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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인흥서원(大邱 仁興書院).대구광역시 본문

☆~ 풍경소리/대구광역시

대구 인흥서원(大邱 仁興書院).대구광역시

푸른새벽* 2017. 4. 29. 12:00






















































대구 인흥서원(大邱 仁興書院)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730


1866년(고종 3)에 추황(秋篁, 1198∼1259), 추적(秋適), 추유(秋濡, 1345∼1404), 추수경(秋水鏡, 1530∼1600) 등 추계추씨 4현을 제향하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뒤 1938년에 복원하여 매년 음력 3월 중정일과 10월 3일에 춘추 향사를 봉행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유주목(柳疇睦)이 지은 「인흥서원기(仁興書院記)」에 따르면, 1853년(철종 4) 후손들이 500여 년 간 실전되었던 추계추씨 노당(露堂) 추적의 묘를 찾아 수습한 뒤, 1866년(고종 3) 묘 아래 사우를 지어 추계추씨의 시조이자 추적의 아버지 추황의 위패를 주향으로 모시고, 추적과 그의 손자 추유, 추유의 5세손 추수경을 합향하였다.


추황은 호가 회암(悔庵), 시호(諡號)는 문정(文正)이다. 1213년(강종 2) 문과에 급제하여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예부상서(禮部尙書),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조의혼상제례(朝儀喪祭禮)』가 있었으나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추적은 충렬왕 초 과거에 급제하여 민부상서, 예문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충렬왕 말년 안향(安珦)에게 발탁되어 7품 이하의 관리와 생원들의 유학교육을 담당하고, 『명심보감(明心寶鑑)』을 편찬하였다.


추유는 자가 윤지(潤之), 호는 운심재(雲心齋)로 1362년(공민왕 11) 성균시에 급제하여 호부상서(戶部尙書)를 역임하였다. 추수경은 호가 세심당(洗心堂)으로 중국 오현군(五賢郡) 출신인데, 임진왜란 때 곽산·동래 등지에서 많은 전공을 세우고 전주에서 전사하였다. 완산부원군(完山府院君)에 추봉되어 후손들이 본관을 전주로 삼았다.


서원의 건물은 강당, 동재와 서재, 사당인 문현사(文顯祠), 신도비각, 장판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문현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며 동서재는 각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규모이다. 장판각에는 『명심보감』, 『조군영적지(?君靈蹟誌)』, 『추계가승(秋溪家乘)』, 『추계가승속편』, 『추계가승집록』 등의 책판이 소장되어 있다. 그중 『명심보감』은 1869년(고종 6)에 추세문이 편한 것으로, 명심보감판본(明心寶鑑板本) 31매가 1995년 5월 12일에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7호로 지정되었다.


서원 관련 기록으로는 유주목이 지은 「인흥서원기」가 『계당집(溪堂集)』에 수록되어 있다. 또 「인흥서원전국도(仁興書院全局圖)」, 「명당재기(名堂齋記)」, 건립 당시 위패를 봉안할 때 작성한 봉안문과 축문, 「인흥서원창건기(仁興書院?建記)」, 「인흥서원상량문(仁興書院上樑文)」,「입묘개묘시고유문(立廟開墓時告由文)」, 「입묘봉안시고묘문(立廟奉安時告墓文)」 등이 1869년(고종 6)에 간행된 『추계가승(秋溪家乘)』에 모두 수록되어 있다. 1934년에는 인흥서원에서 18권 17책의 『추계추씨족보(秋溪秋氏族譜)』를 간행하였으며,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