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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태봉사삼존석불(胎峰寺三尊石佛).전북 익산 본문

☆~ 풍경소리/전 북

익산 태봉사삼존석불(胎峰寺三尊石佛).전북 익산

푸른새벽* 2014. 3. 19. 13:34

 

 

 

 

 

 

 

 

 

 

 

 

 

 

 

 

 

익산 태봉사삼존석불(胎峰寺三尊石佛)


익산시 유형문화재 제12호
전북 익산시 삼기면 연동리


백제 때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태봉사는 심묘련보살이 3대독자인 아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산신기도를 드리다가 산신의 현몽으로 아미타삼존불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지금의 사찰을 세웠다고 한다.


태봉사 극락전에 모셔진 이 불상은 부채꼴 모양의 거대한 광배(光背)에 3구의 석불을 돋을새김한 것이다.


사각형의 대좌(臺座) 위에 앉아 있는 본존불은 머리에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둥글고 원만한 얼굴은 이목구비가 작고 규격화되어 단정한 인상을 풍긴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옷주름 처리에서 형식적인 면이 보이며, 무릎을 덮어내린 자락은 대좌까지 덮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얼굴에 비해 빈약한 체구는 어깨와 손이 투박하게 표현되었는데, 왼손은 내려 배에 대고 오른손은 들어 가슴에 대고있는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왼쪽의 보관을 쓰고 합장한 보살입상은 본존과 비슷한 얼굴에 체구는 날씬한 편으로 관음보살로 생각되며, 동자승 형태의 오른쪽 보살상은 손에서 보이는 세부표현의 투박성 외에는 역시 날씬한 모습으로 나한상이라기 보다는 지장보살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삼존불(三尊佛)은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협시보살로 하는 아미타삼존상을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시대 때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이 불상은 아들을 점지하는 영험이 있다고 하여 지금도 득남을 바라는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문화재청자료*

 

익산 태봉사삼존석불(胎峰寺三尊石佛)

태봉사가 자리잡은 태봉산은 마한의 왕 기준이 세 아들의 태를 묻은 곳이라 하여 태봉산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유래를 지니고 있다.태봉사는 지금으로부터 50여년 전에 한 스님이 산신의 현몽으로 이 삼존불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지은 절이라 한다.


결가부좌한 본존불 좌우에 두 협시보살이 조각되어 있는데 광배와 함께 모두 한 장의 판석에 새겨져 있다.본존불의 높이가 0.68m,두 협시불의 높이가 0.77m,그리고 광배의 높이는 2.12m이다.본존불은 몸에 비해 머리 부분이 커서 얼핏 어린아이의 몸 같은 느낌을 주며 왼손은 가슴에 대고 오른손은 내려 배 앞에 댄 특이한 손 모양을 하고 있다.본존불의 머리 윗부분 광배에 화불이 한 구 있다.


두 협시보살은 본존불보다 호리호리한 몸매를 지녔다.오른쪽의 보살은 관세음보살로 손에 감로수 병을 들고 있고,왼쪽의 보살은 지장보살로 보이는데 손에 연꽃가지를 들고 있다.따라서 이 삼존상은 아미타삼존으로 생각되며 백제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지만 근래에 호분을 덧발라 석고처럼 보이며 그 위에다 검은 색으로 눈,입 등을 그려 놓아 원래의 얼굴은 알아 보기 힘들다.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어 있다.


삼존불이 모셔진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 좌우 화단에 두꺼비 같은 어벙한 웃음을 지은 자그마한 짐승 모양의 돌조각이 있다.그 유래는 알 수 없지만,천연덕스러운 표정이 보는 사람을 실없이 웃게 만든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