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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고산서원(長城高山書院).전남 장성 본문
장성고산서원(高山書院)
호남 지방에서 선비의 고장을 말할 때면 흔히 '광라장창(光羅長昌)'이라고 하듯이 장성(長城)은 광주.나주.창평과 더불어 선비가 많고 학문이 성한 곳이었고,경상도에서 안동 문장을 꼽듯이 전라도에서는 장성 문장을 으뜸으로 쳤다.장성이 이처럼 예로부터 선비의 고장으로 일컬어진 데에는 호남의 유종(儒宗)으로 추앙받는 하서 김인후의 필암서원과 조선 성리학의 6대가로 꼽히는 노사(盧沙) 기정진(寄正鎭 . 1798~1879)을 주향한 고산서원이 있기 때문이다.
'문불여장성(文不如長城)' 흥선대원군은 조선 팔도를 평하면서 호남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는데,바로 노사 기정진을 두고 한 말이었다.또 청나라 사신과 조정 대신들이 기정진의 학문이 깊음에 놀라서 '長安萬目不如長城一目' 이라고 감탄했다는 다음과 같은 일화도 전한다.
어느 해였다고 한다.청나라 사신들이 조선의 학문을 시험해보기 위하여 '용은 짧고 호랑이는 길다(龍短虎長)'는 글귀를 내놓고 그에 합당한 대구를 맞추어 보라고 문제를 내놓았다.사신을 접대하던 접반사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용은 뱀처럼 몸뚱이가 길고,호랑이란 짐승은 긴 몸뚱이를 가질 수가 없는데,이런 이치에도 맞지 않는 문제를 내고서 대구를 맞추어보라니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그러나 상대가 상대인지라 접반사들은 그 문제를 들고 조정으로 달려갔다.그러나 조정의 내로라하는 학식을 갖춘 대신들도 그 뜻을 알지 못하여 답을 내놓지 못하였다.모든 대신들이 머리를 맞대고 숙의를 거듭했으나 문제는 풀리지 않았다.한 대신이 "이 문제를 전라도 장성에 사는 노사 기정진 선생에게 물어보는 게 어떻겠소이까?" 하고 제안하였다.
조정에서는 말 잘 타는 벼슬아치 한 사람을 급히 장성에 살고 있는 노사에게 내려보냈다.노사는 심부를 온 벼슬아치가 내민 '龍短虎長' 이란 글귀를 보자마자 붓을 들어 '畵圓書方(그림을 그리면 둥글고 글씨를 쓰면 네모나다)'이라고 대구를 써 주었다.심부름 온 벼슬아치가 그 뜻을 몰라 묻자,그가 설명을 해주었다."용은 짧고 호랑이는 길다는 것은 해(日)를 말하는 것이다.해가 용(辰)방향에 뜨는 겨울에는 그것(해)의 길이가 짧고,호랑이(寅)방향에서 뜨는 여름철에는 그것의 길이가 길지 않느냐?" 노사가 단박에 명쾌하게 해석하여 대구를 써 보내자,이를 읽어본 중국 사신과 조정 대신들이 남긴 말이 " 서울의 수많은 사람들이 장성 고을의 눈 하나 없는 사람만 못하구나!" 였다.노사는 어릴 적 천연두를 앓아 왼쪽 눈을 실명한 장애인이었다.
그 노사 기정진을 주향으로 하고,그 문하의 학자 8명을 배향하고 있는 서원이 전라남도 장성군 진원면 진원리 257번지에 위치한 고산서원이다.외삼문인 산앙문(山仰門)을 들어서면 마주 보이는 건물이 이 서원의 강당인 담대헌(澹對軒)이다.담대헌은 1878년(고종 15) 노사가 토담으로 정사(精舍)를 건립하여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인데,노사는 무등산에 모신 아버지의 산소를 바라볼 수 있어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1927년 문인과 후학들은 노사가 학문을 강론하던 이곳에 그를 추모하고 기념하기 위한 서원을 건립하였다.서원의 명칭인 '高山'은 《시경》소아편(小雅篇)의 '높은 산을 우러러보며 큰길을 간다(高山仰止 景行行止)'는 구절에서 인용한 것인데,이는 노사 기정진의 높은 학문을 비유한 것이었다.고산서원은 전라남도 기념물 제63호로 지정되어 있다.
서원을 구성하는 건물은 강당인 담대헌,동재인 거경재(居敬齋),서재인 집의재(集義齋),외삼문인 산앙문 등이 강학 공간을 이루고 있다.담대헌은 정면이 4칸 인데,중앙의 2칸은 우물마루를 깔았고,좌우의 각 1칸은 온돌방으로 이루어진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며,동.서재는 모두 정면 4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그리고 담대헌 뒤쪽에 담장을 둘러서 별도의 구역을 이룬 곳에 제향 공간인 내삼문과 고산사(高山祠)가 있다.내삼문과 사당은 모두 단청을 했는데,고산사는 정면 3칸의 맞배집으로 전면은 툇간을 이루고 있으며,특히 사당의 벽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사당에는 노사 기정진을 북벽에 주향하였고,서벽에는 석전경인(石田耕人) 이최선(李最善.1825~1883).동오조의곤(曺毅坤.1832~1893).기우만(奇宇萬.1846~1927).정의림(鄭義林.1845~1910)등의 위패를 모셨다.그리고 동벽에는 조성가(趙性家.1824~1904).김녹휴(金錄休.1827~1899).정재규(鄭載圭.1843~1910).김석구(金錫龜.1835~1885) 등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고산서원에 배향된 인물들에 대한 제사는 매년 음력 3월과 9월의 중정일(中丁日)에 지낸다.
강당 서북쪽에는 장서각과 경장각이 있는데,단일 건물인 이곳에는 《노사문집》 목판 980매와 노사가 사용하던 서적,그리고 생활용품과 그가 직접 제작한 팔도 지도.갓.지팡이.장도.안경 등의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또 강당 동쪽에 묘정비가 세워져 있으며,외삼문 밖 동남쪽에는 고직사가 있다.
*이 호일 지음 '조선의 서원'중에서*
장성고산서원(長城高山書院)
시도기념물 제63호(장성군)
전남 장성군 진원면 고산리 257
노사 기정진을 중심으로 이최선·기우만·조의곤·김록휴·조성가·정재규 등의 위패를 모신 서원이다.
기정진(1798∼1879)은 조선 후기 성리학의 대가이다. 순조 31년(1831) 과거에 급제한 후 많은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하고 이곳에서 학문 연구와 후학양성에 힘썼다.
이 서원은 기정진이 조선 고종 15년(1878)에 담대헌이라고 이름짓고 학문을 가르치던 곳이다. 1924년에 후손들이 다시 지었으며, 1927년 ‘고산서원’ 이라고 쓴 현판을 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경내에는 사당인 고산사를 비롯하여 강당, 동재인 거경재, 서재인 집의재, 내삼문, 외삼문과 장판각 등의 건물이 있다. 장판각에는 기정진의 문집과 목판을 보관하고 있다.
*문화재청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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