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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그리고 흔적.

고성 건봉사 능파교(高城 乾鳳寺 凌波橋).강원 본문

☆~ 풍경소리/강 원

고성 건봉사 능파교(高城 乾鳳寺 凌波橋).강원

沈香* 2026. 6. 23. 13:03

 

 

 

 

 

 

 

 

 

 

 

 

 

 

 

 

 

 

 

 

 

 

 

 

 

 

 

 

 

 

 

 

 

 

 

 

 

 

 

 

 

 

 

 

 

 

 

 

 

 

고성 건봉사 능파교(高城 乾鳳寺 凌波橋) 

강원특별자치도 고산군 거진읍 건봉사에 있는 조선후기 제19대 숙종 연간에 축조된 무지개 형태의 다리. 홍교. 보물.

건봉사는 520년에 창건된 사찰로 처음에는 원각사라 하였다가, 1358년(공민왕 7) 나옹(懶翁)이 중건하고 건봉사라 하였다. 능파교의 명칭은 “속세의 파도를 헤치고 부처님 세상으로 이르는 다리”라 하여 ‘능파’(파도를 헤침)의 이름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건봉사의 대웅전 구역과 극락전 구역 사이에 흐르는 계곡을 건너기 위하여 놓여진 다리로서, 2002년 2월 6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 다리는 1704년(숙종 30)부터 1707년 사이에 처음 축조되었다고 한다. 그 후 1745년(영조 21)에 홍수가 나 무너진 것을 1749년에 고쳐 세웠고, 1880년(고종 17)에 다시 무너진 것을 고치면서 석재 일부를 대웅전의 돌계단과 산영루 수축에 이용하기도 하였다.

무지개다리는 다리 밑이 반달 또는 무지개 모양을 이루어 그 모양이 아름답고 또한 다리 밑에 기둥이 없으므로 급격히 불어날 적에도 다리의 훼손을 막아주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무지개다리는 지금 우리나라에 몇 개밖에 남아 있지 않은데 그 중에서도 능파교는 규모도 크고 보존상태도 좋은 편이다. 다리의 폭은 3m, 길이는 14.3m이며, 다리 밑의 한 가운데 높이는 4.5m이고 밑지름은 7.8m나 된다.

이 다리의 축조방식은 양쪽 다리의 바닥 부분에 두꺼운 2단의 바닥돌을 놓고 그 위로 29개의 긴 돌을 차곡차곡 맞추어 둥그렇게 배열한 것으로 밑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돌의 규격이 작다. 다리의 윗부분은 여러 장의 석재를 짜 맞추어 판판하게 닦여져 있으며 양 끝에는 다리 폭보다 더 넓게 경계석이 놓였다.

건봉사 능파교는 단칸 무지개 돌다리로 자연지형을 잘 이용하여 축조하였으며, 축조시기와 건립자 등을 알려주는 능파교신창기비(凌波橋新創記碑)가 근처에 세워져 있어 우리나라 무지개다리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고성 건봉사 능파교(高城 乾鳳寺 凌波橋) 
보물
강원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 38-1

고성 건봉사의 대웅전 지역과 극락전 지역을 연결하고 있는 무지개 모양의 다리로, 규모는 폭 3m, 길이 14.3m, 다리 중앙부의 높이는 5.4m이다. 

사적기에 따르면 건봉사는 신라 법흥왕 7년(서기 520년)에 아도 스님에 의해 원각사(圓覺寺)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 이후 신라 말 도선 국사가 중수한 뒤 절의 서쪽에 봉황새 모양의 돌이 있다고 하여 서봉사(西鳳寺)라 하였으며, 고려 공민왕 7년(1358년)에는 나옹 스님이 중수하면서 다시 건봉사라 이름하였다. 

다리의 중앙부분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를 틀고 그 좌우에는 장대석으로 쌓아서 다리를 구성하였는데, 홍예는 하부 지름이 7.8m이고 높이는 기석의 하단에서 4.5m이므로, 실제 높이는 조금 더 높다. 

조선 숙종 34년(1708)에 건립된 경내 불이문 옆의 '능파교신창기비(凌波橋新創記碑)'에 의하면 이 다리가 숙종 30년(1704)부터 숙종 33년(1707)사이에 처음 축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후 영조 21년(1745)에 대홍수로 붕괴되어 영조 25년(1749)에 중수하였고, 고종 17년(1880)에 다시 무너져 그 석재를 대웅전의 돌층계와 산영루(山映樓)를 고쳐 쌓는데에 이용하기도 하였다. 

규모가 비교적 크고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다리로, 축조연대와 건립자 등을 알려주는 비석을 갖추고 있어 홍예교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국가유산포털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