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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팔공산 송림사(八公山 松林寺).경북 칠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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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팔공산 송림사(八公山 松林寺).경북 칠곡

푸른새벽* 2010. 3. 4. 11:06

 

 





 





 





 





 





 





 

팔공산 송림사(八公山 松林寺)

 
경북 칠곡군 동명면 구덕리 92

 
송림사(松林寺)는 칠곡군 동명면 구덕리 91-6번지 가산(架山) 남쪽 기슭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이다.


송림사의 연혁이 고문헌에 기록된 것은 없으나 경내에 세워진 사적비를 통해서 대체적인 역사를 알 수 있다. 이 사적비는 비록 근년인 1980년에 세운 것이지만 예로부터 사찰에 구전으로 내려오는 창건과 연혁을 정리한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에 따르면 눌지왕 때 묵호자(墨胡子)가 처음 불법을 전하면서 송림사라 했으며, 소지왕 때 본격적인 가람이 성립되었다고 한다.

 

544년(진흥왕 5)에 중국에 유학갔던 각덕(覺德) 조사가 양(梁)의 사신과 함께 귀국할 때 불사리를 모셔와 경주 흥륜사(興輪寺)에 봉안한 바 있었다.

곧이어 진(陳)의 사신 유사(劉使)가 역시 중국 유학승인 명관(明觀)과 함께 신라에 오면서 불경 2,700권과 불사리를 이운해 왔는데, 이 때 송림사에도 그 가운데 일부를 오층전탑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 1959년 송림사 오층전탑을 해체 복월할 때 사리장엄구에서 불사리 4과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고려에서는 1092년(선종 9)에 대각국사 의천(義天, 1055~1101)이 중창하였는데, 이로써 교종과 선종이 함께 빛나게 되었다. 1235년(고종 22)에 몽고군의 침입으로 전탑만 남고 전 당우가 소실되었으나, 곧이어 중창되었다.


한편 이 무렵 보감(寶鑑, 1251~1322) 국사가 주지로 부임하여 주석한 지 얼마 안되어 입적하였는데, 이것으로 보아서 당시 송림사가 고려에서 비중 있는 사찰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와서 1597년(선조 30)의 정유재란 때 왜군이 절에 침입하여 방화하였다. 이 때 전탑의 금동 상륜부를 훔치고자 밧줄을 매고 끌어내리려 했으나 성공하지는 못했다. 실제로 1959년에 송림사 전탑을 해체 복월할 때까지만 해도 상륜부가 구부러져 있었는데, 바로 왜군의 만행 때문이라고 한다.


1686년(숙종 12)에는 기성(箕城) 대사가 크게 중창하였는데, 숙종은 「대웅전」 현판을 직접 써서 절에 내리기도 하였다. 1858년(철종 9)에는 영추(永樞) 스님이 중창하는 등 크고 작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른다.

*대한불교진흥원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