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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동방사지칠층석탑(星州 東方寺址七層石塔).경북 성주 본문

☆~ 풍경소리/경 북

성주 동방사지칠층석탑(星州 東方寺址七層石塔).경북 성주

푸른새벽* 2015. 10. 4. 11:03

 

 

 

 

 

 

 

 

 

 

 

 

 

 

 

 

성주 동방사지칠층석탑(星州 東方寺址七層石塔)


경북 왜관쪽에서 33번 국도를 이용해 성주 읍내로 들어가다보면 바로 읍내 못미쳐 길 왼편 비닐하우스가 바다를 이룬 들목에 치솟아 있다.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다는 말이 있지만 이 탑은,절터가 햇빛 속에서 하얗게 눈을 되쏘는 이상한 바다로까지 변해버린 이 들판의 어제 오늘을 함께 보아온 셈이겠다.성주로 들어가는 길목이라 성주를 찾는 이에게는 이 고장의 범상치 않은 내력을 몸으로 보여주는 탑이기도 하다.


탑이 들어서 있는 자리에는 원래 신라 제40대 임금 애장왕 때 세워진 동방사(東方寺)라는 절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다고만 알려져 있을 뿐 그밖의 사실은 전하는 게 없다.탑도 처음에는 구층탑이었으나 현재는 7층까지만 남아 있다고 하는데,7층 지붕돌 위에 몸돌이 하나 놓이고 거기에 찰주가 꽃혀 있는 것으로 보아 사실인 듯하다.


성주사람들은 이 탑을 지기탑(地氣塔)이라고도 한다.풍수적으로 보아 성주의 지형은 소가 누워서 별을 바라보는 형상으로 남동과 북서는 산으로 둘러싸였는데 성주를 감돌아 동쪽으로 흘러내리는 이천(伊川)을 따라 지기가 빠져나간다는 것이고,그것을 막기 위해 세워진 게 이 석탑이라는 얘기다.


멀리서 언뜻 보면 참 멋없고 길고 홀쭉해 보일 뿐이지만 다가서 요모조모 뜯어보면 나름대로 몇 가지 특색을 찾을 수 있다.단층으로 이루어진 ㅣ기단은 지대석과 하대석이 모두 번듯하고 두툼하며,네 면에 탱주를 하나씩 새긴 높직한 중대석은 큼지막한 돌 한 덩이로 다듬어져 여느 탑의 1층 몸돌을 보는 느낌을 자아낸다.높이 솟은 탑신에 대한 배려로 보인다.기단부를 마감한 상대갑석 역시 퍽 두툼한 펴인데 각이 지는 곳마다 생기는 직선이 날이 선 듯 날카롭다.이 갑석은 탑의 다른 부분에 비해 지나치게 모가 나는 것이나 표면의 질감이 눈에 띄게 거친 점으로 미루어 혹 나중에 갈아넣은 것이 아닌가 생각되지만 단언할 수는 없는 일이다.


탑신부는 지붕돌이나 몸돌 모두 급격히 체감되어 올라가는 관계로 탑이 실제보다 가늘고 높아 보인다.특이하게도 1층과 2층 몸돌에는 사방 한가운데 탱주가 새겨져 있다.지붕돌 아래에 새겨진 층급받침이 7층까지 모두 셋이라는 점도 금세 눈에 들어오는 유다른 면이다.


뭐니뭐니 해도 이 탑의 매력은 1층 지붕돌 네 모서리에 도드라지게 새겨진 자그마한 연꽃무늬일텐데 탑이 워낙 위로만 솟아 여간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놓쳐버리기 십상이다.다른 탑에서는 좀체 찾아보기 힘든 예인데,탑의 크기나 높이게 비해 너무 작고 앙증스러워 절로 웃음이 배어나온다. 큰 키에 어울리지 않게 귀여운 구석이 하나 더 있다.1층 몸돌 남쪽면에 만든 조그만 감실이 그것이다.이만큼 작은 크기로 무슨 구실을 제대로 해냈을 것 같지도 않은데,이제 와서는 보는 이를 즐겁게 하는 것이 제 구실이 된 것 같다.


두툼한 옥개석,추녀에서 심한 반전을 이루는 지붕돌 처마선,셋으로 줄어든 층급받침,3층이 아닌 다층석탑이라는 점 등등 고려시대 석탑임을 쉽게 알 수 있는 특징을 여럿 지니고 있다.높이는 12m이고,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60호이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성주 동방사지칠층석탑(星州 東方寺址七層石塔)


시도유형문화재 제60호(성주군) 
경북 성주군 성주읍 예산리 269-10 


동방사터에 남아 있는 7층 석탑으로, 원래는 9층이었다고 전한다. 절터는 성주읍내에서 왜관으로 가는 국도를 따라 약 1㎞ 떨어진 도로변에 자리잡고 있는데, 신라 애장왕 때 창건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절이 모두 불타버리고 현재는 이 석탑만 남아 있다.


기단(基壇)의 네 면과 탑신(塔身)의 각 몸돌에는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으며, 특히 1층 몸돌에는 문(門)모양을 깊게 새겼다. 1 ·2 ·3층 지붕돌 네 귀퉁이에는 연꽃무늬가 조각되어 있는 것이 특징으로, 고려시대의 자유로운 조각양식이 엿보인다.


탑이 자리하고 있는 성주지역의 지형은 소가 누워서 별을 바라보는 형상으로, 이 때문에 냇물이 성주읍을 돌아 동쪽으로 빠져 나가는 것으로 보아, 성주땅의 기운이 냇물과 함께 빠져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이 탑을 세웠다고 전한다. 성주따의 기운을 보호하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일명 ‘지기탑(地氣塔)’이라 부르기도 한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