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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 앞 쌍사자 석등(楊州檜巖寺址無學大師塔─雙獅子石燈).경기 양주 본문

☆~ 풍경소리/경 기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 앞 쌍사자 석등(楊州檜巖寺址無學大師塔─雙獅子石燈).경기 양주

푸른새벽* 2019. 6. 16. 18:34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 앞 쌍사자 석등(楊州檜巖寺址無學大師塔─雙獅子石燈)


보물 제389호 
경기 양주시 회암동 산8 회암사 


보물 제389호. 높이 2.5m. 회암사지 동쪽 능선 위에 지공(指空)·나옹(懶翁)·무학(無學)의 부도가 남북으로 나란히 있고, 그 남쪽 끝에 이 석등이 있다.


상하 평면은 방형이고 지대석(地臺石)과 하대석은 한데 붙여서 만들었는데, 하대석에는 각 모퉁이와 그 중간에 여의두문(如意頭文)같이 퇴화된 복련(覆蓮)이 조각되고 위에는 받침 1단이 있다.


이 위의 간석(竿石)은 쌍사자로 대신하여 신라 이래의 형식을 따르고 있으나, 가슴과 배가 서로 붙어서 입체감이 없으며 엉덩이가 밑에 닿아서 하지의 표현이 매우 부자연스럽다. 앞다리의 표현도 짧아서 빈약해보이며 키가 작아서 육중한 상층부를 지탱하기 어려워보인다.


상대석에는 하대석과 같이 8엽 앙화(仰花)가 조각되었다. 화사부(火舍部)에는 ○형의 2개의 석재를 좌우에 간격을 두고 놓아서 그 간격으로 생긴 전후공간이 화창(火窓)의 구실을 하고 있다. 네 모퉁이에는 원형의 우주(隅柱: 모서리기둥)를 표시하는 등 이례적인 형식이다.


옥개석(屋蓋石)은 두껍고 처마밑이 반원을 그리면서 들렸고 낙수면(落水面)의 우동(隅棟: 옥개석의 귀마루)은 뚜렷하게 표현되었다. 옥정(屋頂)에는 복발형(覆鉢形) 석재(石材)와 보주(寶珠)가 있다.


이 석등은 충주 청룡사지(靑龍寺址) 보각국사탑(普覺國師塔) 앞의 석등과 매우 유사한 양식이어서 건립 연대는 14세기 말인 조선 전기로 추정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자료*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 앞 쌍사자 석등(楊州檜巖寺址無學大師塔─雙獅子石燈)


보물 제389호 
경기 양주시 회암동 산8 회암사 


회암사는 고려 충숙왕 때인 1328년에 승려 지공(指空)이 창건한 사찰로, 그 제자인 나옹(懶翁)이 불사를 일으켜 큰 규모의 사찰이 되었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각별히 관심을 가졌으며, 왕위를 물린 후에도 이 곳에서 머무르며 수도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절터의 동쪽 능선 위에 지공과 나옹 그리고 무학의 사리탑이 남과 북으로 나란히 서있고, 그 남쪽 끝에 이 석등이 자리하고 있다.


바닥돌과 아래받침돌은 하나로 붙여서 만들었으며, 그 위의 중간받침돌은 쌍사자를 두어 신라이래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쌍사자는 가슴과 배가 서로 붙어 입체감이 없고 엉덩이가 밑에 닿아 부자연스럽다. 윗받침돌에는 8개의 연꽃모양을 새겼다. 불을 밝혀두는 곳인 화사석(火舍石)은 2개의 석재를 좌 우에 놓아 그 간격으로 생긴 2개의 공간이 창의 구실을 하고 있다. 지붕돌은 두꺼우며 처마밑이 반원모양으로 들려 있고, 경사면은 네 귀퉁이가 두툼하게 도드라져 뚜렷이 표현되었다. 지붕돌 꼭대기에는 둥근 돌 위로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있다.


기본형이 4각인 형태로 삼국시대이래 고유의 8각 석등형태에서 벗어났다는 점이 주목되며, 청룡사터의 보각국사 정혜원륭탑전사자석등(보물 제656호)과 양식이 비슷한데, 만들어진 시기도 이와 같은 것으로 보아 조선 전기의 작품으로 추측하고 있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