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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동리산 태안사(桐裏山泰安寺).전남 곡성 본문
태안사(泰安寺)
전남 곡성군 죽곡면 원달리 20번지
태안사(泰安寺)는 곡성군 죽곡면 원달리 20번지 동리산(桐裏山) 서쪽 능선에 자리하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 화엄사의 말사이다.
태안사의 본래 이름은 대안사(大安寺)였다. 대안사는 흔히 말하는 것처럼 혜철(慧哲)에 의해 개창된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창건되어 존재했던 고찰(古刹)이다.
절은 742년(경덕왕 1)에 신승(神僧) 3인이 창건하여 산이름을 동리(桐裏), 절이름을 대안(大安)이라 하였다 한다. 산이름을 동리라 함은 산의 형상이 봉황과 같음에 연유한 것이며, 대안이라 함은 절의 위치가 길에서 멀리 떨어져 속세의 사람이 드물고 계곡이 깊고 그윽하여 선승들이 머무르기 좋기 때문이라고 한다. 훗날 태안(泰安)이라고 바뀐 것은 대(大)와 태(泰)가 통용될 뿐 아니라 편(便)하다는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근세에 사사람들이 개칭한 것이라 한다.
절은 이후 혜철선사가 주석하면서부터 선종사찰로 명성을 얻게되어 동리산문(桐裏山門)의 중심도량이 되었다. 동리산문은 신라 하대의 다른 산문이 성립되는 것과 같은 추세 속에서 혜철 스님에 의해 개창된 것이다. 다만 그것이 언제 개창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혜철 스님이 중국의 서당 지장(西堂智藏) 스님에게 법을 이어받고 귀국하는 839년(문성왕 2)에서부터 늦어도 845년까지에는 개창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동리산문은 혜철의 제자들로 정통 법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동리산문에 소속된 절은 곡성을 중심으로 구례·광양·운암 등지에 퍼져 있었다.
혜철 스님의 입적 이후에는 ‘□여’(스님의 이름 첫 자를 알 수 없다) 스님이 대안사에 주석하면서 동리산문을 이끌고 있었다.
고려 태조 때는 광자대사(廣慈大師) 윤다(允多)가 132칸의 전각을 짓는 등 중창불사를 하여 대사찰을 이루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서는 효녕대군(孝寧大君)의 원당(願堂)이 되어 국가적 비호가 있었다. 현존하는 <완문(完文)>의 내용에서 절로 하여금 지역(紙役) 등 일체의 잡역을 영구히 제거하도록 한다든지, 향약배(鄕約輩)들의 절에 대한 훼손을 금지하고 전토내의 벌목 등과 함께 병영 운력(運力)이나 산성 운력 그리고 관아에 바치는 각종 세금을 면제케하여 준 내용을 볼 수 있다. 이로써 조선왕조의 유교사회에서의 사찰의 존재상황과 사원경제의 배경을 짐작케 해준다.
효녕대군은 태안사에 상당 기간 머물렀으며 현재도 관련유물이 남아 전하고 있다. 이 중 ‘대바라’는 효녕대군이 세종과 왕비, 왕세자 등의 수명과 복을 빌기 위하여 발원 제작한 것으로 크기가 국내 최대의 것이어서 사람이 들고 사용하지 못하고 매달아 사용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1457년(세조 3) 6월에는 큰 종이 깨져 금 400여근을 넣고 1581년(선조 14)에 다시 만들었다.
1683년(숙종 9)에는 정심(定心) 스님이 중창불사를 하였다. 그리고 1737년(영조 13)에 능파각을 건립하고 1776년과 1809년, 1861년, 1923년 네 차례에 걸쳐 중수를 했다. 능파각은 계곡을 건너는 다리의 기능을 겸한 건물로서 계곡 양측의 자연 암반을 이용하여 약간의 석축을 쌓고 그 위에 두 개의 큰 통나무를 받쳐 세운 것이다. 또한 1683년(숙종 9) 학현대사(學玄大師)가 일주문을 중건하고, 1917년에 영월대사가 보수했다고 한다.
근세에 들어와서는 1950년의 한국전쟁으로 대웅전을 비롯한 15채의 건물이 불에 타버렸다. 대웅전은 이후 1969년에 곡성군의 보조로 재건되었다.
절은 육당 최남선이 1925년 태안사에 와서 “신라 이래의 절이요, 또 해동에 있어 선종의 절로 처음 생긴 곳이다. 아마도 고초(古初)의 신역(神域)과 같다”고 극찬한 곳이다. 현재 절 일원이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3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편 태안사에 대한 문헌 기록은 20세기 초의 <동리산태안사사적>과 1943년의 <태안사사적>을 들 수 있는데, 여기에 1684년부터 1948년까지의 역사가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되고 있어 절의 연혁을 살피는 데 참고가 된다.
*대한불교진흥원자료*
*동리산 태안사에 대한 포스팅은 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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