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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장연사지배례석(長淵寺址 拜禮石).경북 청도 본문

☆~ 풍경소리/경 북

청도장연사지배례석(長淵寺址 拜禮石).경북 청도

푸른새벽* 2010. 10. 18. 16:49

 

 

 

 

 

 

청도장연사지배례석(長淵寺址 拜禮石)


경북 청도군 매전면 장연리 길명마을


장연사지 탑 앞으로 난 길을 에돌아 길명 마을로 들어서자 입가에 절로 웃음이 번졌다.분명 탑 앞에 놓였을 배례석이건만 그것이 세로로 우뚝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비록 모퉁이가 깨지긴 했지만 봉로좌(奉爐座)에 연화문이 새겨진 그것은 마치 마을 입구에 세워 놓은 장승과도 같이 순례자를 향해 활짝 웃고 있었다.


여태껏 여러 절터를 다녀 보았지만,이렇듯 허망하게 사라진 과거를 현재로 되살려 놓은 곳을 보지 못했다.이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인가.그대들이여,'무지하게 배례석을 세워 놓았다'고 탓을 할 양이면 아예 장연사터에 가지 마라.속으로라도 미술사가 어떻고 가람 건축이 어떻고를 들먹이며 그들을 비웃지도 마라.서로 힘을 모아 스산한 절터에 있던 배례석을 옮겨 마을의 얼굴로 삼은 이들이 어찌 아름다운 사람들이 아니겠는가.때마침 노란 은행잎마저 배례석 주위에 떨어져 쌓여 있으니 그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정경인가.아무래도 나는 눈앞에 펼쳐진 이 장면을 폐사지에서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장면들 중 열 손가락 안에 꼽고야 말 터이다.
*이지누 지음 '절터,그 아름다운 만행'중에서*

 

 

청도장연사지배례석(長淵寺址 拜禮石)


지정사항없음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장연리에 있는 배례석.


배례석이란 불교 행사 시 향을 피우거나 음식을 차려 놓고 예를 올릴 때 사용된 석조물이다. 주로 법당 앞, 석등이나 석탑 앞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장연리 배례석은 장연사지(長淵寺址)에 있었던 것으로 전하므로 장연사(長淵寺) 혹은 흥경사(興景寺)로 추정되는 유적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장연사지는 장연리 장수골 계당들목 북쪽에 위치한다. 장연사의 연혁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며, 다만 절터에 남아 있는 유적과 유물들을 통하여 늦어도 통일 신라 말에는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산지(鰲山志)』에는 이 절터에 대하여 ‘재상남면금위촌거(在上南面今爲村居)’라고 기록되어 있다. 절터에는 2기의 석탑이 건립되어 있는데, 서탑은 무너져 있던 것을 1979년 복원하였으며, 동탑은 1984년 해체 보수 시에 사리구가 발견되었다. 사리구는 석탑이 세워진 통일 신라 말에 제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장연리 배례석은 불교 행사 시 향을 피우거나 음식을 차려 놓고 예를 올릴 때 사용된 석조물로 추정되며, 부근에 있던 장연사지와 관련하여 석탑이나 법당 앞에 있던 것으로 여겨진다.


장연리 배례석은 장연리 삼층 석탑에서 서남쪽으로 온장길을 따라 약 500m 떨어진 길명 마을 초입 마을 회관 길옆 은행나무 앞에 비석처럼 세워져 있다. 배례석의 북쪽으로는 동창천이 흐른다. 배례석이 있는 곳의 남쪽에는 장연리 운천정이 있으며, 서북쪽 약 500m에는 장연리 삼층 석탑과 당간 지주, 유물 산포지, 석조물군이 있다.


장연리 배례석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현재 크기가 가로 76㎝, 세로 154㎝, 높이 35㎝이다. 모서리 부분이 파손되었으며, 윗면 중앙에는 연꽃무늬를 새겨 놓았다. 연꽃무늬는 중앙의 자방(子房)이 넓게 구성되어 있으며, 연잎은 8개로 잎이 여러 겹으로 이루어진 복판(複辦)이다. 배례석의 측면에는 안상(眼象)이 조각되어 있다.


장연리 배례석은 부근의 장연사지에서 옮겨진 것으로 길명 마을 초입 마을 회관 길옆 은행나무 앞에 위치하고 있다. 2012년 현재 안내판이나 보호를 위한 난간 등의 시설은 갖추어져 있지 않다.


장연리 배례석은 장연사지에서 옮겨진 것으로 볼 때 장연사지와 관련된 유물로, 석탑 혹은 법당 앞에 두고 불교 행사 시 배례용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디지털청도문화대전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