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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그리고 흔적.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榮州 北枝里 石造如來坐像).경북 본문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榮州 北枝里 石造如來坐像)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부석사에 봉안된 통일신라시대 불상.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榮州北枝里石造如來坐像)은 부석사(浮石寺) 자인당(慈忍堂)에 봉안되어 있다. 모두 2구로 1957년 부석사 동쪽 1.5㎞ 지점에 있는 동방사지(東方寺址)에서 옮겨온 것이다. 부석사 자인당은 선방의 용도로 사용되던 건물인데, 동방사지에서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을 옮겨온 후 당호를 ‘자인당’이라고 고쳤다. 이는 부처님을 ‘자인대사(慈忍大師)’라고 하는 데서 따온 것이라 한다. 자인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집이다. 공포가 건물 규모와 비교하면 너무 크고 측면 벽에 여러 가지 형태의 옛 부재가 섞여 있는 것으로 보아 19세기 후반경에 해체한 부재를 재사용하여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부석사 자인당 실내에는 석조 삼존여래 좌상이 있는데 가운데는 석가여래이고 좌우가 비로자나불로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이다.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의 크기는 왼쪽[서쪽]이 99.5㎝, 오른쪽[동쪽]이 103㎝이다. 동쪽의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은 나발의 머리에 육계가 불분명한데 얼굴은 둥근 편으로 단정한 인상이다. 눈은 뚜렷하지 않지만 미소의 흔적은 조금 남아 있다. 어깨가 너무 뒤로 젖혀지고 가슴과 배가 평평하게 표현되는 등 전체적으로 신체의 볼륨은 없는 편이다. 두 손이 없어져 수인은 알 수 없지만 두 팔이 가슴 쪽으로 올라가 있어 지권인(智拳印)을 한 비로자나불임을 알 수 있다. 법의는 통견인데 얇게 빚은 듯한 평행 계단식 옷 주름이 양팔과 배, 두 다리에 겹쳐 표현되고 있다. 넓은 무릎은 신체와 조화를 잘 이루며 단정하고 안정된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광배는 주형 거신광배(舟形擧身光背)로 비스듬히 깨어진 것을 붙여 세워 놓았다. 내부는 두 줄의 양각선으로 두광과 신광을 구분하였다. 그리고 신광의 가장자리에 좌우 각각 삼존화불(三尊化佛)을 배열하였으며, 두광의 윗부분에도 삼존화불을 배치하였다. 두광 안에는 다시 두 줄의 선으로 새기고 안에는 연꽃무늬, 밖에는 보상화문(寶相華文)을 둘렀다. 두광과 신광 밖에는 불꽃무늬를 조각하였으나, 조각이 얕고 느슨하다.
대좌는 상대·중대·하대로 구성된 삼중팔각대좌(三重八角臺座)이다. 사각형의 지대석과 그 위에는 팔각의 복련석과 복판연화문(複辦蓮花文) 8엽, 그 밑에 면마다 안상(眼象)을 마련하고 정면에는 향로, 다른 곳에는 사자 등과 같은 동물상을 양각하였다. 중대석은 팔각인데 모서리마다 우주가 있고 각 면의 안상 속에는 천부(天部)를 조각하였다. 상대석은 반구형에 중판앙련을 조각하였다.
서쪽에 있는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의 기본 모양은 동쪽 여래상과 흡사하지만, 신체가 좀 더 풍만하며 부드러운 편이다. 이 불상의 광배는 서쪽 광배와 다소 다르다. 두광은 이중 원이며 중앙에 팔판연화문이 있고 그사이에 하엽문이 있다. 신광도 2개의 선으로 구분하였으며 안쪽에는 아무런 문양이 없고 하단은 한층 두드러지게 하여 보상화문을 새겼고, 두광 위에는 삼존화불이 있으며 신광 양쪽에 3구씩의 화불을 새겼다. 대좌는 동쪽의 것과 거의 흡사하다.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은 부분적으로 파손이 심한 편이지만 대좌와 광배를 갖춘 불상으로써 조각 수법이라든지 형식·양식이 매우 유사하다. 여기서 보이는 양식적인 특징, 즉 육계가 불분명하고 작은 눈·코·입에 미소가 사라진 단정한 얼굴이라든지, 신체의 양감이 없어져 평판적인 느낌을 주는 점, 평행 계단식의 옷 주름, 단정하고 안정된 자세, 화려한 광배와 상대·중대·하대로 이루어진 8각 연화대좌 등은 경상북도의 9세기 석불들과 같은 양식에 속하는 것이다. 따라서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의 조성 연대는 9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은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220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 후기 불상 조각의 변화 양상을 보여준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1963-1) (榮州 北枝里 石造如來坐像(1963-1)
보물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149 부석사
원래 부석사 동쪽 산 너머 절터에 있었던 것을 옮겨온 것으로서 양식상 동일한 조각가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동쪽의 여래상은 얼굴이 타원형이며, 약간의 미소를 머금은 흔적이 있다. 두 손은 없어졌으나 두 팔이 가슴쪽으로 올라가 있어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 쥔 손모양을 취하고 있는 비로자나불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에는 당시 유행하던 얇게 빚은 듯한 촘촘한 평행의 옷주름이 표현되었다. 대좌(臺座)의 가운데 부분은 8각인데 각 면에는 공양보살상을 조각하였다. 서쪽의 여래상은 동쪽의 여래상보다 좀 더 당당하며 불신의 선들도 부드러운 편이다.
이 불상들은 9세기 후반에 유행하던 비로자나불상의 예로서 단아하면서 인간적인 형태, 평행의 옷주름선, 몸의 자세 등에서 당대 불교사상의 특징과 불상양식의 특징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국가유산포털자료*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1963-2) (榮州 北枝里 石造如來坐像(1963-2))
보물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149 부석사
원래 부석사 동쪽 산 너머 절터에 있었던 것을 옮겨온 것으로서 양식상 동일한 조각가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동쪽의 여래상은 얼굴이 타원형이며, 약간의 미소를 머금은 흔적이 있다. 두 손은 없어졌으나 두 팔이 가슴쪽으로 올라가 있어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 쥔 손모양을 취하고 있는 비로자나불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에는 당시 유행하던 얇게 빚은 듯한 촘촘한 평행의 옷주름이 표현되었다. 대좌(臺座)의 가운데 부분은 8각인데 각 면에는 공양보살상을 조각하였다. 서쪽의 여래상은 동쪽의 여래상보다 좀 더 당당하며 불신의 선들도 부드러운 편이다.
이 불상들은 9세기 후반에 유행하던 비로자나불상의 예로서 단아하면서 인간적인 형태, 평행의 옷주름선, 몸의 자세 등에서 당대 불교사상의 특징과 불상양식의 특징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국가유산포털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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