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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금동대향로(百濟 金銅大香爐).국립부여박물관 본문

☆~ 바람소리/박물관

백제 금동대향로(百濟 金銅大香爐).국립부여박물관

푸른새벽* 2017. 1. 25. 23:27





















































백제 금동대향로(百濟 金銅大香爐)


국보 제287호
충남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5, 국립부여박물관


백제 나성과 능산리 무덤들 사이 절터 서쪽의 한 구덩이에서 450여점의 유물과 함께 발견된 백제의 향로이다. 높이 61.8㎝, 무게 11.8㎏이나 되는 대형 향로로, 크게 몸체와 뚜껑으로 구분되며 위에 부착한 봉황과 받침대를 포함하면 4부분으로 구성된다.


뚜껑에는 23개의 산들이 4~5겹으로 첩첩산중을 이루는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피리와 소비파, 현금, 북들을 연주하는 5인의 악사와 각종 무인상, 기마수렵상 등 16인의 인물상과 봉황, 용을 비롯한 상상의 날짐승, 호랑이, 사슴 등 39마리의 현실 세계 동물들이 표현되어 있다. 이 밖에 6개의 나무와 12개의 바위, 산 중턱에 있는 산길, 산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 폭포, 호수 등이 변화무쌍하게 표현되어 있다.


뚜껑 꼭대기에는 별도로 부착된 봉황이 목과 부리로 여의주를 품고 날개를 편 채 힘있게 서 있는데, 길게 약간 치켜 올라간 꼬리의 부드러움은 백제적 특징이라 하겠다. 봉황 앞 가슴과 악사상 앞뒤에는 5개의 구멍이 뚫려 있어 몸체에서 향 연기를 자연스럽게 피어오를 수 있게 하였다.


몸체는 활짝 피어난 연꽃을 연상시킨다. 연잎의 표면에는 불사조와 물고기, 사슴, 학 등 26마리의 동물이 배치되어 있다. 받침대는 몸체의 연꽃 밑부분을 입으로 문 채 하늘로 치솟 듯 고개를 쳐들어 떠받고 있는 한 마리의 용으로 되어 있다.


이 향로는 중국 한나라에서 유행한 박산향로의 영향을 받은 듯 하지만, 중국과 달리 산들이 독립적·입체적이며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창의성과 조형성이 뛰어나고 불교와 도교가 혼합된 종교와 사상적 복합성까지 보이고 있어 백제시대의 공예와 미술문화, 종교와 사상, 제작 기술까지도 파악하게 해 주는 귀중한 작품이다.
*문화재청자료*



백제 금동대향로(百濟 金銅大香爐)


금동대향로의 발굴은 백제 공예사,나아가서는 삼국 시대 공예사,혹은 우리 나라 공예사와 문화사까지도 다시 써야 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1933년에 능산리 고분군과 부여 나성 사이의 백제 때 집터를 발굴하던 국립부여박물관 사람들은 이 향로를 집터 바닥 흙구덩이에서 찾아 냈다.공기가 통하지 않는 진흙 속에 파묻혀 있었기에 거의 녹슬지 않고 제 모양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은 천행이었다.발굴 결과에 따라 이 집터는 궁중의 소용물을 제작하는 공방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키가 64cm나 되는 이 거대한 향로는 머리를 들어올린 용을 받침으로 삼아 피어나는 연꽃 위에 봉래산이 솟아나고 그 꼭대기에는 봉황이 한 마리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향로의 뚜껑 부분을 이룬 봉래산은 예로부터 동해의 신산(神山)을 상징하는 의미로 그 부분이 신선의 세계임을 표현한 것이다.74개나 되는 산봉우리 사이사이에는 온갖 진기한 기화요초와,호랑이,코끼리,원숭이 등 실재하는 짐승과 상상의 짐승들 39마리가 조각되었고,사람도 16명이나 있다.봉황의 아래쪽에는 악사 다섯 사람이 빙 돌아가며 앉아 천상계의 음악을 연주하는데,입체적인 부조인 악사들 바로 뒤에 작은 구멍을 뚫어 향이 피어나오도록 했다.또 산 골골마다 숨은 듯이 있어 낚시를 하는가 하면 머리를 감거나 사냥을 하는 신선들은 그 모습이 매우 자연스럽다.


몸체는 피어나는 연꽃 모양으로 사이사이에 두 사람과 물고기 등 수중생물 26마리가 새겨져 있다.이런 몸체를 고개를 바짝 쳐든 용 한 마리가 세 발을 틀어서 굳건히 받치고 있는데,한 발은 번쩍 쳐들어 틀에 갇히지 않은 자유로운 상상력을 보여 준다.


이렇듯이 여러 상징들로 만물의 생명이 연꽃에서 탄생한다는 불교의 연화화생관을 이루고,한편으로는 음의 정점인 수중세계의 용,그 위의 지상세계,다시 천상세계로 나누어 양의 정점인 봉황에 이르기까지 동양 전통의 음양설을 적용하여 하나의 우주를 이루어 내고 있다.


봉래산(중국식으로는 박산) 향로는 중국에서는 이미 한나라 때부터 만들어져 왔으나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토록 정교하고 섬세하며 상징적인 향로가 만들어진 예는 없다.7세기 초의 것으로 여겨지는 이 향로는 백제 사람들의 사상을 보여 주면서 동시에 그 사상을 이처럼 섬세하고도 자신 있게 조형적으로 형상화해 낼 수 있었던 백제 문화와 자신감을 우리에게 새삼 일깨워 준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