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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봉림사지 진경대사탑(昌原 鳳林寺址 眞鏡大師塔).국립중앙박물관 본문

☆~ 바람소리/박물관

창원 봉림사지 진경대사탑(昌原 鳳林寺址 眞鏡大師塔).국립중앙박물관

푸른새벽* 2006. 11. 26. 00:09

 

 

 

 

 

 

 

 

 

 

 

 

 

 

 

 

 

 

 

 

 
봉림사 진경대사보월능공탑(鳳林寺眞鏡大師寶月凌空塔)


본래 경상남도 창원군 상남면 봉림리 봉림사터에 건립되어 있었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이 부도는 봉림산문(鳳林山門)의 개산인(開山人)진경대사의 묘탑으로 신라의 전형적인 팔각 원당형을 기본으로 삼아
기단 위에 탑신부와 옥개석,상륜부를 차례로 올려 놓고 있다


기단부는 상.중.하대석으로 이루어졌으며 각 1석씩이 중척되었다.팔각 하대석의 측면에는 각면에 양 우주를 포함한 장방형의 구간을 마련하고 그 안에 신라 통식의 안상을 1구씩 음각하였는데 특히 각 안상의 하단 중앙에는 지선에서 삼산문(三山紋)이 솟아오른 형태를 만들어 시대적인 특징을 보이고 있다.그러나 중대석은 평면이 원형이며 편구형(扁球形)으로 이루어진 중대석 측면에는 사방에 1구씩의 안상을 음각하였는데 그 행태는 통식이 아니다


중대석은 4각의 각을 없앤 타원형인데 이 몸체에 장방형 안상이 있고 안상 안 좌우에서 꽃무늬 모양이 돌출된 형식이다


상대석도 평면이 원형인데 하면에는 팔각으로 3단의 각형 받침을 만들었다


탑신은 신라시대의 전형인 팔각 원당형이며  각면에 양 우주를 드러냈으며 상,하단에도 돌대가 있어 마치 장방형 액자를 마련한 듯 할 뿐 아무런 장식이 없다.옥개석은 팔각으로 되어 있고 아랫면에 옥개 받침이 만들어졌는데 탑신에 앉히는 하단은 낮은 각형이고 추녀 쪽으로 받쳐진 상단은 큼직한 원의 형태이다


상륜은 각 부재가 많이 소실되고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앙화 1개와 그위에 보주 1개가 놓여 있을 뿐이다
*정영호 지음 '부도'중에서*

 

창원 봉림사지 진경대사탑(昌原 鳳林寺址 眞鏡大師塔)


보물 제362호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168-6 국립중앙박물관 


통일신라 후기의 승려인 진경대사의 사리탑으로, 탑비와 함께 봉림사터에 있던 것을 1919년 경복궁으로 옮긴 것이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져 있다. 전형적인 8각 부도이지만 표면의 조각은 적은 편이어서 재료의 빛깔과 아울러 청초한 느낌을 준다.


8각의 바닥돌 위에 있는 기단(基壇)의 아래받침돌 또한 8각으로, 옆면에는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는데, 특히 무늬의 바닥선이 불꽃모양으로 솟아올라 시대적인 특징을 보이고 있다. 가운데받침돌은 북모양으로 중앙의 곳곳에 꽃송이를 새긴 후 이를 도드라진 띠장식으로 연결시켰다. 윗받침돌에는 연꽃 8송이를 조각하였다. 탑신(塔身)의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새겼고, 지붕돌은 높고 큰 편으로 처마는 수평을 이루고 있다. 낙수면은 8각의 굵직한 지붕선이 꼭대기에서 아래로 이르렀으나, 끝에 달려있던 꽃장식은 모두 부서졌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앙화(仰花)와 보주(寶珠)가 있는데, 한 돌로 조각하였다.


만들어진 때는 진경대사가 입적한 해인 신라 경명왕 7년(923)으로 추정되는데, 아래받침돌의 안상에서 이미 고려시대의 특색이 보이고 있다. 기단 가운데받침돌이 낮고 작은 것이나 탑신의 몸돌이 가늘고 긴 것에 비해, 지붕돌이 지나치게 커서 비례의 균형을 잃고 있다.조각수법이 강하지 않고 전체 형태가 길쭉해지는 경향이 나타나는 등 통일신라의 양식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양식으로 옮겨가는 과정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