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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 석남사 승탑(蔚州 石南寺 僧塔).울산광역시 본문

☆~ 풍경소리/울산광역시

울주 석남사 승탑(蔚州 石南寺 僧塔).울산광역시

푸른새벽* 2016. 1. 28. 20:06

 

 

 

 

 

 

 

 

 

 

 

 

 

 

 

 

 

 

 

 

 

 

 

 

 

 

 

 

 

 

 

 

 

 

 

 

 

 

 

 

 

 

 

 

 

 

 

 

 

 

 

 

 

 

 

 

 

 

 

 

 

 

 

 

 

 

 

 

 

 

 

 

 

 

 

 

 

 

울주 석남사 승탑(蔚州 石南寺 僧塔)


팔각원당형을 기본으로 삼고,지대석 위에 상.중.하대로 구성된 기단을 쌓았으며 그 위에 몸돌과 지붕돌,상륜부를 차례로 놓았다.어느 부재 하나 빠지거나 크게 훼손됨 없이 비교적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1962년 해체 보수할 때 중대석 윗부분 중앙에서 사리공을 확인하였는데,사리 장치는 없었다고 한다.이미 도난당한 뒤였던 것이다.


우선 아래서부터 부도의 생김새를 살펴보자.지대석은 높직한 팔각의 돌 하나로 윗면에 하대석을 받치기 위한 얕은 각형의 굄을 한 단 새겨 놓았다. 하대석은 별개의 돌인 상하 2단으로 이루어져 있다.역시 팔각인 하대석 아랫돌에는 한 면씩 건너뛰며 사자상을 돋을새김으로 조각하였는데,사자 네 마리의 자세가 모두 다르다.역시 윗면에 하대석 윗돌을 놓기 위한 각형의 굄을 한 단 얕게 새겨 지대석과 통일감을 주었다. 그 위에 놓인 하대석 윗돌은 온통 구름이 엉킨 모습인데,지대석에서부터 차츰 장식이 화려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석공은 여기서 분위기를 쇄신할 작정이었는지 윗면에 낮은 각형의 굄 두 단을 마련하고 중대석을 얹었다. 중대석은 8각으로 아래위쪽이 둥글게 줄어든 고복형이며,귀기둥 대신 네모난 꽃 모양의 안상을 새기고 안상 안에 꽃잎 네 장인 연꽃을 야무지게 벨트처럼 맸다.이들 중대석 안상 안에 새겨진 꽃잎 네 장인 연꽃은 상대석에서 앙화로 활짝 피어났다.중대석과 상대석에 있음직한 굄은 중대석 윗면이 아닌 상대석 아래에 부연처럼 새겨졌다.활짝 핀 연꽃 위에는 몸돌을 받치기 위한 팔각의 굄돌이 마치 덮개돌처럼 크고 두툼하게 표현돼 있으며,윗면에 얕은 굄 1단이 표현돼 안정적으로 몸돌을 받치고 있다.


몸돌은 팔각기둥 형태이며 정면과 뒷면에 장방형의 문 모양이 조각돼 있으나 문비 조각은 앞면에만 있다.정면 좌우로 신장상이 조각돼 있는데,조각은 뚜렷하나 형식적으로 보이고,조각된 상태로 보아서는 사천왕인지 인왕상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몸돌 각 면에 귀기둥을 조각하고 아래위로 같은 굵기의 선을 두르고 있어 문비와 신장상이 마치 액자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하다.

 
지붕돌은 몸돌이 놓이는 아래 중앙부에 2단의 받침을 새기고 있으며, 이 받침에서 추녀를 향해 네모진 서까래를 조각하였다.지붕돌 윗면은 낙수면이 완만하게 흐르며,8면의 합각마다 우동마루가 표현돼 있고.기왓골까지 조각되었다.우동의 끝 부분에는 작은 귀꽃이 있으나 떨어져 나갔다.상륜부는 여덟 꽃잎이 솟은 앙화와 팔각기둥 모양의 보륜과 보개.높직한 보주까지 온전히 남아 있다.전체 높이 3.53m이며 보물 제 369호로 지정돼 있다.


통일신라 말기 또는 고려 초기에 세워진 것이 아닌가 추정되며,도의선사 부도라고 하지만 명확하지 않다.다만,전남 장흥 보림사에 있는 보조선사 부도와 닮은꼴인 데 비추어 가지산문과 어떤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시기적으로는 보조선사 부도의 양식을 본뜬 후대 작품임이 분명하다.한편,도의선사의 것이 아닌가 하고 추정되는 또 다른 부도 하나가 설악산 진전사터에 전하고 있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엮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울주 석남사 승탑(蔚州 石南寺 僧塔)

 
보물 제369호
울산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 1064


석남사 동북쪽 언덕의 넓은 대지에 자리잡고 있으며, 일찍부터 석남사를 세운 도의국사의 사리탑으로 불려왔다. 전체적으로 8각의 형태을 취하고 있으며, 8각의 바닥돌 위에 기단부(基壇部)와 탑신(塔身)을 놓은 모습이다.


기단부의 아래받침돌은 8각으로 사자와 구름을 도드라지게 새겨 놓았다. 북모양을 하고 있는 가운데받침돌에는 상·하·좌·우에서 안쪽을 향하여 낮게 솟은 꽃모양의 안상(眼象)을 새겼고, 그 안으로 꽃모양의 띠를 둘렀다.

 

윗받침돌은 연꽃을 새겨 탑신을 받치도록 하였다. 탑신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얇게 새겼고, 앞·뒷면에는 문짝 모양의 조각을 두었는데, 그 중 앞면에만 자물쇠가 새겨져 있다. 문의 양 옆으로 신장입상(神將立像)이 배치되어 있다. 지붕돌은 추녀가 짧고 서까래와 기왓골이 상세히 표현되었으며, 지붕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이 차례대로 얹혀져 있다.


전체적으로 넓이에 비하여 높이가 높은 부재로 구성되어 길쭉해 보이며, 바닥돌의 폭이 좁아 안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래받침돌의 구름무늬나 탑신의 신장상이 형식적으로 표현되었고, 특히 가운데받침돌의 안상조각에서 시대가 내려옴을 볼 수 있으나 각 부분이 완전히 보존된 아름다운 작품이다.


1962년 해체, 수리할 당시 기단부의 가운데받침돌에서 사리장치를 두었던 공간이 확인되었으나 사리장치는 남은 것이 없었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