양 낙산사칠층석탑(洛山寺七層石塔).강원 양양

푸른새벽* 2009. 5. 10. 19:33

 

 

 

 

 

 

 

 

 

 

 

 

 

 

 

 

 

 

낙산사칠층석탑(洛山寺七層石塔)


낙산사의 본당인 원통보전 앞에는 높이 6.2m에 7층을 이루며,
귀퉁이가 깨어져 나갔지만 비교적 각 부재가 온전히 남아 있는 아담한 모습의 석탑이 있다
의상이 창건한 당시에 3층이었던 것을 세조 13년(1467)에 7층으로 다시 만들었으며
몽고 침입시에 걸승乞僧이 비장하게 지켜냈던 수정 염주와 여의주를 이때 탑속에 모셨다고 한다
그 뒤 한국전쟁중에 손상되었다가 1953년 낙산사가 재건될 때 함께 재건되었다


이 탑에서 주목되는 점은 하대석 위쪽에 한면에 꽃잎 6개씩 24개 잎을 가진 복련을 장식하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수법은 강릉 신복사터 삼층석탑이나 월정사의 팔각구층석탑에서나 볼 수 있는 양식이다


탑신부에서 보이는 특징은
별다른 체감을 보이지 않는 각층 몸돌 아래에 몸돌보다 넓은 괴임돌을 하나씩 끼워넣었다는 것이다
괴임돌과 옥신이 거의 같은 두께인 점도 그렇고 또 우주를 모각하지 않은 점도 눈여겨 보게 된다
지붕돌은 경사가 별로 없이 편편한 편인데
아래 층급받침이 각층 3단을 보이고 있는 것도,약화된 양식적 특징을 보이는 것도
통일신라나 고려 때에 볼 수 없던 조선 시대 다층석탑 특유의 양식적인 특징이다
추녀 역시 매우 얇게 조성되었는데,추녀 밑에도 반전이 있고 또 지붕돌의 합각머리에도 경쾌한 반전이 있다


상륜부에 몸돌받침과 같은 형태의 돌과 화강암으로 된 노반을 올려 놓았다
노반 위에 찰주를 중심으로 청동제의 복발과 중첩된 보륜,보주 등을 조성하였는데
이 수법 역시 고려 이후부터 나타나는 청동제 상륜으로 원나라의 잔재를 느끼게 한다
보물 제499호로 지정돼 있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이 길잡이'중에서*

 

양양 낙산사 칠층석탑(襄陽 洛山寺 七層石塔)


보물 제499호 
강원 양양군 강현면 전진리 55 낙산사 


이 석탑은 창건 당시 3층이던 것을 세조 13년(1467)에 이르러 현재의 7층으로 조성한 탑이다. 이때 수정으로 만든 염주(念珠)와 여의주를 탑 속에 봉안하였다 한다.


조선은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음으로써 천여년간 국교로 자리잡고 있었던 불교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와 함께 불교와 관련된 조형 미술의 분야도 위축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나마 조선 전기에는 불교미술 분야에서 조성 양식이나 수법이 고려적인 작품이 다소 조성되었다. 낙산사7층석탑도 고려시대의 여운이 남아 있는 석탑 중 하나이다.


탑의 받침이 되는 기단부(基壇部)는 정사각형의 바닥돌 위로 밑돌을 놓았는데 윗면에 24잎의 연꽃무늬를 새겼다. 탑신부(塔身部)는 지붕돌과 몸돌을 1층으로 하여 7층을 이루고 있다. 각 층의 몸돌 아래로는 몸돌보다 넓고 두꺼운 괴임이 1단씩 있어 특징적이다. 지붕돌은 경사면이 평탄하며 네 귀퉁이의 들림이 잘 어우러져 전체적인 모양이 경쾌하다.


탑의 머리장식부에는 찰주를 중심으로 원나라의 라마탑(喇嘛塔)을 닮은 여러 장식들이 원형대로 보존되고 있어 또 다른 특징이 되고 있다.


고려시대의 양식을 이어 받고 있으나 전체의 조형이 더욱 간략화 되었다. 강릉 신복사지삼층석탑·월정사팔각구층석탑 등의 탑신부와 비교해 볼 수 있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