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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하리삼층석탑(驪州下里三層石塔).경기 여주 본문

☆~ 풍경소리/경 기

여주 하리삼층석탑(驪州下里三層石塔).경기 여주

푸른새벽* 2023. 9. 24. 14:23

 

 

 

 

 

 

 

 

 

 

 

 

 

 

 

 

여주하리삼층석탑(驪州下里三層石塔)

보물 제92호  
경기 여주시 여주읍 상리 132 

경기도 여주시에 있는 고려시대 일반형 3층 석조 불탑. 석탑. 보물.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3.7m. 본래 하리의 옛 절터에 서 있었던 것을 1957년 11월에 한강변에 있는 영월루(迎月樓) 밑의 공원 산중턱으로 옮겨 세워 바로 옆의 여주 창리 삼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과 나란히 있다.

석탑의 구성은 신라 이래의 전형적인 일반형 양식을 계승하여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쌓은 방형탑이다. 하층 기단의 구조는 일반적인 형식에 속하는 것으로서 갑석(甲石)은 상면에 현저한 경사를 이루었고 그 중심에 상층 기단 면석을 받기 위한 높직한 2단의 몰딩(moulding: 테두리장식)이 있다.

상층 기단 면석은 4매판석으로 구성하였는데, 2면에는 우주(隅柱)를 측면에까지 모각(模刻)하였고, 다른 2면에는 평판석을 그 사이에 삽입하는 구성형식을 취하였다. 갑석은 평박한 편이고 밑에는 얕은 부연(副椽)이, 그리고 상면 중앙에는 역시 높은 2단의 몰딩이 있다.

탑신부는 옥신(屋身)과 옥개석(屋蓋石)이 각각 1석이다. 각 층 옥신에는 우주형이 얕게 모각되었으며 초층 옥신은 특히 높은 편이다. 옥개석 각 층 받침은 4단이고 추녀 밑은 직선을 이루다가 귀퉁이에 이르러 상향(上向)하였다.

낙수면의 경사는 온화하며 전각(轉角)의 반전(反轉)은 약하다. 옥개석 정상에는 굄 1단이 있어 위층의 옥신을 받치고 있다. 상륜부는 전부 결실되어 하나도 남은 것이 없다.

이 탑을 옮겨 세울 당시 특이한 사리공(舍利孔)이 발견되었는데, 일반형 석탑의 사리공과는 정반대로 초층 옥신 상면 중앙에 18.8㎝×21.2㎝의 얕은 층단 위에 10.6㎝×13.6㎝, 높이 3㎝의 돌기가 있어 마치 대(臺)와 같은 형태를 만들고 그 안에 지름 3㎝와 1.5㎝의 2개의 둥근 구멍이 있었다고 한다. 내용물은 하나도 남은 것이 없어 이 둥근 구멍이 무슨 용도였는지 알 수 없다.

또, 이 위에 얹히는 옥개석 밑면에는 1변 25.8㎝, 높이 12㎝의 단면능형(斷面菱形)의 홈이 팬 부분이 있어 사리공 돌기부 상면에서 9㎝에 가까운 공간을 남기면서 덮게 되었다. 이와 같은 사리공의 구조는 특이한 예로서 매우 주목되고 있다.

이 탑은 외형의 온아한 비율이나 각 부 구조의 규율성 등으로 보아 고려 중기를 전후한 시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탑이 속했던 사찰은 여주시내의 평지에 창건되었던 사찰이나, 그 절 이름은 알 수 없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자료*




여주하리삼층석탑(驪州下里三層石塔)

보물 제92호  
경기 여주시 여주읍 상리 132  

원래는 하리지역의 옛 절터에 있던 것을 1958년 창리의 3층석탑과 함께 현재의 터로 옮긴 것으로, 1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얹은 모습이다. 

기단은 4면의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기고, 그 윗돌 중앙에 1층 몸돌을 괴기 위한 2단의 테두리 조각을 둘렀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로 이루어져 있으며, 몸돌의 각 면 모서리마다 얕은 기둥 형태의 조각이 나타나 있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4단으로,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가 양쪽 귀에서 위로 약하게 솟아있다. 전체적으로 돌을 짜서 올리는 수법의 규칙성을 보이고 온화한 비율감이 느껴져 고려 전기보다는 중기에 세워졌을 것으로 보인다. 

탑을 옮겨 세울 당시, 1층 몸돌에서 독특한 모습의 사리홈이 발견되어 흥미를 끌고 있다. 즉, 몸돌 윗면의 중앙에 높이 3㎝의 얇은 띠가 둘러져 있고 그 안으로 2개의 구멍이 파여있는데, 이와 닿게 되는 지붕돌의 밑면에도 이를 배려한 듯 홈이 깊게 파여져 있다. 이는 몸돌의 윗면에만 깊은 홈을 두어 사리를 담아두는 일반적인 모습이 아니라 그 정반대의 형태를 하고 있어 특이하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