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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 용암리석등(任實龍岩里石燈).전북 임실 본문

☆~ 풍경소리/전 북

임실 용암리석등(任實龍岩里石燈).전북 임실

푸른새벽* 2010. 11. 16. 09:46

 

 

 

 

 

 

 

 

 

 

 

 

 

 

 

 

 

임실 용암리석등(任實龍岩里石燈)


보물 제267호 
전북 임실군 신평면 용암리 189


임실에서 17번 국도를 이용해 전주로 향하다가 관촌에서 708번 지방도로 좌회전해 오원강 지류인 시암내를 끼고 얼마간 들어가면 드문드문 늘어선 고목이 마을의 유래 깊음을 알리는 신평면에 닿는다.거기서 다시 왼쪽으로 갈라지는 길로 3Km 가량 가면 마침내 신평면 용암리이다.


이곳 용암리 북창보건진료소 골목에 광명등이라는 별명을 가진 용암리 석등이 있다.찾아오기가 간단하지는 않지만 여기서 만나게 되는 석등은 찾아온 노력을 충분히 보상해준다.높이 5.18m로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다음으로 큰 이 석등은 주변 시골집들의 지붕보다 더 높아서 마을 앞길에서부터 벌써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이 등에 불이 켜진다면 사방 산 안쪽에서는 다 보일 것이다.


이 석등은 지대석과 하대하석,화사석,지붕돌이 모두 팔각을 이루는 석등의 전형적인 양식을 따르면서도 간석이 장구 몸통 모양(고복형鼓腹形)으로 변형되고 화사석의 8면에 모두 화창이 뚫렸으며 연화하대석과 지붕돌 모서리에 귀꽃이 서는 등 통일신라 후기 전라도 지방의 석등 양식을 지니고 있다.


아래위에 턱을 만든 하대하석의 각면에는 안상이 하나씩 새겨졌고 그 위에 8장의 복판단엽 연꽃잎을 새긴 연화하대석에는 꽃잎 끝마다 귀꽃이 섰으며 그 위로 다시 구름문양이 새겨진 간석 괴임이 놓였다.간석 중간의 두툼하게 부풀린 부분에는 다시 앙련과 복련이 새겨졌다.상대석에는 8장의 앙련이 새겨졌고 그 위에는 턱을 뚜렷하게 판 화사석 괴임이 있다.화사석에는 네 면에만 화창을 뚫는 전형 양식과는 달리 8면에 모두 화창이 있고 지붕돌의 모서리에는 귀꽃이 서 있다.상륜부에는 노반과 앙화만이 남아 있다.


전체적으로 상대석 이상의 각 부분이 간석에 비해 좀 큰 듯 가분수기가 조금 느껴지지만 불편할 정도는 아니고 이 등에 불이 켜져 팔방으로 빛줄기를 뻗은 모습은 참으로 장엄했으리라는 상상에 자꾸 다시 보게 된다.통일신라 말기의 양식을 따른 고려 초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보물 제267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임실 진구사지 석등(任實 珍丘寺址 石燈)


보물 제267호 
전북 임실군 신평면 용암리 734 


우리나라에서 손꼽힐 정도로 큰 석등으로 가운데받침돌을 제외한 각 부분 모두 신라시대 석등의 기본형태인 8각을 이루고 있다. 석등의 전체 높이는 5.18m이다.


석등은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3단의 받침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을 올리고 있다.


아래받침돌에는 옆면에 안상(眼象)을 새기고, 윗면에는 커다란 꽃장식을 두었으며 그 위에는 구름을 조각하였다. 가운데기둥은 장고 모양이며, 연꽃을 새긴 마디가 있다. 윗받침돌에도 연꽃이 새겨져 있으며, 그 위에 있는 화사석(火舍石)에는 각 면마다 창을 내었다. 지붕돌의 경사는 급한 편이며, 여덟 곳의 귀퉁이 마다 큼직한 꽃장식이 달려 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노반(露盤)과 복발(覆鉢)이 놓여 있다.


이 석등은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지며, 여덟 면에 모두 창을 낸 예를 실상사석등(보물 제35호)이나 개선사지석등(보물 제111호)에서도 볼 수 있어 호남지방 석등의 특색을 보여 주고 있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