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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화암사우화루(花巖寺雨花樓).전북 완주 본문

☆~ 풍경소리/전 북

완주 화암사우화루(花巖寺雨花樓).전북 완주

푸른새벽* 2011. 6. 12. 20:05

 

 

 

 

 

 

 

 

 

 

 

 

 

 

 

 

 

 

 

 

 

 

 

 

 

 

 

 

 

 

완주 화암사우화루(花巖寺雨花樓)


보물 제662호로 지정된 화암사 우화루는 정면 3칸 측면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로서,극락전과 일직선을 이루며 안마당 남쪽에 버티어 서서 화암사의 외곽을 구성하는 누각이다.누하주가 높직하고 2층 또한 훤칠한 데다 칸살조차 넓어 3칸 집이지만 당당한 외양이다.누각이라고는 해도 온전한 의미의 누각과는 어지간히 달라서,앞에서 보면 2층이지만 뒤,곧 안마당에서 보면 그대로 단층이다.이미 말한 대로 앞면의 아래층은 앞줄에 기둥을 나란히 세우고 안쪽은 축대를 쌓아 마감했는데,어간 가운데 기둥 하나를 덧대어 누마루를 받침으로써 마치 4칸처럼 보인다.위층은 칸마다 널벽을 치고 가운데 문얼굴을 내어 바라지창을 달았다.안마당 쪽의 벽은 기둥 외에는 벽체나 창호를 두지 않고 툭 틔워 완전히 개방했고,양쪽의 측면은 흙벽으로 막았다.


공포는 내외2출목으로 짜올리되 정면과 후면의 어간에 주간포 2조,협칸에 1조,그리고 양 측면에는 공포를 두지 않았다.밖으로 내민 초제공,이제공은 앙서형 쇠서이고,삼제공은 초각(草刻)한 운공형(雲拱形)으로 일반적인 형태의 수서형 쇠서와는 다르다.공포의 배치방식이나 제공의 생김새와 강건한 기풍이 극락전의 것과 흡사하다.이 점은 두 건물의 역사가 그리 다르지 않다는 증거의 하나이다.단청은 풍화가 심해 안팎이나 모두 색채나 기법을 운위하기 곤란할 정도로 희미하다.내부 좌우 측면 협칸 상단에 고색이 깃든 벽화가 남아 있기는 하나 이 역시 손상이 심한 상태라 무어라 말하기 어렵다.


우화루는 고려 때 창건되어 정유재란 당시 왜병들에 의해 불타기까지 극락전과 동일한 내력을 밟아온 듯하다.그 뒤로는 1611년의 중창을 필두로 1629년,1666년,1711년,그리고 1806년에 한 차례씩 손을 보았다.1981년 도에 마지막 보수공사가 있었고,이때 발견된 상량문에 의해 밝혀진 사실들이다.따라서 현재의 우화루는 1611년에 이루어진 골격을 제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우화루는 접의 외향이나 가구,공포 등의 세부 수법에서 개성을 찾기 보다는 공간의 특성과 의미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우화루의 마루바닥과 안마당의 지면은 거의 레벨이 같다.이 말은 건축적으로 우화루 내부가 안마등의 연장,혹은 안마당이 우화루의 지속이라는 뜻이 된다.달리 표현하면 우화루는 집중 얹은 안마당이고,안마당은 지붕없는 우화루라고 할 수 있다.이런 관계는 비단 우화루와 안마당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극락전과 적묵당,불명당에까지 확장된다.결국 안마당을 중심으로 둘러선 네 건물은 상호 소통하는 구조를 가짐으로써 지붕의 유무에 상관없이 단일한 공간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둘 또는 그 이상의 공간이 단일한 공간으로 인식된다는 것은 그만큼 독립된 공간들 사잉에 수직적 위계가 뚜렷하지 않거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요컨대 안마당과 우화루에서 극명하게 볼 수 있듯이 화암사의 전각들은 수직적 위계가 아닌 수평성으로 서로 만나고 있다 하겠다.수평성,바꿔 말해 평지성이 백제계 건축의 큰 특징 가운데 하나라고 할 때,우리는 지형상 평지와는 거리가 먼 화암사에서 백제계 건축의 면면한 전통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우하루는 화암사에 남은 백제계 건축 요소의 인식을 환기시키는 촉매이자 세월을 거슬러 오르는 시간의 계단이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화암사우화루(花巖寺雨花樓)


보물 제662호
전북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 1078


화암사는 불명산 시루봉 남쪽에 있는 절로 본사인 금산사에 딸린 절이다. 절을 지을 당시의 자세한 기록은 없으나 원효와 의상이 유학하고 돌아와 수도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신라 문무왕 이전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1981년 해체·수리 때 발견한 기록으로 조선 숙종 37년(1711)까지 여러번에 걸쳐 수리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우화루는 화암사 경내에 있는 극락전 정문과 같은 성격의 누이다. 지금 있는 건물은 조선 광해군 3년(1611)에 세운 것으로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수리한 건물이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1층은 기둥을 세워서 바깥과 통하게 하고, 뒤쪽에는 2층 마룻바닥을 땅과 거의 같게 놓아 건물 앞쪽에서는 2층이지만 안쪽에서는 1층집으로 보이게 한 건물이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