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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떠나다

무주 나제통문(茂朱羅濟通門).전북 무주 본문

☆~ 풍경소리/전 북

무주 나제통문(茂朱羅濟通門).전북 무주

푸른새벽* 2010. 11. 10. 22:04

 

 

 

 

 

 

무주 나제통문(茂朱羅濟通門)


지정사항 없음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

 

나제통문에 관한 오해 두 가지- 첫째,신라와 백제가 서로 넘나들던 곳이니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오르지는 못할망정 아무리 내려잡아도 20세기 전에 이미 있었으리라는 지레짐작.둘째,마찬가지로 백제와 신라가 영토를 맞대었던 곳이니 당연히 지금은 전라도와 경상도가 이곳을 경계로 하여 나뉘리라는 생각.그런 오해를 부를 만한 사연이야 충분하지만 물론 두 가지 모두 사실이 아니다.

 

나제통문은 높이 5~6m,너비 4~5m,길이 30~40m쯤 되는,바위투성이 벼랑을 인위적으로 뚫어 만든 굴문이다.글자 그대로 신라(羅)와 백제(濟)가 서로 통하는 문이라는 뜻을 지닌 이 문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로는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르는 경계였다.그렇지만 지금은 전라도 땅이 되어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가 정확한 주소이며,경상도 땅으로 접어들려면 여기서 30번 국도를 타고 15km 이상 동진하여 백두대간에 가로놓인 덕산재를 넘어서야 하니,말하자면 전라도 땅의 한참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그렇다고는 해도 백제와 신라,경상도와 전라도를 구분짓던 그 오랜 내력이 하루아침에 연기처럼 사라질 일도 아니어서,지금도 이 굴문 하나를 사이에 둔 두 마을인 동쪽 무풍 방면의 이남(伊南)과 서쪽 무주 방면의 새말(新村)은 같은 소천리에 속해 있으면서도 말이 다르고 풍속이 판이하고 서로 통혼(通婚)도 하지 않는다 하니 그저 신기하달밖에 없는 노릇이다.또 오늘도 여전히 무주군 에서 경상북도 김천시와 경상남도 거창군으로 향하거나,반대로 그쪽에서 무주로 들어설 때 반드시 이 문을 지나지 않으면 안되니,전라도와 경상도의 상징적 경계로서는 모자람이 없는 셈이다.

 

아무튼 이곳이 옛날 신라와 백제의 접경지역이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그래 그런지 이 어름에 떠도는 얘기들은 걸핏하면 백제와 신라를 들먹인다.통문에서 가까운 야산에는 약 300기의 옛 무덤이 흩어져 있는데,신라와 백제 사이에 벌어진 전투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무덤이라는 말이 전해온다.또 파리소(沼)라는 연못은 두 나라가 싸울 때 시체가 산처럼 쌓이고 파리 또한 그만큼 모여들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더 그럴 듯한 이야기도 있다.통문은 삼국의 통일전쟁 무렵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드나들어 '통일문'이라고도 부른다는 거며,부근 무산성(茂山城)터 가까이에 있는 사선암(四仙巖)이란 크고 평평한 바위에는 바둑판이 새겨져 있는데 여기에서 김유신 등 4명의 화랑들이 바둑을 두며 놀았더라는 따위다.모두 확인할 수 없는 야화(野話)요 전설들이긴 하나 아예 제껴두기에는 섭섭한 구석이 없지 않다.이곳을 무대로 한 실제의 역사가 얼마든지 빌미를 제공할 만하기 때문에 그러하다.

 

신라가 가야제국을 병합하여 소백산맥을 경계로 백제와 국경을 맞대게 되면서부터 두 나라는 육십령(六十嶺)을 비롯한 소백산맥의 높고 낮은 고개를 넘나들며 크고 작은 전투를 벌였다.나제통문도 그런 전투지역의 범위 안에 드니 당연히 백제와 신라의 군대가 자주 오고갔을 것은 불문가지다.『삼국사기』에 김유신이 백제의 장군 의직(義直)과 무산성(지금의 무주)에서 싸웠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그러므로 김유신에 관한 전설이나 그밖의 얘기들도 터무니 없이 맹랑한 것만은 아니라고 하겠다.

 

그러면 도대체 나제통문은 언제부터 나제통문이란 말인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잘해야 80,90년 전 쯤부터다.일제강점기에 무주와 김천을 잇는 신작로를 닦을 때 통문을 뚫었다는 것이 이남마을에 살고 있는 노인네들의 한결같은 증언이다.신라사람들과 백제사람들이 서로 오갔다니 아주 내려잡아도 조선시대쯤에 옛일을 기념하여 생겼다면 한결 멋져보이고 '스토리'가 제대로 맞아떨어져 모양새가 나겠지만 사실이 그렇지 않은 걸 어쩌랴.그러나 뭐 그리 낙담할 일은 아니리라.생각 밖으로 연륜이 깊지 않기는 해도 늦은 대로 먼 과거의 사연을 잊지 않고 되새기는 마음들이 갸륵하고 따숩지 않은가 말이다.

 

문은 닫기 위해 있는가, 아니면 열기 위해 만드는가? 둘 다이다.문은 폐쇄와 개방을 동시에 상징한다.닫으면 등돌림이요 열면 손 마주잡음이다.문의 이중성이다.그러나 문의 이중성을 결정하는 것은 사람이다.사람이 닫으면 닫히고 열면 열리는 게 문이다.영호남 어간에 무심히 뚫려 있는 나제통문에서서 문의 의미를 생각해본다.나제통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